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반댓말은 살자

[정토불교대학] 1. 입학식

by 윤보영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멘토라고 할 만한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 유투브로에 올라 온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찾아봤다. 운동도 해 보고, 명상도 하고,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하는데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꾸역꾸역 올라오는 감정을 무시한 채 현재에 집중하겠다라고 하면서 남편과 평온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못 참고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불평불만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남편은 듣지 않았고, 나는 세상에 홀로인 것 같았고, 별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정신병동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이었다.


남편과는 길에서부터 작은 말다툼을 하였다. 아파트로 들어올 때 다른 주민과 함께 들어왔는데, 그녀가 경찰에 신고한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다툼을 마무리 짓고, 샤워를 하고 나오니 누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여자 경찰 한 명, 남자 경찰 한 명. 여자 경찰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고, 남자 경찰은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조사를 하였다. 나는 작은 말다툼을 하였고, 지금은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가 죽으려고 했다,라고 말을 하면서 일이 커졌다. 남자 경찰은 나에게 다가와 괜찮아 보이지만 일단 남편이 네가 자살 시도를 하려고 했으니, 자신들의 메뉴얼에 따라서 병원에 데려 가야만 한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거리로의 병원을 구급차에 타서 갔다. 머릿 속으로는 이 빌어먹을 병원비를 또 얼마나 지출할 것인가로 두통이 왔다. 병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많은 질문을 하였고, 밤이 너무 늦어서 집으로 보낼 수 없고, 다음 날 아침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정신병동에서 밤을 보냈다. 내 방은 간호사실 바로 앞이였는데, 두세 명의 환자들이 여기는 자신들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소리치며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게 틀림 없으니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였고, 이윽고 건장한 남자 몇이 그들을 어딘가로 끌고 갔다. 어쩌면 그들이 하는 말이 맞을 수 있다. 그들은 멀쩡하고, 어떤 오해로 여기에 오게 된 거니 집으로 보내주면 될 일 아닌가? 하지만 그들은 정신병자이고, 정신병동에 있으므로, 그들의 말에는 아무 힘이 없었다.


아침 해가 밝자마자 또 다시 여러 병원 관계자들이 내 방에 찾아왔고, 곧 이어서 나는 병원 밖을 나올 수 있었다. 어젯밤에 샤워하고 나온 잠옷채로 와서 겉옷이 없었다. 아직 한 겨울이었다. 병원에서는 후드 집업을 하나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울고 있었다. 평일이었다. 밤새 병원에 계속 전화해서 왜 나를 데리고 갔는지, 왜 안 오는지, 빨리 보내달라고 했다고 했다. 나는 병동 전화기를 빌려 남편에게 회사에 내가 아파서 못 간다는 메시지를 상사에게 어떻게 보내면 될런지만을 최대한 침착하게 전했었다. 죄책감에 울고 있는 남편에게 뭐라고 말을 할 에너지가 하나도 없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달래고 싶은 마음도 한 켠 있지만,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다. 나를 보호해 줄 거라고 믿었던 한 사람이 나를 정신병원에 보냈다는 배신감에 머릿 속에서는 이미 이혼서류에 도장을 열댓번도 찍어댔다. 어쩌면 이 계기로 내가 좋아질 수도 있다, 라고 정신승리도 할 수 있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생각도 하기 싫었다. 일단은 내 방 침대에 누워 쉬기로 하였다.


그저 세상에 홀로라는 생각만 더 깊어졌다. 병원에서 짧은 시간을 보낸 소감은 내가 정말 힘들 때 도와 줄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내가 나를 포기해 버리면, 나는 그저 병원에서 인간이 아닌 청구서일 뿐. 도움을 받았다기보다 트라우마만 생긴 것 같았다.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병원에서는 보내주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는 심각한 일이라며, 정신 상담을 받기를 권했다. 내가 정신 상담 예약을 하기 전까지, 병원에서는 매주 전화를 하였다.


미국에서 한국 상담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찾았다 하더라고 내가 가진 보험이 적용되는지 안되는지를 따져야 했고, 대대수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한 세션 당 $200~$300이라고 하였다. 상담이라는 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기에 길에 보았을 때 이게 과연 지속가능할런지 모르겠어서 정말 마음에 들었던 분이었지만 진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운이 좋게 한국인 정신과 전문 간호사를 찾게 되었다. 굉장히 퉁명스러웠고, 내가 하는 말마다 의심을 해서 불쾌했지만 다른 특별한 대안이 없었고, 또 다른 누군가를 찾을 에너지도 없었고, 이렇게 상담을 해야 병원에서 해방될테니 그녀가 하자는대로 약도 처방받고, 전문 상담가와의 상담도 진행하기로 하였다. 상담가는 미국인이였어서 영어로 상담을 진행해서 답답한 적이 많았다. 약은 어쩐지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하면 그 길로를 막아논 것 같았다. 옳은 방법같지 않았다.


3개월 즈음 지났나, 전문 간호사와 다시 만났을 때 언제 약이나 상담을 그만 둘 수 있느냐 물으니 그녀는 특유의 조소를 머금고는 종교를 가지면 또 몰라? 라고 하였다. 별 시덥잖은 말을 하는구만 했지만 예전에 새어머니가 하신 이야기가 생각나서 종교를 가져 보기로 하였다.


한국에서 서강대학원 영상대학원을 잠깐 다닌 적이 있었다. 서강대는 카톡릭에서 운영되는 학교로 캠퍼스 안에 성당이 있었고, 그때 당시 대학원에서 공부하면 좋겠다고 이끌어 주셨던 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신부님에게 인사도 시켜주시고 직접 세례명도 미리 지어 주시며 같이 성당에 다니자고 하셨더랬다. 그리고 그때 새어머니는 이 때 즈음에는 종교를 가져도 괜찮을 거 같다며 지지해 주셨더랬다.


그 전에 대학교 신입생 때는,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께서 교회에 가자며 하셔 몇 번 따라 간 적이 있다. 그 전에도 몇 번 교회, 성당, 절 등에 혼자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새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은 어느 한 종교를 어릴 때 가지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으니 적어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혼자 사고가 가능해졌을 때 종교를 가져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불교를 적극적으로 알아가 보기로 하였다. 제일 먼저 한 일은 불교 서적을 엄청 주문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휴가를 떠나, 사찰에 머물렀다. 총 2군데에 머물렀었는데, 한 군데에서는 일주일 가량 하루 종일 위빳사나 명상만을 하였다. 휴가를 떠나러 공항으로 향할 때, 내 상담사에게서 현재 자신이 머무는 데에서 떠난다고 작별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상담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사람을 찾아 봐야하나 고민했던 순간이 분명 있었는데, 막상 그녀에게서 이런 소식을 접하니 다른 누군가에게 또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건가, 귀찮다라는 생각에 어디로 옮기느냐 나도 따라 가겠다, 하니 그건 정책상 추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내 정신과 전문 간호사와는 오래 전부터 만나지 않고 있었고, 약도 중단했고, 이렇게 상담가와도 휴가를 떠나기 전 이별을 하며 의도치 않게 나는 온전히 나만의 정신 건강 찾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일을 그만두었다. 내 정신 건강에 제일 큰 데미지를 주고 있는 건 아무래도 이제 10년이 훌쩍 넘어가도록 인연을 끊은 가족 관련이겠지만, 그 이외에는 회사였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였다. 불교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보기 위한 또 다른 걸음. 나는 과연 건강해 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