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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May 03. 2016

10년 전 유럽 여행 - #Breakfast

예전에 어머니께 여쭤봤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어요? 그랬더니 경주, 설악산, 제주도가 아니라 뜻밖에도 서울로 가셨단다. 서울 어디에 갔었냐고 물으니, 남산타워도 올라가고, 명동에서 칼국수도 드셨다고 하셨다. 남산 밑 어느 호텔에서 묶었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술판을 벌였다는 기억도 떠올리셨다.


지우 지아도 나중에 아빠 엄마의 결혼 전 모습이 궁금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애들이 태어나기 전, 지영이와 단둘이 갔었던 2007년 8월의 유럽여행을 다시 따라가 보고자 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여행, 비록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당시 사진들과 끄적거린 흔적들을 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10년 전 사진들의 디테일을 끄집어내다보면, 잃어버린 기억들과 감정들이 살아나길 희망하며...   






융프라우를 내려와서 인터라켄 시내로 향했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필수품들을 구입했는데, 와이프가 린스를 사는 것을 보고 여자들은 샴푸 하나로 안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저녁은 중식당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놓고 고민하다가, 아침부터의 강행군으로 둘 다 급격한 체력 저하가 찾아와서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던 'Pizzeria MERCATO'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난 피곤을 무릅쓰고 최대한 성의 있게 ‘피자 말고 아무꺼나’라는 주문을 지영이에게 해놓고, 지영이가 메뉴판을 열심히 공부한 다음 음식 세 개를 골랐다.


이 날의 저녁 메뉴는 스파게티, 풀 위의 새우, 수프와 식전 빵이었다. 첫 번째 스파게티는 한국에서 먹던 맛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데, 두 번째 풀 위의 새우 요리는 이번 유럽 여행 통틀어 최고의 맛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오히려 세 번째 수프의 맛이 아직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 메뉴의 이름이 소금 수프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말도 안 되게 짠맛이었다. 기본적으로 매운 음식, 짠 음식, 탄 음식 등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수프는 마치 라면 하나에 라면수프 다섯 개를 넣고 끓인 것처럼, 짠 영역에서는 최강자였다. 이거 딱 한 달만 매일 먹으면 사람 퉁퉁부어 죽겠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식전 빵을 찍어 먹으며 결국 그릇 바닥은 봤다.






이렇게 유럽 여행 둘째 날이 저물고, 셋째 날이 시작되었다.


Including Breakfast인 숙소에서의 조식은 대부분 예상이 되지만, 100년 전통의 인터라켄 숙소에서의 조식은 음식이 아닌 주변 풍경과 지영이와의 대화로 아직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식으로 준비된 음식이 빵도 너무 딱딱했고 햄과 치즈가 너무 건조하게 말라비틀어져 있어서 내겐 좀 생소했지만, 지영이는 어린 시절 독일에서 살 때 먹던 아침 식단과 정말 흡사하다고 완전 신나 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독일 생활 이야기. 자전거 타고 아침마다 빵 사러 빵집에 갔었던 일, 독일 학교에서 배구했던 이야기,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적응이 힘들었던 일 등등을 들으며, 조용한 스위스에 어울리는 아침을 즐겼다. 




아래 사진의 'URANT' 위에 창문이 열려 있는 곳이 우리 방이었다. 아침을 먹고 저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아주머니가 우리가 먹은 아침 식사를 치우고 계셨다. 유난히 내 자리 주위에 빵부스러기가 많이 널려져 있다. Sorry.





여기서도 하루밖에 안 묶었구나. 우린 인터라켄을 떠나, 이번 여행에서 나의 주목적 지였던 로잔으로 출발했다. 강요가 아닌 본인의 요청으로 지영이가 운전을 시작했으나, 좁은 1차선 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사이클 행렬, 뻑뻑한 핸들링, 쌩쌩 달리는 차들로 인해 정말 경직된 자세로 말도 몇 마디 안 하고 한 시간을 운전하더니, 온몸의 뻐근함을 호소하며 자리 체인지를 요청했다.





사실 조수석에 탄 사람이 더 바쁘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 지도를 보면서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야 했고, 주위 풍경을 보면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야 했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타고 가다 보니, 아무 데나 셔터를 눌러대도 이런 풍경이 잡혔고, ‘여긴 인물을 담아야 해’ 생각이 드는 곳에서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한 명씩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사진 선별해서 지우는 게 또 일이었다.







로잔을 50km 정도 남겨놓은 곳에서, COOP이라는 할인점이 보여 잽싸게 들어갔다. 지영이가 독일에 살 때 즐겨 먹었다는 스파게티 소스랑 초콜릿 등을 샀는데, 심지어 저기 우유처럼 보이는 것도 스파게티 소스였다. 그리고 저 Knoppers 초콜릿은 얼마 전 코스트코에서 발견하고 처음 샀다고 기억했는데, 10년 전 COOP에서 이걸 샀었구나. 별거 아니지만, 시그널처럼 10년 전과 현재를 연결시켜주는 듯한 묘한 짜릿함을 준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독어권이 아닌 불어권이었고, 종업원들이 영어도 못해서 계산할 때 조금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어쨌건 난 독어권이건 불어권이건 상관없다. 그냥 와이프 뒤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으면 된다.


그리고 여기서 점심도 대충 해결했다. 싸구려 기름으로 튀긴 듯한 음식들, 고기는 매장에서 팔다 남은 것을 냉동보관했다가 급히 해동해서 꺼내온 듯했지만, 포장마차에서 길들여진 나의 미각은 오랜만에 익숙한 퀄리티를 느끼며 무척 흡족한 한 끼를 즐겼다.



그렇게 냉동고기를 소화하며, Knoppers 초콜릿을 까먹으며, 세 번째 목적지 로잔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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