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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Aug 22. 2020

네 번째 하와이 - 프롤로그

프롤로그


오아후, 마우이, 빅아일랜드 - 이렇게 하와이를 세 번 다녀온 후 2018.5월에 '하와이 패밀리' 책이 나왔다. 그 뒤로 바닥을 치면서 농담을 건네느라 흔적을 남기진 못했는데, 네 번째 하와이도 살포시 다녀왔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춰버린 지금은 해외여행이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작년 2019년 5월 30일부터 6월 11일까지 11박 13일간 네 번째 섬 카우아이를 향할 때만 해도 세상은 언제 어디로건 떠날 수 있는 글로벌 모빌리티 천국이었다. 그땐 공항 입국 수속 대기줄이 끝이 안 보일 정도였는데, 불과 몇 개월 후 그 긴 대기줄이 약국 앞 마스크 행렬로 바뀔 줄이야. 


다녀온 지 1년이 훌쩍 지났는데, 지금에서야 여행기라니. 여행기는 즉시성과 현장감이 생명인데. 이 글을 과거형으로 쓸지 현재형으로 쓸지도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글을 써 보는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가족들이 잊을만하면 한 마디씩 한다. 

"남편, 이번에는 왜 글 안 써줘?"

"4번째 하와이는 글이 없어서 그런지 뭐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

"근데 진짜 안 써? 이제 좀 쓰지."

"아빠, 4번째 하와이는 언제 써줄 거야?"

이 정도 질문공세면 내가 하마도 아니고, 언제까지 입 꾹 닫고 외면할 수는 없다. 


두 번째, 하와이로 so high 되는 주기가 돌아왔다. 코로나와 장마로 집구석 생활이 길어질수록, 고 1 성문 기본 표현 "I wish I were there."를 외치게 된다. 우린 네 번째 하와이를 다녀오며 루틴이 되어 버린 의식, 다섯 번째 하와이 일정도 잡았었다. A) 6학년인 지우가 중학생이 되기 전 B) 지우가 만 12세 discount를 받을 수 있을 때 C) 성수기 가격 피해서 D) 엄빠가 하와이 금단현상이 심해지기 전, 등등을 고려했을 때 올 10월이 적기였다. 그랬다면 지금쯤은... 말해 뭐해, 덴장.


세 번째, 내 기억 속 디테일 유효기간은 1년이다. 이미 카우아이 기억 절반 이상은 사라졌다. 남은 절반이라도 부여잡고 되는 데까지 남겨 놓지 않으면 이번 여행은 기억 속에서 영영 휘발해서 사라질 것 같았다. 정 안되면 사진에 간략 코멘트 정도 만이라도. 


하와이의 4개 섬 중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오아후, 마우이, 빅아일랜드는 정보가 넘쳐나는데 미지의 섬 카우아이는 찾는 사람이 드물다 보니, 그곳에서 6박이나 머물렀던 여행 투머치 토커가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도, 향후 하와이를 검색해 볼 인류 공동체에 대한 직무유기라 생각했다. 그래, 할 건 해야지.


네 번째, 브런치와 페이스북을 통해서만 나의 근황을 듣는 사람들에게 say hello를 하고 싶었다. 저 잘 지냅니다. 돈 워리, 비 해피~!


마지막 날에 만난 이번 여행의 주제곡, 돈 워리 비 해피~!


다섯 번째, 사실 이게 가장 강력한 동기인데, 6학년이 된 우리 지우가 요즘은 글을 통 안 써준다. 내 책에도 소개된 늑대 이야기 시리즈를 포함해서 난 지우 글의 빅팬이자 덕후이자 빠돌이자 오타쿠인데, 언젠가부터 지우 방에 널브러져 있는 끄적거린 흔적들이 사라졌다. 며칠 전엔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글 하나만 써 달라고 읍소를 했다. 싫단다. 그냥 쓰고 싶을 때 쓰겠다고. 그게 작가라고. 쿨하다. 그래서 어떤 협상카드를 꺼내야 지우가 글을 쓰고 싶어 질까 고민하다가, 


"아빠가 네 번째 하와이 써주면, 너도 늑대 이야기 시리즈 하나 더 써 줄래?"

"오, 좋아"


이렇게 시작되었다. 뼈와 살을 내주고, 눈곱 하나 받아온 세기의 딜.


 

여행 전


여행 한 달 전. 

어린이 날 원하는 선물을 물어보니 예상대로 지우는 노코멘트를, 지아는 tv 광고에서 봤다는 멜짱 인형을 콕 찍어 말했다. 목욕을 시키면 머리카락이 변하니 꼭 사야 한다며. 지우에겐 노코멘트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이 있었다. 생애 첫 디지털카메라, 두둥. 내가 왜 더 신나 할까.


동심뿐만 아니라 어른심도 저격하는 큐트 한 디자인의 Nikon COOLPIX W100. 나의 첫 디지털카메라는 24살인 2000년에 산 80만 화소 삼성 카메라였는데, 지우는 12살에 1,080만 화소 카메라를 가지다니, 우리 딸 금수저구나. 물론 핸드폰은 없지만. 아빠도 어릴 때 자전거가 없었던 걸로 퉁치고.


지우의 첫 번째 카메라


여행 준비는 횟수를 거듭할 수록 점점 더 대충 하게 된다. 와이프는 국제선 처음 타보는 사람처럼 직전에 감기몸살에 걸려버렸고, 난 스핑크스처럼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거란 확고한 믿음 하에, 출발 당일 오전까지도 가방 네 개가 덩그러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 4일간 병원에서 수액을 두 번이나 맞고 온 와이프가 조금 기력을 차렸더니, 지아마저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까먹고 있나 본데, 나 환자야. 나도 잘 버티고 있는데, 다들 내 앞에서 아프지 말자.


이 당시, 난 매주 목요일 오후 4~7시에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 시기도 이 때로 잡았다. 다음 주 목요일이 현충일이라, 수업 끝나고 곧장 출발해서 11박 하고 다다음주 화요일에 돌아온 후 하루 쉬고 다시 강의하러 가는 일정이 딱이었다. 다만 7시에 수업이 끝나는데 밤 9시 20분 비행기라 시간이 빠듯했다. 그나마 신촌에서 공항은 상대적으로 가깝긴 한데, 퇴근 시간에 딱 걸려버렸네. 


링거 투혼을 발휘한 와이프가 아이 둘과 가방 네 개를 가지고 남양주에서 공항으로 향했고, 난 강의가 끝나자마자 학교를 바람같이 가로질러 택시를 탔다. 30분 정도 일찍 끝내고 싶었는데, 질문들이 이어져 10분밖에 못 줄여서 마음은 급했지만, 다행히 공기는 맑았고 서울의 서쪽에서 경기도의 서쪽으로 가는 길은 내 마음처럼 뻥 뚫려 있었다. 


목요일 밤이었지만 출국장은 언제나처럼 사람이 붐볐고, 수속 대기줄의 표정들은 난생 처음 쉑쉑버거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에블바뤼 본보야지. 인천공항 면세점의 연매출이 3조 정도인데, 우리도 남양주 큰 손답게 코스메틱 매출에 살짝 이바지를 한 후 대한항공 라운지로 갔다. 


환자가 많아 약국을 들러야 했다. 이번엔 제발 아프지 말자.
살아생전에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도 가 볼 일이 있겠지.


칼 라운지는 비즈니스 좌석 승객이나 모닝캄 이상의 회원 등등이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데, 우린 뭘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와이프가 들어가면 된다고 해서 들어갔다. 


여긴 테이블 간의 간격도 널찍널찍해서 벌써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매일매일 크래커 위에 치즈를 올려놓고 먹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플레이팅을 한 주전부리류로 입가심을 한 후, 메인 메뉴 컵라면을 때렸다. 칼 라운지를 검색하면 음식이 부실하다는 사람들이 많던데, 칼 라운지는 식당이 아니 쟈나. 김밥, 잡채, 수육, 연어, 육회, 탕슉이 있었으면 칼 레스토랑이라 이름 붙였겠지. 맛집은 여행지 가서 즐기세요. 비행시간이 촉박하여 후다닥 먹고 후다다닥 뛰었다.


처음으로 하와이안 에어라인이 아닌 대한항공을 탔다. 

외제보다 국산이 월등히 좋다고 느낀 건, 아톰 대신 마루치 아라치를 본 후 실로 오래간만이구나. 

국적기는 사랑이다.


이렇게 네 번째 하와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넷 다 잘 나오긴 어렵다. 


사족)

1. 일단 프롤로그는 썼으니, 이 글로 지우와 협상 다시 해봐야겠다.

2. 일단 프롤로그는 썼으니, 언젠가는 이 여행기를 마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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