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pyboy May 23. 2022

여덟. 무책임한 어른이 될까 두려워.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 시간.

오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자영업을 하시는 아버지 가게에 문제가 생겨 주방 직원이 그만두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한 시간을 하소연을 하시며 얘기를 하셨지만 사실 쉬고 있는 내게 마음에 와닿는 얘기는 아니었다.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와서 도와달라는 얘기를 한 시간을 빙빙 돌려 얘기하셨던 것이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을 안 하려고 온 시골에서 생각이 너무도 많아졌다. 물론 깔끔하게 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결국 나를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찜찜한 기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곳 생활을 위해 깨끗하게 치워놓았던 집. 세팅해놓았던 노트북, 지내며 먹을 음식들까지 전부 미워 보였다. 물론 아버지의 잘못은 없다. 감정적이고 무책임한 직원의 문제가 컸지만 그것을 거절하지 못한 나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서울살이도 비슷했다. 누군가 부탁을 하고 나는 우물쭈물하다 결국 도와주거나 시간만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심심한 위로를 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착하고 좋은 것은 나를 돌아보고 챙길 줄 알아야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을.


살다 보면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야 할 순간이 온다. 매우 사소한 일이지만 책임의 무게를 좋아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결국 누군가는 피해를 보고 그동안 힘들게 쌓았던 유대관계도 한순간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무너졌다. 내가 무너뜨리기도 누군가의 유대가 무너지기도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라 배웠지만 무책임에 대한 책임이 누군가에게 옮겨지고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던 날도 있었더랬다.


나는 이제 무책임한 사람을 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하는 방법이 없다면 대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나이와 연륜과 어른은 전부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어른들도 무책임하고 아이들도 책임감이 강할 수 있다. 어른과 아이로 나누는 그 어른들이 결국 제일 무책임하다고, 내 일평생을 살며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어른들은 자신의 일은 커다란 돌덩이 같았고, 남의 일은 작디작은 돌멩이에 불과함을 항상 얘기했다.


내가 이런 편견이 생겨버린 것은 내가 아직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을 못 만나 봐서 일지도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찬 나의 이 불우한 인생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속은 사람만 바보로 만들어진다. 안타깝다. 속상하겠고 우울하겠지만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에서 모두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어른들은 어른인 척하지 말라며 혼을 내기도, 언제 철이 드냐며 혼을 내기도. 그저 한마디의 핀잔을 주고 싶었을 거라는 마음으로 더 이상 상처받지 말고 휘둘리지 말고 나아가야지.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귀감을 주고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면 적어도 괜찮다고, 시도해보라고, 때론 그 책임감이 너무 무겁진 않냐고. 물어봐주고 싶다. 그런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니까. 그지 같던 하루에 새로운 환기를 시켜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사랑이 없어도 연민의 감정이 없더라도 그런 사람이 언제든지 될 준비를 항상 하고 있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일곱. 사람이 사랑하면 안돼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