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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ybeen Aug 29. 2023

전공자도 전공자라서 러시아는 두려워요

#1 프롤로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직접 가보는 러시아

10,000km가 넘도록 11개 도시를 여행한 33박 34일의 이야기, 그리고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2018년 스물셋 나이의 성장기 ⓒboybeen


여행의 시작이 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집을 떠나 지긋했던 한국에서 발을 떼는 순간? 혹은 내가 꿈꾸던 그곳에 발을 내디딘 순간? 각자의 정답이 있겠지만, 저처럼 의미부여에 도가 튼 사람들은 여행을 마음먹은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합니다. 어떤 시간들로 채워나갈지 기대하다가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간들까지도 여행의 과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인생의 첫 해외 장기 배낭여행 2017년 봄, 모 대학교 축제 주막에서 곱창 굽는 냄새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날이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대학축제 주막에서 무려 돌판에 굽는 곱창이라뇨. 게다가 초대가수였던 래퍼의 가사가 은근히 수위가 높았음에도 학생, 교수, 주민 모두 개의치 않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학생 대부분이 서로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여서, 저도 겸사겸사 축제의 일원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LG드림챌린저에서 만났던 A 멘토님과 B 멘티 친구를 1년 만에 만나,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앞에 있던 메뉴를 고른 것이 곱창이었습니다. 꿈과 인생을 이야기하며 처음 만났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사과맛 순하리와 분위기에 취해버렸던 것인지 얼떨결에! 우연과 같은 필연처럼 구상해 온 여행을 말해버렸습니다. 눈 딱 감고 말해본 건데 얼떨떨해질 정도로 좋아해 주셔서, 가면 좋겠다~ 했던 여행이 순식간에 안 가면 큰일 나 여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살다 보면 이처럼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는 큰일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날도 좋았고, 사람도 좋았기 때문이겠죠.


최종적으로는 4점대 학점으로 졸업했지만, 유일하게 재수강을 2번 했던 과목이 모두 러시아어 문법이었다. ⓒboybeen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의 불꽃놀이. 5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사진. ⓒboybeen


그 후로 조금씩 그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여행에 미치다와 킬리가 콜라보한 50L 배낭도 펀딩 했고, 때마침 발간된 이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전역할 때까지 최소 10번은 읽었습니다. 아주 닳도록 봤죠. 그렇게 가이드북에 있는 모든 도시를 들르는 것으로 순식간에 여행경로를 마무리했고, 환불도 불가능한 초초초특가로 풀린 상트페테르부르크-인천 대한항공 직항 티켓을 구입하며 숙소, 열차 등과 같은 세부 사항들도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멘토형과 멘티 친구에게 말했던 그대로입니다.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직접 가보는 스물셋의 러시아!> 꽤나 길고도 관심 가득 받고 싶어 하는 듯한 이 제목은 XX 좋아하는 일들만 하면서 살고 싶은 제 인생관을 그대로 담은 결과입니다. 러시아어 전공자로 살아가며 “러시아 좋아해?”라는 질문에 경험이 부족해서 답하지 못하는 현실이 늘 아쉬웠기 때문인데요. 심지어 어영부영 졸업할 때쯤 되어서 러시아를 싫어하게 되는 건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에, 직접 가봤더니 다시는 가기 싫은 곳이라면 하루 빨리 때려 치우고 새 길을 찾겠다는 각오로 기획한 여행입니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가고 싶었던 학과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랑 딱 맞는 것 같았거든요. 주변에서도 이런 절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수시 면접장에서 깨달았죠. '내가 되고 싶었던 나'는, 어느샌가 남들의 시선에 따라 ‘그 학과에 무사히 입학해 낸 학생’이 되어 있었다는 걸 말입니다. 저한텐 열정도, 진심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선택하게 된 전공이 그나마 희귀한 언어를 하면 좋겠단 마음에 선택한 러시아어였습니다. 이젠 더 이상 그 무엇도 애매하게 좋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 정말 XX 좋아하는 일들만 하면서 미래를 꿈꾸고 싶습니다. 아무런 후회도, 자책도 없도록.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 찍은 사진. 포항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정동진으로, 정동진에서 동해로 떠나는 기차 캐리어 칸에 유일한 배낭이 어색했던 첫 시작. ⓒboybeen
의경 보급 가방과 여행에 미치다 펀딩으로 샀던 50L 여행 배낭. 이제는 두 가방 모두 중고 플랫폼에서나 뜨문뜨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boybeen
여행 다니며 누군가 나를 찍어 준 사진이 열 장도 채 되지 않아서, 그래서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울란우데 트래블러스 하우스의 착한 스탭 분이 찍어 주신 사진. ⓒboybeen


여하튼 드디어 시작합니다. 이게 뭐라고 프롤로그 한 편에 1년씩이나 걸렸네요. 아무래도 제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거창하지 않았던 여행이었으니, 잘 만든 속 빈 강정 같은 글들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배는 안 부른데 입은 안 심심한, 별 내용은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다 읽어버린 여행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싱글만 발매하다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아티스트의 심정이 이럴까요?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 본 여행기는 2019~2020년에 작성된 초고를 토대로 작업되었으며, 2018년에 다녀 온 여행인 만큼 지금과는 많은 부분들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일단 대학생 청년에서 직장인 아저씨가 되어버린 제가 가장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소소한 근황과 구구절절한 소회를 에필로그에 남겨두었으니 마지막까지 큰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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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박 34일,

11개의 도시와 바이칼호수까지!

10,000Km를 넘게 달렸던

2018년 스물셋 여름날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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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프롤로그 : 좋아할 수 있는 일만 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전공자도 전공자라서 러시아는 무서워요

02 동해항 : 배를 타고 러시아에 가는 건 영화에서나 봤지

03 블라디보스토크 1편 : 반가움에 '끝내주는 가게'를 소개해주겠다는 술 취한 현지인

04 블라디보스토크 2편 : 잘못 부른 택시가 폭우 속에 20분을 기다리다

05 울란우데 도시편 : 전 세계에서 가장 큰 42톤 짜리 레닌 두상이 있는 도시

06 울란우데 이볼긴스키 다짠편 : “다 끝내고 다시 시작할거야.” 사연 있는 현지인과 사찰을 걷다

07 울란우데 린포체 박샤 다짠편 : 부산(釜山) 사람은 평원에 약해

08 바이칼 호수 알혼섬 후지르마을 입성편 : 편도 6시간, 알 사람은 안다는 호수의 섬

09 바이칼 호수 북부 투어편 : 바다가 없으면 답답하다는 아버지를 호수에서 이해하다

10 바이칼 호수 알혼섬 카약 대장정 1편 : 수영은 못 해도 무작정 IN THE BAIKAL

11 바이칼 호수 알혼섬 카약 대장정 2편 : 카약도, 인생도 뒤집어지기는 쉽지 않아

12 이르쿠츠크 1편 : 유배자들이 일군 시베리아의 파리에서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다

13 이르쿠츠크 2편 : 유노스찌(젊음)섬, 청춘은 그 자체로 노 프라블럼

14 시베리아 횡단열차 : 러시아 군인 앞에서 꺼낸 K-POP이 왜 하필 ‘이등병의 편지’였을까

15 노보시비르스크 : ‘노잼도시’에도 사람은 산다, 그래서 재밌다

16 예카테린부르크 1편 :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마이클 잭슨을 기념하다

17 예카테린부르크 2편 : 치킨텐더를 시켜서 닭날개를 받아도 맛있는 게 여행이다

18 카잔 1편 : 자퇴한다더니 교환학생의 도시를 예습해도 되는 걸까

19 카잔 2편 : 정교회 성당 옆 이슬람 사원에서 느껴보는 연방국의 넓이

20 니즈니노브고라드 : 러시아에서 조국을 수호한 날에 한국 예비군으로서 축하를 받은 사연

21 황금고리 1편 블라디미르 : 으슥한 식당 한 구석 오크통에서 꺼낸 꿀술, 메도부하

22 황금고리 2편 수즈달 : 1,000년 전 방어요새도 이제는 선베드 명당

23 모스크바 1편 : 러시아어 전공자면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울어도 주책은 아니지?

24 모스크바 2편 : 모스크바의 871번째 생일, “오늘 모스크바는 잠들지 않습니다.”

25 모스크바 3편 : 지방 사람은 서울 한 번도 결심이 필요한데, 모스크바는 어떻겠어

26 모스크바 4편 : DIY가 취미가 아니라면 마트료시카는 꼭 열어보자

27 상트페테르부르크 1편 :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28 상트페테르부르크 2편 : 책을 산 게 죄고, 읽는 게 벌이라던 <죄와 벌> 따라 ‘도망’가기

29 상트페테르부르크 3편 : 비행기 시간 남았으면 투어 시켜줄게, 마지막 택시기사님의 호의

30 에필로그 : 스물셋의 나름 괜찮았던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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