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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May 11. 2016

10년 전 유럽여행 - #IOC 본부

예전에 어머니께 여쭤봤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어요? 그랬더니 경주, 설악산, 제주도가 아니라 뜻밖에도 서울로 가셨단다. 서울 어디에 갔었냐고 물으니, 남산타워도 올라가고, 명동에서 칼국수도 드셨다고 하셨다. 남산 밑 어느 호텔에서 묶었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술판을 벌였다는 기억도 떠올리셨다.


지우 지아도 나중에 아빠 엄마의 결혼 전 모습이 궁금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애들이 태어나기 전, 지영이와 단둘이 갔었던 2007년 8월의 유럽여행을 다시 따라가 보고자 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여행, 비록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당시 사진들과 끄적거린 흔적들을 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10년 전 사진들의 디테일을 끄집어내다보면, 잃어버린 기억들과 감정들이 살아나길 희망하며...   






드디어 도착했다. 로잔 IOC 본부


레만 호수 주위엔 유엔 유럽본부, WTO(세계 무역기구), WHO(세계 보건기구), WMO(세계 기상기구), ICRC(국제 적십자 위원회) 등 주요 국제기구들과 NGO들이 몰려 있다. 그중 하나가 이번 여행 나의 Main 목적지였던 로잔 IOC 본부.(참고로 지영이의 Main 목적지는 이탈리아 꼬모 쇼핑몰이었다.) 


IOC는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의 준말인데, IOC 본부 건물 입구엔 CIO라 적혀 있다. Changwoo Son이나 Son, Changwoo나 같은 사람인 것처럼 이해하면 되겠지.



[IOC 박물관에서 IOC 본부로 가는 길]


[신관 공사 조감도 같은 느낌]


[IOC 본부 입구]



쿠베르탱 남작이 일하던 IOC 본부 구관 옆에, 섹시한 자태의 신관이 증축되고 있었다. Classic 함의 결정체인 구관과 비교되어 모던 레트로 콘셉트의 신관은 다소 조화롭지 않아 보였지만, 청바지에 청남방을 넣어 입던 내가 언제부터 이런 조화를 따졌다고 콘셉트 평가질을 하다니. 사과한다. 


단순하게 내가 IOC 직원이면 구관의 Classic 함을 억지로 살리며 조화를 맞춘 건물보다는, 뭔가 시스템 에어컨 빵빵하게 나올 것 같고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되어 있을 것 같은 이런 최신식 건물에서 일하고 싶을 듯했다. 



[왼쪽이 건물이 구관, 오른쪽 검은 요새가 신관, 동상을 따라 하고 있는 지영이]

[촌스럽게 동상 따라 하는 나보다, 뛰어가는 저 아이들이 뭔가 올림픽스럽다]


앞서 밝혔듯이 나의 꿈은 IOC 위원이었고, 그런 거창한 목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포츠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IOC 본부 같은 곳에는 STAFF목걸이 하나 걸고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면서 살 줄 알았다. 


사실 나도 몇 번의 도전을 한 적이 있었다. 삼성전자 마케팅팀에서 프린터를 열심히 팔던 시절 – 프린터 한 품목을 잉크젯, 컬러, 레이저, 복합기, FAX, 잉크, 토너 등 9개 모델군으로 잘게 구분해서, 대리점, 용산상가, 할인점, 백화점, 인터넷, 홈쇼핑, 하이마트, 전자랜드 등 16개의 유통으로 나눠서 매주 수요 예측하고, 유통별 영업전략 뿌리고, 행사 제품 가격 치고, 주차별 실적 분석하고, 월별 분기별 반기 연간 전략을 세우던 시절, 다시 말해서 일은 토할 듯이 많이 하는데 제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던 시절 – 나의 마음 한편에는 항상 스포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내가 잠시 머물며 기본을 배우는 곳일 뿐, 난 결국 스포츠 인더스트리라는 내 집을 찾아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만으로 끝내진 않고 몇 번 강한 탈출을 시도했었다. 한 번은 2007년 경이었던 것 같다. 

무작정 평창 올림픽 준비위원회를 찾아가서 당시 국내 스포츠 외교의 단연 원톱으로 활동하시던 사무총장님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당시 사무총장님의 사무실은 내가 꿈에서나 그리던 일터 그 자체였다. 한쪽 벽에는 세계지도가 큼지막하게 붙여져 있고, 각 나라별 IOC 위원들의 사진과 그들의 Likes, Dislikes 등 사무총장님이 오랜 시간 직접 스포츠 외교 활동을 하시며 수집한 정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평창 올림픽은 그렇게 섬세하게 준비되고 있었다. 와, 진짜 여기서 일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제 소개를 드리자면 블라블라…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블라블라… 전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블라블라…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블라블라… 블라블라… “


“결론은, 저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사무총장님은 자그마치 두 시간을 할애하여내게 조언을 해주셨다.  요약하면 “정말 스포츠 산업에서 큰 일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내 꿈이 IOC 위원이라면, 스포츠 인더스트리에 나중에 들어와라. 실무로 들어와서 바닥부터 올라가지 말고 현재 하는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더 높은 위치로 들어와서 더 큰 일을 해라. 그래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씀이셨다. 


이 날부터 내 머리 속에서 스포츠 관련 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지웠던 것 같다. 대신 먼 훗날이 되겠지만 언젠가는 VIP 명찰을 달고 스포츠 현장에서 마지막 커리어를 불태우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10년이 흘렀다. 난 휴가도 로잔 IOC 본부로 갔었고 평창 올림픽 준비위원회를 대차게 찾아가서 거기서 일해보고 싶다고 셀프 추천을 했던 그 시절의 꿈들을, 놀랍게도 10년간 잊고 지냈다. 대신 살면서 자발적으로 스포츠 중계를 단 1분도 안 봤을 것 같고 전혀 관심이 없는 지영이가 올림픽 공식 파트너사에서 올림픽 및 스포츠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브라질 올림픽, 평창 올림픽에 STAFF 목걸이를 걸고 현장을 누빌 듯하다. 그건 내 꿈이었는데, 참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그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지 놀랍게도 10년간 잊고 지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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