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마일 뛰고 멈추려던 우중 하프마라톤

2023.04.23 - Shape + Health Women's Half

by 윤보영

오전 7시. 전 날 끓여 놓은 차돌된장찌개에 밥을 챙겨 먹고 나갈 채비를 해 본다. 미리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해 두어서 들고나가기만 하면 된다. 비가 온다고 해서 쌀쌀할 걸 대비해 긴 레깅스와 레이스에서 나눠 준 반팔티, 바람막이. 티셔츠 위에다가는 번호표도 달아 놓았고, 페이스 조절을 위해 필요한 시계도 충전해 놓았다. 물통도 챙겨 놓고, 허리 벨트에는 열쇠랑 에너지 젤이며, 여차해서 화장실에 가야 하게 되면 쓸 휴지와 일회용 손세정제까지. 8시에 레이스가 시작하는데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센트럴 파크에서 레이스가 열리기에 느긋하다. 사실 가기가 싫다. 전 날 넷플릭스를 보느라 잠을 많이 못 자기도 했고… 일고여덟 시간은 자야 한다고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그래도 일단 가 보자라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서본다.


일주일 전부터 레이스 당일인 오늘, 일요일에 비가 100프로 온다고 해서 혹시 취소되려나 내심 기대했다. 토요일 밤 잠들기 전까지 행사 측에서 혹시나 취소한다고 이메일을 보내지 않을까 하고 계속해서 확인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오후 12시 즈음부터 비가 온다고 일기 예보가 바뀌어 있다. 오후 12시면 행사 다 끝났을 시간인데. 오늘은 뛰어야 하는 날인가 보다.


걸어가는 동안에는 비가 조금씩 내려서인지 사람이 없었는데 센트럴 파크 안으로 들어서니 행사 텐트며, 달리기 참가자들이며 해서 북적북적하다. 하프 마라톤은 13.1마일로 센트럴 파크를 두 바퀴 하고도 조금 더 뛰면 되는 거리이다. 센트럴 파크의 달리기 코스 한 바퀴는 6마일, 10킬로 정도가 되는데 중간중간 힐이 있어서 아주 쉽다고만은 할 수가 없다. 표범 같은 동상이 있는 고양이 언덕 (Cat Hill), 말 그대로 이스트 할렘 쪽에 있는 할렘 언덕(Harlem Hill), 작은 언덕이 하나 끝났다 싶으면 하나가 더 보이고, 이제 막 다 끝났다 하면 하나가 더 있는 세 자매 언덕(Three Sisters Hill), 요 세 군데가 센트럴 파크에서의 달리기를 힘들게 만든다. 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이 언덕을 몇 번 지나치게 되는지가 달라지는데, 오늘은 모든 언덕을 공평하게 다 두 번씩 지나치도록 코스가 짜여 있다. 쉽지 않겠다.


이번 주부터 새로운 달리기 클럽에 가입해 화요일 목요일 이틀 트레이닝에 참가했다. 목요일 트레이닝 도중 발목 아치 쪽이 뻐근해서 시작했던 다리 스트레칭이 잘못돼 아직까지도 발부터 다리까지 이어지는 근육이 팽팽하다. 늘 이렇다. 황새가 뱁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처럼 괜히 평소보다 욕심부리다 어디 하나가 탈이 난다. 이제는 하프 마라톤이 큰 행사처럼 느껴지지 않게 되긴 했어도 어딘가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좋은 핑곗거리다 하고 안 달리고 싶다.


모든 레이스에 임할 때의 마음가짐은 똑같다. 무리하지 말고, 즐기자. 물과 에너지 젤도 잘 챙기고, 화장실도 가고 싶으면 가는 등 수시로 내 몸을 챙길 것. 여기에 오늘은 여차하면 중간에 그냥 집으로 가는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하나 둘 셋, 총성 소리와 함께 레이스를 시작한다.


64가 서쪽에서 시작해 공원 입구인 59가 콜럼버스 서클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큰 전광판과 시계가 보이는데, 오늘은 비구름에 가렸다. 레이스 시간에 맞춰 빗방울은 멈췄지만 언제든 비가 내릴 준비는 되어 있는 상태. 건물 사이사이에 걸친 비구름을 보고서야 비로소 비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까지 내려왔구나 실감한다. 사람들의 달리기 진동 때문에 나뭇잎에 매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비처럼 후드득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날씨가 나쁘지 않다. 일단 비는 내리지 않으니 젖을 일이 없고, 후에 감기 걸릴 걱정도 덜 한 데다 공기 중에 꽉 들어 찬 수분 덕분에 물 마시지 않고도 달리기가 수월하달까. 우중 달리기를 낭만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뭐, 싫어하지는 않는 정도.


풀 마라톤 때도 그렇고, 짐에 있는 트레이드밀 위를 달릴 때도 그렇고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 음악을 안 들으면 지루해서 그 긴 시간 어떻게 달리냐고 하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 일단 현재에 머무르는 연습을 부단히 하는 중이긴 하나 여전히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시간이 훌쩍 가고, 무엇보다 멈춰 서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나 자신과 계속해서 싸워야 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정적으로 달리는 듯 보일지 몰라도 내 안은 분주하다. 예전에는 이어폰이며 헤드셋도 여러 가지 바꿔가며 끼어 보고, 음악도 bpm 템포 별로 나눠서 정리해서 듣고, 운동과 자기 계발을 동시에 해 보겠다며 팟캐스트며, 오디오북도 들어 봤지만 으뜸은 내 숨소리로 결론지었다. 뛰는 동안 내 컨디션이 어떤지, 조금 더 빨리 달려도 되는지, 조금 천천히 달려야 하는지 조절하며 레이스를 완주하려면 내 숨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3마일 즈음되니 집에 가고 싶다. 이대로 집에 가면 딱 좋겠는데. 이대로 진짜 집에 가도 뭐라 할 사람 한 명 없는데. 이렇게 시작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해 벌써 집에 도착해 씻고 침대에 눕는 상상까지 마쳤다가 정신을 차리고 바로 전 날 본 동기 부여 영상 속 방법이 생각나 한 번 따라 해 본다. 모든지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 때, 딱 숫자 5를 거꾸로 세어볼 것. 5, 4, 3, 2, 1. 시끄러웠던 머릿속에 숫자 5를 반복해서 거꾸로 세기 시작한다. 아, 집에 가고 싶… 5, 4, 3, 2, 1. 다리 쪽 근육이 땅겨오는데… 5, 4, 3, 2, 1.


하기 싫은 그 찰나의 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결승점에 도달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온갖 자잘한 생각들로 스스로를 못 살게 굴었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놓아 버리고는 다리 움직이는 데, 숨 들이쉬고 내쉬는 데에 집중하다 보면 내 주위에 달리는 사람들, 내가 달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공원, 머리 위 비구름, 빗물에 흘러 내려가는 벚꽃 잎 등이 비로소 눈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