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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May 28. 2016

Bar & Juice

아침은 편의점에서 파는 삶은 달걀 '감동란'이나 Protein Bar와 함께 주스를 마신다. 물론 초코파이류와 바닐라 라떼 조합이나 햄버거와 콜라 조합처럼 대놓고 몸이 좋지 않아 보이는 칼로리 덩어리들로 아침을 대신할 때도 있지만, 요즘은 극도로 일탈하고 싶은 날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


어제 아침은 감동란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Protein Bar를 먹기로 했다. 사실 아침 대용으로 먹는 Bar 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다. Kellogg’s의 Rice Krispies Treats. 그중에서도 Crispy Marshmallow가 스며들어가 있는 Double Chocolatey Chunk를 좋아한다. 트랜스지방, 콜레스테롤이 0으로 적혀있고 170 calories per bar이면 과해 보이진 않으나, 한 입 베어 물면 이건 연양갱 수준의 달달함의 끝판왕, '정말 내 몸 오늘 한 번 제대로 타락해보자'라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코스트코에서 Premier Protein Bar를 한 박스 샀다. Rice Krispies Treats에 비해 맛 더럽게 없지만 건강해 보여서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오늘 확인해보니 290 calaories다. 아 몰라, 그냥 운동하면 되지 뭐.


그리고 주스.

역시 코스트코에서 몇 박스 사놓은 카프리썬이 압도적으로 맛있다.


자태도 고운 카프리썬 오렌지 망고



카프리썬에 빨대를 꼽고 맛 지독하게 없는 Protein Bar를 한 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씹어 넘긴 후, 큰 심호흡을 하고 빨대를 힘차게 빨았는데...


헉, 깜짝 놀랐다.

주스가 아닌 공기만 입 속으로 가득 들어왔다.

이건 뭐지?


내가 빨대를 덜 꼽았나? 아닌데. 절반 이상 깊숙이 박혀 있다. 그럼 빨대에 구멍이 났나? 그럴 경우 빨대 안에서 공기를 끌어올리는 힘이 약해져 음료가 잘 딸려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님 나의 심폐 능력이 낮아졌나? 설마. 담배도 안 피우는 내가 주스를 끌어올릴 힘이 없다고? 말이 안 된다.


살면서 이럴 때가 있다.


계단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한 칸이 더 있거나, 계속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끝나버리면, 정말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 듯 비틀거리게 된다. 너무나 일상적인 행동들에서 무의식적 예측과 벗어난 결과가 나타날 때 우리 몸은 깜짝 놀라게 된다.


복싱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펀치는 아무리 강하더라도 몸이 웬만큼은 다 흡수를 한다. 하지만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각도에서 펀치가 날아와 타격이 가해질 땐 나도 모르게 정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예전에 시합 때 다운을 당해서 순간 5초 정도 정신을 잃은 적이 있다. 어떤 펀치를 맞았는지 기억도 안 났다. 그래서 시합 후 동영상을 보니, 정말 수많은 상대의 카운터 펀치들을 위빙이나 더킹으로 피할 힘도 없어서 그냥 얼굴 갖다 대면서 다 받아버리고 있었는데, 어처구니없는 각도로 날아와 힘도 제대로 실리지 않은 오픈성 훅이 머리를 살짝 스쳤는데, 그 펀치로 난 다운이 되었고 순간 기억을 잃었던 것이었다.  


오늘이 그랬다.

빨대를 타고 딸려 올라와서 내 혀를 휘감아줘야 하는 카프리썬이 올라오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빨대를 힘차게 빨았다.


헉. 또 주스가 안 올라온다.

이거 진짜 뭐지? 유리겔라의 휘어진 숟가락처럼 설명하기 힘든 물리적인 현상이다.

난 최선을 다해서 빨았는데 주스가 올라오지 않는다. 꿈인가?

카프리썬을 마시다 레드썬이 된 기분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10초간 주스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 미스터리를 풀려면 문제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 유리겔라의 초능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시각이 필요할 뿐.




빨대 꽂을 때 손바닥 안찌른게 다행



그랬더니 답이 보였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줄 아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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