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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Jun 15. 2016

수학의 정석

가끔 점심시간에 영풍문고 가서 책을 읽는다.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골라 구석 계단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본다. 처음에는 돈 주고 사기 애매한 책 위주로 읽다가, 요즘은 변태성이 폭발하여 내가 절대 읽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은 책들을 자주 고르는 편이다.


그리고 며칠 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역대급 베스트셀러 – 홍성대 씨의 '수학의 정석'


우리 때와는 달리 여러 권으로 쪼개져 있다.


난 고등학교 때, 수학만 잘하는 학생이었다. 국어 영어는 크게 뒤처지지 않을 정도만 간당간당하게 성적 유지했고 암기과목은 그때도 내 기억의 유통기간이 짧아서 미리 외웠다가 시험 당일날 다 까먹어버리는 악순환을 반복했었는데, 수학 한 과목으로 나머지 과목들 점수 다 만회하며 성적을 유지했었다.


수학을 처음부터 잘한 것은 아니다. 당시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별이 빛나는 밤에’를 매일 들었다. 부산에는 이문세 씨가 진행하는 방송이 나오지 않았고, 성우 한 분이 높낮이 없는 톤과 희로애락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목소리로 진행을 했지만 내 귀에는 충분히 호강스러웠다.


라디오는 무조건 들어야 했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할 수 있는 공부가 수학뿐이었다. 귀로 음악을 듣고, 눈과 손은 기계적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나갔다. 팝송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야간 자습시간에도 교복 안주머니에 국제시장에서 산 마이마이 워커맨을 넣고, 왼쪽 팔 쪽으로 이어폰을 쭈욱 뺀 후 시계로 고정시킨 다음, 왼쪽 귀에 몰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때도 할 수 있는 공부는 수학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공부 시간의 80~90%는 수학에 할당되었다. 수학이 좋아서가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다. 정석은 기본으로 다 풀고, 문제집도 4~5권을 기계적으로 풀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이 풀면, 시험칠 때 틀리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다행히 당시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들 중에는 피타고라스급의 수학자나 스티브 잡스급의 창의력을 가진 분들은 없어서, 4~5개의 문제집을 풀고 나면 거기서 크게 벗어나는 문제는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난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특히 수포자들이 드글드글한 문과로 진학한 이후에는 다른 과목들 다 죽을 쒀도 수학 한 과목으로 다 커버가 될 정도였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이 반가웠다.

난 탄력받아 30분씩 3일 동안 정석을 쭈욱 훑어보았다.


대학 4학년 때까지 과외를 했기 때문에, 문제들이 낯설지 않았다. 책을 사서 하루에 20~30분씩 풀어볼까, 라는 해괴망측한 생각도 해볼 정도로 '수학의 정석'은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다.


처음에는 아는 문제들과 익숙한 풀이과정들을 확인하며 '역시 수학은 손창우지' 자뻑 상태에 빠져 영어로 상처받은 내 영혼을 달래주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불편함이 밀려온다.


그때 했어야 할 질문이 이제야 떠오른다.

이걸 왜 배우는 걸까?


예를 들면 이런 문제다.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시오.


풀이과정은 이렇다. √2가 유리수임을 가정하면 분수 꼴로 표기될 수 있고, 양변 제곱하고 계산하다 보면, √2가 분수 꼴로 표기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며, 마지막 줄에 그 유명한 ∴ 표시를 한 후, 가정이 거짓이니 √2는 무리수라고 증명이 끝난다.

 

풀이 과정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런데, 이걸 고등학교 때 왜 증명해야만 했던 것일까.


√2가 유리수건 무리수건... 그게 뭐시 중헌디.


굳이 난이도 높은 실수 파트까지 예를 들지 않아도 된다. 30과 36의 최소공배수와 최대공약수를 왜 구했던 것일까. 왜 답을 내기 위해서 인수분해를 했던 것일까. 물론 최소공배수는 인류가 자연의 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나온 개념이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억지로라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백 번 양보해도 부정적분, 지수, 로그는 왜 배웠고 a^f(x)=a^g(x)이면 f(x)=g(x)인걸 왜 증명해야 했고, 난 그 증명법을 왜 외웠던 것일까. 난 그저 음악을 듣기 위해 수학 문제를 풀었을 뿐이었고, 기계적으로 많이 풀다 보니 풀이 방법들을 암기과목처럼 자연스럽게 외우게 되었고, 그래서 수학 시험 점수가 높았고, 그렇게 수학 잘하는 학생으로 수포자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던 것일 뿐,


난 수학의 각 단원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냥 풀이 기계였다.

내가 수학을 잘했다는 것은 착각이었고, 각각의 개념들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이런 개념들이 어떻게 적용되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내가 아는 것은 전혀 없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홍성대 씨가 수학 교육을 많이 망쳐놨었구나.


외국은 달리 가르치는지 구글을 찾아봤더니,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는 방식은 동일했다.


수학의 정석 책은 안사기로 했다.

대신,

뭣이 중헌지 이제 좀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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