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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Nov 01. 2016

월간 김창우 : 2016년 10월

빨래걸이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 문이 잠겼다. 어이없게도 빨래걸이가 사고를 쳤다. 가뜩이나 구부러지고 날이 빠져서, 초록 테이프로 생명 연장을 해주고 있던 빨래걸이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미닫이 문에 끼어버렸다. 문틈에 억지로 힘주어 넣으려고 해도 들어가기 힘든 사이즈인데, 어떻게 저렇게 꽉 끼었을까.


문을 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을 떼어낼 공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피라미드의 돌을 쌓은 고대 수학자들이 봐도 감동받을 만큼 완벽하게 끼었다. 나, 와이프, 장인어른, 장모님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감, 경험, 창의력 및 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이 사태를 해결해보려 애썼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의 나약함과 무능함을 일깨워주는 빨래걸이


권력서열이 화두인 요즘, 굳이 이 집의 권력서열을 따지면 내가 6위 정도 된다. 장모님, 장인어른, 와이프, 넘버원, 넘버투에 이어 6위이다. 권력 선순위자들 모두가 이 사태에 좌절했고, 자괴감에 빠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간 이후 조용히 내가 나섰다.


먼저 문수리 업체에 전화를 했다. 상황을 묘사했더니 사진을 찍어 보내달란다. 그래서 위 사진을 찍어 보내줬더니,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방법이 없습니다" 


참 대답 쉽다. 무책임하게 느껴지면서도, 괜한 기대감을 한 칼에 잘라주어 오히려 고마웠다.


두 번째로 다른 방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후, 벽을 통해 이동하는 스파이더맨 전법. 우리 집이 3층밖에 되지 않고 발을 디딜 수 있는 약간의 공간과 움켜쥘 수 있는 가스관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서, 건물 따위는 날아다니는 성룡의 화려한 액션을 보여 주지 않아도 충분히 건너갈 만해 보였다. 사실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게를 버텨줘야 할 발 밑의 홈 부분에 약간의 균열들이 보인다. 발을 내딛는 순간 우르르 무너져 버리는 장면이 그려졌다. 무너져봤자 3층인데 그래도 한 번 도전해볼까 하고 몸을 반쯤 뺐을 때, 그 장면을 장모님께서 보시고 화들짝 놀래며 말리셨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 돈은 들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사설 사다리차를 불렀다. 전화했더니 20분 만에 도착했다. 사다리차를 마치 잠자리채 마냥 가볍게 휙휙 휘저으며 사용하실 법한 아저씨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오셨다. 이 분은 신석기시대에 태어났으면 빗살무늬토기로 마을 하나쯤은 휘어잡으셨을 듯.


문제는 나무였다. 잠겨 있는 다용도실로 들어갈 수 있는 창문 앞에 나무가 한 그루 있어서 내 기준에서는 도저히 각도가 잘 안 나왔다. 하지만 빗살무늬토기 아저씨는 별을 따 듯 하늘 높이 사다리를 길게 뽑더니, 3층 창문까지 밑으로 쭈욱 내리셨다. 나무가 뒷덜미를 잡힌 채 끌려 내려왔지만, 나무가 생각보다 많이 휘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조금만 더 내렸으면 우두둑 소리가 나며 부러질 것 같았지만, 고맙게도 나무는 잘 버텨주었다.


난 내가 올라가면 안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이미 스파이더맨처럼 성큼성큼 올라가서 창문을 열고 계셨다.



그렇게 우린 다시 세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준비


10월 초중순은 여행 준비 기간이었다.


나의 여행 준비 스타일은 참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검색 가능한 것을, 저렇게 지도를 보면서 수기로 기록하며 정리하는 것이 나만의 오랜 여행 준비 습관이다. 전형적인 아재의 아날로그식 여행 준비다.


작년 2월 제주도 가족 여행 때 지도와 이번 여행 준비 지도를 보면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하지만 그 사이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과거엔 동선 위주의 준비였다고 하면 이젠 동선, 날씨, 여행 구성원들의 기호, 예산, 예상되는 컨디션 및 기분 상태 등 감안하는 변수들이 훨씬 많아졌다. 이 모든 정량적 정성적 data들을 스케줄표에 녹여내고 나면, 난 이미 여행을 한 번 다녀온 듯하다. 그렇게 준비 후 현지에 도착하면 더 이상 인터넷이나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도 머릿속으로 저곳들이 떠오른다. 여행 가이드북은 더 이상 필요 없다.


<2015.2월 제주도 여행 vs 2016.10 마우이 여행>


그렇게 2016년 두 번째 하와이 여행을 준비했다.



밀크카라멜


출국하던 날, 면세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와이프가 계산대에 있던 추억의 밀크카라멜을 하나 샀다. 지우에게 이거 엄마 아빠 어릴 때 먹던 카라멜인데 정말 맛있을 거라고 하나 줬다. 지우는 원래 처음 보는 음식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데, 심지어 똥 색깔을 하고 있는 정육면체 무언가를 건네주니, 역시 처음엔 입을 쉽게 벌리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 카라멜 향기가 전해지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그제야 입에 조심스럽게 카라멜을 넣었다. 난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내 예상대로 정확히 3초 만에 반응이 왔다. 생선을 본 길고양이처럼 순식간에 동공이 커졌다. 지우가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정말 오래간만에 봤다. 목소리도 흥분해서 하이톤이 되었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다. 왜 진작 이걸 안 사줬어”


언니가 감탄하는 표정을 보고 지아도 빨리 달라고 입을 쩍쩍 벌려서 냉큼 하나 입에 넣어 줬다. 지아는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잠시 오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뱉었다. 사탕을 기대했는데  물컹거리는 식감에 놀랬던지 당황한 표정을 하며 뱉고 말았다.


지우에게 지아는 맛이 없다며 뱉었다고 했더니, 지아가 뱉은 거 자기 달란다. 혹시나 해서 줬더니,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진짜 입에 넣었다. 평소 지우를 아는 우리에겐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평소엔 포크나 컵도 같이 안쓸 만큼 과하게 깔끔 떨던 아이였는데, 동생이 두어 번 씹다 뱉은 카라멜을 먹다니. 이것은 이 아이가 이성적으로 깔끔 떨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린, 정말 천국의 맛이라는 말이다. 내가 처음 참치캔을 따서 먹었을 때와 오양맛살을 먹었을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다시 그 식당으로 돌아가서 5개를 더 사줬다.




두 번째 하와이


10월 20일~10월 31일, 2016년 두 번째 하와이 가족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어젯밤에 돌아왔다.


이번 여행도 지난번처럼 매일매일의 에피소드들을 기록했고 책으로 10부 정도 만들어 가족들과 공유할 생각이다. 다만 지난번보다 훨씬 강행군이었던 탓에 현지에서의 정리가 충분치 못하여, 틈틈이 수정 및 보강 작업을 해야 할 듯하다. 그렇게 준비되는 대로 가족들이 먼저 책을 본 후, 브런치에 하나씩 공유할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이 번 두 번째 하와이 여행은, 희망컨대 내년에 있을 세 번째 하와이 여행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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