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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05. 2023

미국 여행 3일차 - San Francisco(3)

2022.07.14.

눈을 뜨니 오전 9시 반. 오, 이 정도면 나이스. 내일 정도면 시차 적응 마무리되겠구나 싶었는데, 여성 세 분은 눈만 떴을 뿐, 누가 더 컨디션이 안 좋은지 배틀 중이었다. 오늘은 '하루 얼마짜리 여행인데' 정신력으로 무장한 이 아빠가 하드캐리해야 할 분위기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티끌 모으는 차원에서 조식 포함이 안된 호텔이라, 근처 브런치 가게 ihop에 주문을 하고 픽업하러 갔다. 아이홉인지 이홉인지 찾아보니, International House of Pancake였다. 그래서 아이홉이야, 이홉이야. 매장에 들어가니 대기줄이 장난이 아니었다. 오, 오픈 빨도 아닌데 이 정도 인파가 대기 중이면, 여기 맛집이구나. 한국으로 치면 전주콩나물국밥집 정도겠지? 패밀리세트와 팬케익을 3만 원어치 주문했는데 양손 가득 비닐봉지 찢어질라. 미국에서도 이 돈으로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구나. 음식 퀄리티도 굿. 줄 서서 먹을만하네. 우리 26일 남았으니, 여기 한 번은 더 오길 I hope.


오늘 일정은 소살리토! 26년 전과 12년 전, 두 번의 샌프란시스코 여행에서 가장 예쁜 기억으로 남아있던 곳이라, 소살리토를 시차적응 좀 끝낸 3일 차로 잡았다. 배도 타고, 여기저기 걸어 다닐 거라 좋은 컨디션이 필수였는데, 나만 쌩쌩하네. 페리 선착장은 호텔 코 앞이었다. 주차장 뷰만 빼면, 위치가 참 좋단 말이야. ROYAL STAR라는 흔한 단어 두 개로 만든 이름의 페리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는데, 중간에 스쳐 지나가는 Alcatraz 감옥이 신스틸러 역할을 해줘서 사진 좀 찍다 보면 금방 도착한다. 


어릴 때부터, 커서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꼭 이곳에 집을 사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마을이 있었다. 아이 땐 부산 구덕산 밑 전원주택에 살고 싶었고, 여기저기 바뀌다 외국을 다녀보며 글로벌리 살고 싶다고 느낀 첫 번째가 1996년도에 소살리토를 왔을 때였다. 그 후로 내 마음속의 집은 2001년도에 샌디에이고 라호야로 바뀌었고, 2017년부터 하와이가 최상위 랭킹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실은 쭈욱 구리, 남양주구나. 


소살리토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트럼프 형님의 헤어 모양의 안개가 언덕을 뒤덮고 있다. 안개마저 고급진 금색빛이라니. 도착하자마자 Lappert’s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첫인상을 달달하게 심어 줘야지. 아이스크림 두 컵을 사서 하나씩 줬다. 미친 물가와 1400원대 환율 콤보로 아이들 것만 산 게 아니라, GOD의 랩처럼 “부모님은 아이스크림이 싫다고 하셨어~”로 기억하자. 그래도 애들아, 다음엔 “아빠도 한 숟갈 잡술라우?” 물어보기라도 해 주라. 원샷을 해버리네.


Lappert’s에서 나와서 동네 한 바퀴 산책의 시간, 좌우 갈림길에 섰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왼쪽 길을 택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그 길이 아니었다. 괜히 인적 드문 곳으로 향했다가 가파른 언덕에서 의미 없는 트래킹만 했다. 가뜩이나 컨디션 안 좋은 세 여인인데, 머리에 나침반 기능이 빠져 있는 아빠가 미안. 


점심은 ‘Taste of Rome’이란 이태리 가게에서 피자 한 판을 시켰다. 다른 테이블의 서양인들은 이 피자를 인당 하나씩 먹는데, 우린 한판을 나눠 먹고도 2조각이 남았다. 더 이상 돈 안 되는 소식 가족 꼬이지 말라고, 우리가 떠난 자리에 소금 뿌릴 듯.


배는 채웠지만 목적지 없이 걷는 걸 세상 싫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다시 선착장 쪽으로 걸어와서, Sausalito Hotel 옆에 있는 California Republic이란 조그만 선물가게로 들어갔다. 그래, 이게 여행 쇼핑이지. 면적 대비 사고 싶은 물건 밀도가 아주 높은 곳이었다. 지우는 마음에 드는 옷을 하나 골랐고, 나도 옷이랑 모자를 하나씩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안 샀다. 내가 그렇지 뭐. 특히 모자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와이 여행 때부터 계속 쓰고 다녀, 그냥 내 머리의 일부가 되어 버린 Cleveland Indians 모자를 교체해주고 싶었는데, 겨우 10불짜리에 고민만 하다 포기했다. 그냥 나오긴 아쉬워, 노트북에 붙일 ‘SAUSALITO’ 스티커 하나를 샀다. 이건 아주 만족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Bridge Way를 걸으며 예쁜 집들과 카페 구경도 하고, 10년 전 내가 꾸벅꾸벅 졸았던 스타벅스에 다시 가서 뜨바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눈앞에 선착장이 보이니 이제 돌아가자고 보채는 지우를 어떻게 이겨. 마이크 타이슨 형님이 와도 눈 착하게 뜨고 순순히 배를 탈 듯. 어른들의 낭만 여행은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다시 돌아가는 ferry. 하지만 도착지가 호텔 앞 Pier41이 아닌, 페리빌딩으로 향하는 노선을 골랐다. 눈앞에 우리 호텔이 보이면 오늘 일정은 끝이라 봐야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에. 이거라도 내 맘대로 하자. 물론 지우에겐 비밀.


페리빌딩에 도착해서 big bus로 한 바퀴 더 돌며 어제 못 가본 Golden Gate Bridge 공원이나 가볼까 했지만, 눈치 빠른 지우에게 계획을 들켜버렸다. 용납할 리가 없지. 결국 호텔로 향하는 전차를 탔다. 그래, 샌프란시스코에 왔으면 전차도 한 번 타 봐야지. 전차 타이밍이 안 맞아 정류장에서 애들은 춤도 추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막상 타본 전차는 큰 감흥이 없었다. 매일 출근길 95번 버스도 서서 압박당하며 가는데, 여기 전차에서도 비슷했다. 택시까진 바라지도 않고, 대중교통을 앉아서 타보고 싶은 소박한 꿈은 여기서도 무리구나.


다시 호텔, 침대 위 뒹굴 time이 돌아왔다. 한 번 눕더니, 이번엔 지영이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빨리 저녁을 먹고 와서 자자고 했다. 여전히 소살리토의 불완전 연소 아쉬움이 남아 있는 난, 저녁이라도 우버 타고 나가서 유명 식당에서 먹어 보자며 검색하는 모션을 취했지만, 이젠 지영이까지 가세하여 가까운 곳을 원했다. 난 우리 집에서 의결권 없는 지분의 소유자라 순순히 따를 수밖에. 


호텔 근처 태국 식당으로 갔다. 문 앞자리라 차가운 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제법 추웠지만, 맛은 훌륭했다. 점심때 2조각 남긴 피자보단, 역시 아시안 푸드를 먹으니 아이들도 꾸역꾸역 잘 먹었다. 그래, 이렇게 아이들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아빠 취향으로 다녀서 미안하다. 한인마트 가게 되면 불닭볶음면도 사고, 엘에이 가면 떡볶이집도 수배해 놓을게.


푸짐히 먹고 68불이 나왔길래 팁까지 80불 내려고 했더니, 지영이가 계산기 두드려보고 81불로 내라고 했다. 잠시 후 다시 계산하더니, 82불로 내라고 했다. 팁 20%에 반올림까지 하다니. 자꾸 정문을 열어 놔 추워서 20프로 내긴 싫었지만, 지영이가 시키면 시킨 대로 해야지. 문은 미워하되 팁은 미워하지 말자.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저녁 7시. 하루를 끝내기엔 너무 이르고, 세 여인과는 달리 내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다들 정신 차려. 지금 잘 시간 아니야! 그래서 혼자 pier39으로 나갔다. 역시 유명 여행지는 밤이 화려했다. 메인 거리로 가는 길에 볼거리, 먹을거리들이 풍성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버스킹 공연도 하길래 좋은 자리 잡고 관람했는데, 나만 안 웃는다. 웃음 박한 사람으로 알라. 니들도 성문기본이랑 맨투맨으로 영어 배웠으면 이 공연 보고 못 웃을 걸. 


Pier 39에는 각종 선물가게들이 넘쳐났고, 마우이에서 좋은 추억을 안겨준 bubba gump도 있었다. 그때 깨뜨린 유리컵이나 하나 살까. 아니다. 깨질 수 있는 짐은 이제 그만. Pier 39는 넓지도 않고 아기자기한 공간이라 컨디션 절정일 때의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아주 좋아할 듯. 지영이는 내일 친구 주희를 만나서 근사한 점심을 먹고 올 듯하니, 그 시간에 애들이랑 오면 되겠다. 사람이 너무 많아 밥 먹기가 쉽지 않겠지만, 근처 In-N-Out 가면 되겠네. 내일 일정이 점점 탄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해졌다. 가죽잠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사진을 보냈는데 읽지 않는다. 진짜 잠들었네. 


난 다시 돌아가 노트북을 들고 다시 로비로 내려왔다. 모닥불이 절정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나도 운치 있게 그 앞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켰다. 아, 이 장면 좋네. 누가 사진 하나 찍어주면 좋겠다. 그런데 오래 폼을 잡고 있기엔 여전히 너무 추웠다. 모닥불은 난방용이 아닌 관상용인 걸로. 5분 만에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내 옆에선 친구들끼리 포커를 치고 있고, 내 앞에선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일장 연설을 하시고, 내 뒤에선 젊은 애들이 포켓볼과 탁구를 친다. 음악도 좋고, 모닥불에서 바람 타고 날아오는 마시멜로 냄새도 좋다. 


다 좋은데, 호텔 와이파이가 구리다. 90년대 모뎀을 쓰고 있는 기분. 5분이면 할 일이 20분 넘게 걸린다. 중간중간 끊겨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빡침도 감내해야 한다. 역시 IT강국 우리나라만 곳이 없구나. 


또 하루가 이렇게 저문다.

내일은 네 가족 모두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오길.



IHOP 브런치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 ROYAL STAR


컨디션 안 좋은 세 여인. 아빠만 신남.


알카트라즈 감옥. 대동고등학교처럼 생겼다.


소살리토 도착


LAPPERT'S ICE CREAM


이 길 맞아? 


Taste of Rome. 저 피자 한 판을 못 먹다니.


그만 찍고 빨리 돌아가자 표정들


전차 타고 호텔로


Thai Restaurant 저녁


Pier39


나 이 모자 사도 돼? 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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