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창우 May 12. 2016

10년 전 유럽 여행 - #밀라노

예전에 어머니께 여쭤봤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갔어요? 그랬더니 경주, 설악산, 제주도가 아니라 뜻밖에도 서울로 가셨단다. 서울 어디에 갔었냐고 물으니, 남산타워도 올라가고, 명동에서 칼국수도 드셨다고 하셨다. 남산 밑 어느 호텔에서 묶었는데, 아버지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술판을 벌였다는 기억도 떠올리셨다.


지우 지아도 나중에 아빠 엄마의 결혼 전 모습이 궁금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애들이 태어나기 전, 지영이와 단둘이 갔었던 2007년 8월의 유럽여행을 다시 따라가 보고자 한다. 10년이 훌쩍 지난 여행, 비록 기억이 선명하진 않지만, 당시 사진들과 끄적거린 흔적들을 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10년 전 사진들의 디테일을 끄집어 내다 보면, 잃어버린 기억들과 감정들이 살아나길 희망하며...   






스위스 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동하는 날.


아침 9시 기차를 타기 위해, EarlyBird가 되어 호텔 조식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짐을 꾸려 나왔다. 여행 업무 분장 상, Reservation, Translation, Ticketing 등 고부가가치 업무는 지영이의 몫이었고, 운전, 짐 운반 등의 저부가가치 일을 담당했던 나는, 국가 간의 이동을 위한 내 몫을 하기 위해 가장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까무잡잡한 피부로 짐을 옮기고 있는 사진들을 보니, 슬프지만 나의 별명들이 떠오른다.


난 학창 시절 내내 별명으로 불리었다. 참 많은 별명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오래 불린 별명이 “쭉빼”. 사람의 별명으로 불리기 너무나 부적합한 이런 단어가 나의 별명이 된 건 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1학년 때, 난 중간고사를 일찍 끝내고 친구 놈 – 부산에서 류즈 아카데미 원장을 하고 있는 류지훈 – 한테 놀러 갈까 삐삐를 쳤더니, 내일까지 시험이라고 오지 말라고 한다. 어이가 없다. 지가 언제부터 시험기간에 공부했다고. 


난 시험이 끝났고, 지훈이는 다음 날 몇 과목 시험이 남았고. 이런 설정 아주 좋다. 사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삐삐를 쳤었는데, 오지 말라는 음성메시지를 듣고 결심을 굳혔다. 무조건 가야지. 지가 언제부터 공부 열심히 했다고.


한 시간 지하철을 타고 몰래 그 친구 자취방으로 가서 방문을 살짝 열었더니, 어라! 진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난 문 사이로 고개를 쭈욱 들이밀고,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놀란 녀석, 고개를 돌려 날 보더니 진짜 어처구니없어한다. 


“미친놈아, 고개 쭉 빼고 뭐하는 짓이고. 이제 니 별명은 쭉빼다.”


그때부터 내 별명이 쭉빼가 되었다. 별명의 기원도 이상하고, 사실 쭉빼란 별명이 말이 되나. 모름지기 별명은 명사여야 한다. 까마귀, 개, 돼지, 또라이, 거북이, 메뚜기 등등. 그런데 쭉빼는 동사쟎아. 동사형 별명은 들어본 적도 없고, 어감도 안 좋고, 공공장소에서 불리기 부적절하고, 전체적으로 사람의 별명이 되기 힘든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난 ‘쭉빼’란 별명을 그 이후로 20년째 듣고 있다. 요즘은 그것도 귀챦은지 “쭉”으로 불린다. 동사에서 심지어 부사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쭉빼'란 별명이 널린 퍼진 건 삐삐 때문이었다. 당시 커피숍이나 호프집에 들어가면 가게 번호로 친구들에게 삐삐를 쳤다. 그러면 카운터에서 “손님 중에 누구누구 씨, 카운터에 전화와 있습니다.” 혹은 “xxxx번 호출하신 분?”이라고 방송이 나온다. 당시 친구 녀석들 내 몸에 위치추적장치를 달아 놨는지, 어디든 들어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카운터에서 날 찾았다. “손님 중에 손죽배씨, 손죽배씨, 카운터에 전화 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저 사람, 이름이 손죽배래. 손죽배”하며 키득키득거렸다. 그렇게 나의 동사형 별명은 슬프게도 널리 널리 퍼졌었다. 


쭉빼란 별명을 가지기 전에도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강력하게 1년 정도 불렸던 별명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별명을 부르던 친구들이 중학교 때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 난초반 모범생 이미지를 구축하며 별명 세탁을 시도했고, 더 이상 그 별명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조차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절 나의 별명을 유일하게 다 기억하고 있던 성준이가 나의 대학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우연히 합류해서,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밑도 끝도 없이 다음 화제를 꺼냈다.


“느그 쭉빼 초등학교 때 별명이 뭔지 아나?”


순간 긴장되었다.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다. 그중 이 녀석이 무슨 별명을 말하려고 하는지 나도 헷갈렸다. 까마귀? 개창? 이런 비상식적인 별명들도 있긴 했었다. 이 놈이 그중 뭘 말하려는 거지?


“뭐야, 뭐야, 빨리 알려줘. (서울 친구들의 찰진 서울말)”


“쭉빼 초등학교 때 별명, 시릴로였다. 얼굴 까맣고 못생겨서.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던 못난 흑인 아이 시릴로”


서울 친구들은 난리가 났다. “크크크. 맞아, 시릴로. 닮았어, 닮았어 (여전히 찰진 서울말)” 


솔직히 난 시릴로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래 사진을 보니, 조금 시릴로 느낌이 나긴 한다. 이래서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구나. 그래도 우리 딸들은 마리아 호아키나처럼 이쁘게 키우리라.



밀라노에서의 첫날은 여행의 정석,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2층에 앉아 자리마다 비치되어 있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설명을 듣고 다녔는데,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사람들이 오른쪽을 쳐다볼 때 난 왼쪽을 보다가 급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사람들은 또 왼쪽을 쳐다보는 식이었다. 이땐 나의 listening이 그나마 살아있던 때였으니 이어폰이 불량이었거나 성우의 발음 문제였으리라. 그래서 설명 듣는걸 포기하고 주위를 보고 연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세계 3대 성당 중의 하나라고 하는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내렸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영어를 통한 정보라 확실치는 않지만 500년 걸려서 지었다고 했는데 난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밀라노 시청 공익근무요원들만 투입해도 5년이면 지을 것 같아 보였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살펴보니 숫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래서 세계 3대 성당이구나.





[두오모 광장에서 만취한 박정효와의 통화]



두오모 광장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옆 건물로 들어갔는데, 아뿔싸 명품들이 모여 있는 쇼핑몰이었다. 마냥 신난 지영이 여기저기 기웃기웃. 맘 같아선 다 사주고 싶었지만, 루이뷔통, 프라다, 스왈로브스키 대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줬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두오모 성당으로 입장하려고 했으나, 지영이가 치마 입고 왔다고 뺀치를 먹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고교생 이상 관람가인 지존무상을 보러 들어가다가 뺀치 먹고, 대학교 1학년 때 강남 나이트 딥하우스에서 뺀치 먹은 이후, 내 인생 3번째 뺀치였다. 그리하여, 우린 슈퍼에 가서 와인 한 병을 포함하여

맛있는 것을 잔뜩 사 와서, 호텔로 돌아와 룸서비스로 거하게 저녁을 즐겼다. 밀라노 쉐라톤 호텔, 역시 처제 덕분에 남양주 모텔 수준의 숙박비만 지불했었고, 심지어 룸서비스도 반값이었다. 




그렇게 밀라노에서의 첫 째날, 유럽에서의 넷째 날이 저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년 전 유럽여행 - #IOC 본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