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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pyboy May 24. 2022

아홉. 내가 안쓰럽나요?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목포에 돌아와 언짢은 기분을 숨기고는 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쉬러 내려와서 무슨 일인가 싶지만 결국 해야 할 일이 지금 와버린 것을 내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일을 하고, 매일 새벽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도, 요새 디자인 동향을 보기도 한다. 회사 다니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사람 마음이란 게 지치고 힘들면 무엇하나 손댈 수 조차 없게 되는 것처럼. 나는 대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며 살아간 것인가. 


오랫동안 신경 쓰지 않고 있던 카톡의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힐링은 물 건너갔고, 생존신고를 알렸다. 그러다 대학 동기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대학 동기는 내가 아쉽고 안쓰럽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나는 과대표를 하며 다른 동기들, 선배, 교수님들까지 흔히 예쁨 받던 학생이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챙기기 바빴다. 술자리란 술자리는 모두 참석하였고, 공모전에 과제까지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던 욕심으로 노력하고 또 낑낑대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취업을 하고 디자이너로 사회에 나가는 것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 나를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항상 불안했다. 확신 뒤에 있던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고, 결국 이 자리에 까지 오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꼬리표가 이렇게 동정과 연민의 눈빛으로 한순간에 돌변했다. 물론 나는 이 자리에 머물진 않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하고 다시 도약할 힘을 정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때로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의심과 불안을 내심 가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안쓰럽다는 동기의 말을 쓴웃음으로 밖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엇이든 노력으로 열심히 하던 내가 너무 약해졌고 나약해졌고,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한 자세히 보아야 빛이 나는 그런 사람으로 변해있었느니 동기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나 내가 동기에게 '원래 뭐든 높게 쌓으면 작은 충격에 쓰러지기 마련이니까, 높이 올라갈수록 다른 사람 눈에 띄지만 그만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무너지기 마련이야.' 그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는 나의 말에 동기도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네요.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빛나지 못하고 무너졌고, 다시 일어날 힘조차 의구심이 드는 요새지만,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나의 길이 있고, 그 길을 언젠가 찾아 멀리 떠날 것이라고, 다시는 내 뒤에 찍힌 발자국을 되새기며 후회하고 힘들어하지 않겠다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나눈 얘기들은 밤을 밝혔다. 디자인 얘기에 눈 반짝이며 몇 시간씩 술자리에서 떠들던 21살의 나는 디자인과의 권태를 이겨내려 고민하는 25살의 나로 변했으니. 단정 짓지 말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리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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