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은 어려워.
특성화고 3년, 전문대 2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디자인을 준비했고, 그렇고 고대하던 스물다섯의 첫 회사였다.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더 이상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빠른 사회로서의 발걸음을 서둘렀고 그 섣불렀던 나의 발걸음에 내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살아온 5년의 시간이 나를 무너뜨리는 건 단지 4개월이었다. 남들은 나에게 그 정도의 힘듦이라고 했고 나의 부모 또한 모두가 느끼고 조금도 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고 했다. 마치 기존에 내가 헛된 꿈 꿨던 사람이라고 깨닫게 해 주려는 것처럼.
4개월의 시간은 참 길었다. 첫 회사가 스타트업이었고, 대표와 다른 사람들은 내게 내일이라도 실현될 꿈처럼 회사의 비전을 설명하고 주입시키기 바빴다.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고 기대하고 가슴 한편에 매일매일을 설렘으로 품으며 살았다. 하나 그 설렘이 의문으로 남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매일 상처받았고 괜찮은 척 덮어두며 살았다. 막내라는 이유로 받았던 부당한 대우와 복지라며 내세우던 내 의사와 상관없던 모든 일들이 나에게 의문점을 심었고 이내 커져 내 마음에 잠식했다.
그 의문점이 확신으로 바뀌어 갈 때쯤 나는 퇴사를 마음먹었다. 디자이너로서의 욕심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살고 싶을 때,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하루라도 빨리 도망쳐야 했다. 그게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실수가 될지 후회가 될지는 이제부터 바꾸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는 5월이 되기 전 나는 퇴사를 통보하고 그렇게 떠났다. 사회 초년생, 첫 디자이너, 나의 첫 사회생활은 4개월 동안 남은 것 하나 없이 그렇게 떠나야 했다. 아니 도망가야 했다. 사람도 디자인도 가족도, 나 자신조차도 나를 싫어하고 증오하고 미워했다.
도망은 내 인생에서 다분한 일은 아니었다. 익숙치 않았고 괴로웠다. 그래서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수많은 고민들로 나 스스로를 망쳐나갔다. 무엇을 더 하지도, 노력하고 싶지도 않은 내 모습을 보기까지 괴로운 시간이 가득했나 보다. 그저 포기하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잘했다고 위로하기엔 1년 후의 내 모습이 3년, 5년, 10년 후의 내가 너무 안쓰럽기 그지없었기에 그렇게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는 나는 내가 가장 편안할 수 있고 걱정 없이 나를 돌볼 수 있는 목포로 도망갔다. 나의 치부는 그 아무도 모르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 곳,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 마음을 숨기지 않고, 나 자신을 온전히 위로할 수 있는 곳에서 언제 어디로, 돌아갈지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한번 나아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