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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2일차 - San Francisco(2)

2022.07.13.


잠이 든 지 몇 시간 안 된 새벽 3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깼다. 원래 어지간한 소음엔 끄떡없는데 jet lag 시기의 좁은 호텔방에선, 보청기를 끼고 자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더 일찍 깨서 지들끼리 키득키득 투닥투닥 시간을 보내다 배가 고팠단다. 그래서 자고 있는 아빠 엄마를 안 깨우려고 어제 BOUDIN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를 화장실에 들어가서 사이좋게 먹었단다. 우리 딸들, 초코파이랑 뚱뚱한 바나나 우유를 화장실에 들고 가 몰래 먹는 훈련병 체험했네. 결국 나도 가늘게 수면을 유지하다 5시 반에 기상했다. 아빠까지 깨니, 소곤거리지 않고 평소 데시벨로 말을 해도 괜찮아진 아이들은 신나서 라면을 먹자고 했다. 커피 머신으로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 하나씩 쥐어 줬더니, 이게 이렇게 즐거울 일인가. 2일 차 새벽, 주차장이 보이는 호텔방의 4인은 이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새벽이 신남도 잠시, 아이들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드디어 졸리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컨디션이 정상이 아님을 호소하며 침대 위로 완전 다운되어 버렸다. 험난한 하루가 예상되네. 


침대에 사지가 떡 달라붙어버린 아이들을 힘들게 깨우고 끌고 나와서 이틀째 여행을 시작했다. 나의 사전 스케줄 상 오늘은 버스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한 바퀴 도는 Big Bus Tour day다. 생전 처음 타보는 드림카 2층 버스를 보고, 졸린데 왜 깨웠냐며 도끼눈을 하고 있던 아이들 눈동자도 비로소 착해지기 시작했다. 버스에 탈 때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줬고, 좌석에 꽂으니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대한 설명이 10개 국어로 나왔다. 우리말도 9번에서 흘러나왔다. 


버스 투어, 생각보다 괜찮네. 에너지를 아끼며 끌려다니면 된다. 유일한 적은 추위였다. 뻥 뚫린 2층에선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 허술하게 입고 있던 지우와 난 서둘러 1층으로 피신했다. 


아, 춥다. 죄다 여름옷들만 챙겨갔는데, 우리 옷 좀 사자. Union Square 역에 내려서 근처 Ross로 향했다. Ross는 사랑이지. 그런데 그 사이, UNIQLO, ZARA, H&M 등으로 우리 눈이 높아졌나. 물 반 고기 반 같던 Ross에서 도저히 손이 가는 옷이 없었다. 패션이 아닌 보온용으로 이번만 입고 버려도 된다는 생각으로 눈높이를 확 낮췄음에도 도저히 사고 싶은 옷들이 없다. 이래서 멋쟁이들은 여름철에 더워 죽고, 겨울철엔 추워 죽나 보다.


Ross에선 철수, 바로 옆 old navy로 향했다. Ross 가격표들로 눈을 더럽힌 후라 가격대가 제법 쎄 보였지만, 이 정도는 살 수 있지. 지우랑 지아 옷 하나씩 샀다. 이제 아이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빙하기가 찾아와도 버틸 수 있다. 아빠랑 엄마는 패스, 우리에겐 지방층이 있으니. 


지영이 회사 visa 본사가 이 동네에 있다. 다 같이 걸어가 보기로 했다. 걷기엔 제법 멀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이들에겐 거의 다 왔다는 말만 반복하며 억지로 끌고 갔다. 실은 다 안 왔어~ 아빠를 양치기라 부르는 것까지는 인정, 그래도 양아치라 하진 말자.


아이들 에너지와 인내력이 바닥을 칠 때, Super Duper Burgers가 보였다. 그래, 지나칠 수 없지. 엄마가 주문하는 동안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히터의 온기가 밀려오며 아이들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러게 왜 새벽 3시에 깨서 그 난리를 치셨어. 


햄버거 시식 시간. 흠~ 그냥 햄버거네. 맛있긴 했다. 근데 누가 여기 In-N-Out보다 맛있다고 했냐. 그건 아니잖아. 그리고 양이 작은 우리 가족은 사이즈에 민감하다. 분명 키즈용 햄버거를 시켰는데도 다 먹기가 벅찼다. 여기 키즈들은 다 푸드파이터들인가.


이제 다 왔다는 말을 하고 20분을 더 걸어서 드디어 도착한 Visa 본사. 역시 글로벌 회사답게, 태평양을 정면에 둔 쌍둥이 빌딩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건물에 입주해 있는 google을 포함한 회사들 시가총액만 더 해도 한 국가 예산이 나올 듯. 층층마다 빈백 의자, 미끄럼틀, 다트판, 안마의자, 포켓볼 당구대가 설치되어 있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사무실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지우가 올라가 보길 거부했다. 엄마 회사 사람들이 영어로 말 걸까 봐 안 간다고 한 듯. 그건 난가. 아무튼 난 지우와 같이 로비에 남았고, 지아는 엄마랑 8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우린 로비의 흔들의자들로 향했다. 이 좋은 걸 왜 아무도 안 타고 있을까. 우린 기우뚱기우뚱 빙그르르, 의자에 몸을 맡긴 채 흔들거리다 잠이 들었다. 동네 거지도 아니고 회사 로비에서 잠을 자다니, 추했네. 잠에서 깬 후 행여나 우리 발 밑에 글로벌 회사 직원분들이 ‘가여워라~’하며 놓고 간 돈이 있을까 봐, 긴장됐다. 지아는 엄마 회사가 왜 미국에도 있는지, 왜 여기 엄마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신기해하며 내려왔다. 


우린 big bus를 다시 타고, 샌프란시스코 북부를 한 바퀴 돌았다. 페리 빌딩 – 유니온 스퀘어 – 시빅 센터 – 애쉬버리 – 골든 게이트 파크 – 롬바드 스트리트를 거쳐 다시 우리 숙소 앞 Pier 39 Fisherman’s Wharf까지 코스였고,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버스에서 제공하는 여행지 설명이 제법 흥미로웠다. 한국어 성우분의 텐션과 딕션도 훌륭하고. 버스 여행이 이렇게 좋다고? 나 지금 관광버스만 타면 신이 나서 마이크를 잡고 춤을 추던 그 옛날 어르신들 나이가 된 건가.


샌프란 버스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Golden Gate Bridge에선 모두가 내렸다. 심지어 버스 기사님도 내리셨다. 우리만 안 내렸다. 사춘기가 되고부터 신생아처럼 잘 자는 지우가 버스에서 빡세게 잠이 들었다. 이 정도 깊이의 잠이면 꼬끼오 닭 10마리가 와도 깨우기 힘들다. bridge 사진 하나 쯤 없어도 되잖아. 패스. 


호텔로 돌아오니 오후 4시. 네 명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오 마이갓 저녁 9시 반이었다. 시차 적응 엉망진창이네. 식당들도 모두 문 닫은 시간이라 우린 또 라면, 햇반, 밑반찬을 꺼냈고, 어제 BOUDIN에서 먹다 남긴 샌드위치까지 뷔페처럼 깔아 놓고 푸짐하게 즐겼다. 꿀잠 후엔 뭘 먹어도 꿀맛이지. 


다시 서열 순서대로 씻은 후, 온 가족이 침대에 누워 Smart View로 우 to the 영 to the 우를 봤다. 1~2편 내용은 지우에게 듣고 3편부터 보기 시작해서 5편까지 순삭 했다. 6편도 볼까 말까 고민했지만, 시차 적응 빨리 해야지. 5시간 낮잠에서 깬 지 세 시간밖에 안되었지만, 다시 참을 청했다. 더블침대 방이라 매일 번갈아 가며 잠을 자는데, 오늘은 지아가 나랑 자는 날이다. 역시 지아 기분이 계속 뾰롱통하다. 왜 아빠랑 자는 것은 항상 벌칙인 걸까. 자, 난 다시 일 좀 해야지. 


티격태격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난 조용히 노트북을 들고 로비로 내려갔다. 늦게 나가니 모닥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노트북 토닥토닥 좀 하고 나니 새벽 2시. 정상 출근 후 새벽 2시까지 일한 이 기분은 뭐지. 애들 새벽에 또 깨겠지. 잘 수 있을 때 자자. 


2일 차, 굿 나잇.



Big Bus Tour


Ross와 Old Navy


Super Duper Burger


스르르 졸리기


논현동에도 매장 있던데, 굳이 가진 않을 듯.


Visa 로비


다시 Big Bus


 햇살 뜨거워 보이지만, 엄청 추웠다.


2일차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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