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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 Mar 14. 2023

공포분자


영화의 네 인물을 가로지르는 것은 어느날 걸려온 전화다. 그러나 아내는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 건가. <공포분자>의 줄거리는 제법 단순해보인다. 짓궂은 장난으로 오해가 생기고, 그것을 수습하려다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진다. 필름 누아르나 추리 소설처럼 각 사건들은 이어지는 결과의 명확한 원인을 제공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만약 소녀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아내는 이혼을 결심하지 않았을까. 남편은 소년으로부터 중요한 사실을 전달받고는 아내를 찾아가 이는 모두 오해였다고 말한다. 그는 요컨대 인과관계 속에서 틀어진 것을 반드시 바로잡고자 하는 인간이다. 때문에 악의없는 그의 삶이 잘못되어 가는 건 오류로 인한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영화 후반부에 그가 펼치는 복수극은 결국 문제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라도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그를 떠난 근본적인 이유는 다르다. 그녀는 이미 그를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전화는 그 이별에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남편 몰래 외도를 하고 있던 아내는 전화를 통해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를 면죄부 삼고는 오래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리고 뻔뻔하게 이를 소설로 써서 확인사살까지 할 정도로 남편을 향한 일말의 배려심 조차도 바닥나있는 인간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녀는 남편에게 더없이 솔직했다. 그녀는 새로운 시작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 결론은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엉뚱한 곳 - 익명의 전화 - 에서 원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는 인생이란 그저 몇가지 것들이 느슨하게 연결된 상관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것이다. 모두가 삶이 논리적으로 전개되길 바라지만 이 기대는 쉽게 배신당한다. 고도로 현대화된 사회에서 이는 특히 더 그렇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옅어지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자신 안에서만 맴도는 잘못된 원인 분석이다. 남편은 결국 복수극을 실천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시종일관 답을 찾으려고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는 그 거리를 좁힐 수 없단 사실을 비로소 이해했을 지도 모른다. 그건 현실과 감각기관의 인식 시차로 발생하는 멀미와도 같은 것이므로, 우리는 계속 헛구역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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