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나름 부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
이마트나 코슷코에서 먹고 싶은 거 막 담을 때,
누구 생일도 아닌데 케익이나 선물을 사서 들어갈 때,
커피빈에서 핑크 카드 스탬프 쿨하게 안 찍는다고 할 때,
나이 든 택시 아저씨께 이유 없이 3000원 더 추가해서 카드 그어달라고 할 때,
축의금, 조의금 낼 때 관계에 어울리는 평균 금액보다 한 단계 높은 금액을 봉투에 넣을 때,
이럴 때 이제 부자가 되었구나 느낀다.
그리고 이 야단법석으로 가격이 폭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우리 집 식탁에 올려져 있는 엄청난 크기의 계란말이 두 개를 보면서,
우리 집이 부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2016
올해 글을 100개 정도 쓸 계획이었다.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계량화된 목표는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100이란 숫자만 보고 뛰었다.
더 나아가 일 년에 100개씩 3년만 써보기로 했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300개 글의 법칙 같은 것이 있는지 3년 후에 결론을 내보고 싶었다.
이 글을 올리면, 올해 66개째로 끝난다.
목표대비 턱없이 부족하지만, 작년 책 100권 읽기 목표를 38권에서 끝낸 것보단 비율이 좋다.
굳이 변명을 더 하자면,
연초에 잡은 목표도 아니었고 4월에 공격적으로 세운 연간 목표임을 감안하면 기특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난 지난 일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나름 틈날 때마다 적어봤는데, 목표대비 66%로 끝내는 것은 억울하다.
내 기분도 66%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다른 기준들을 찾아본다.
흠, 뭐가 있을까. 그리고 책꽂이에 꽂아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올해 끄적거린 글들을 엮어 만든 세 권의 책.
저 세 권의 분량은 최초 생각했던 글 100개보단 훨씬 두꺼우니,
잠시 고민한 끝에 운용의 묘를 살려, <올해 글 100개 쓰기>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금일봉이나 상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니 목표를 달성할 때도 있구나.
그리고 그동안 까먹고 있었는데, 목표 달성은 뿌듯한 것이구나.
조금 더 부자가 된 기분이다.
2017년
이 아이가 벌써 10살이 된다.
아이의 나이가 두 자리가 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지하게 곱씹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우울해질 자신도 있다. 그만큼 아이의 성장은 아쉽고 슬프다.
그래도 지금까진 100점짜리 딸로 잘 커주고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속도로 미래가 다가오고 있는데,
확실한 것은, 이 아이가 컸을 때의 세상은 '인간미'가 제일의 덕목 이리라.
우리 딸은 아빠처럼 Joe Malone 향수를 뿌리지 않더라도, 향기 나고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