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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Mar 19. 2023

나를 잘 안다는 것

Anxiety management

Anxiety is all about the future. 


Paula가 말했다. 

불안은 모두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불안은 절대 현재에 있지 않다고. 

불안함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오면 의자에 붙어있는 내 엉덩이와, 바닥을 딛고 있는 내 발바닥, 주변의 공기, 마시고 있는 커피,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의 눈 맞춤 등을 통해 '지금', '여기'의 감각을 느끼고 의식을 현재로 끌어내리라고 했다.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 있다. 진화론적으로 불안이 높아야 위험요소를 빨리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 높은 불안도를 갖고 있다. 따라서 불안도가 높다는 것은 '불안'이라는 글자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과 달리 좋고 나쁘고의 가치 판단과 별개로 해석해야 한다. 


줄여서 TCI (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검사라 부르는 '기질 및 성격' 검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발달한 성격, 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 한 객체를 분석한다. 기질은 대부분의 경우 바뀌기 힘들지만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타고난 기질이 발현되는 양상이 사람마다 다르다. 


이 말인즉슨,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 후천적인 노력으로 이를 낮추기는 힘들다는 것. 높은 불안도는 자연스레 높은 긴장도로 이어지며,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낳는다. 또한 불안도 및 긴장도가 높은 사람들은 오감 (촉각, 후각, 미각 등)이 예민하고 불편한 상황이 닥치면 속이 쓰리거나 머리가 아프다든지 등 신체가 불안한 마음을 가감 없이 반영해 버린다. 이들은 몇 가지 눈에 띄는 성격적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양 브로의 정신세계' '예민한 성격'에 관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_ikOnF6Rg8M). 첫째, 강박적 성향이 있어 부지불식간에 나만의 원칙과 규칙을 남에게 강요하게 된다. 둘째, 일정이 머릿속에 정해져 있는데 이것이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외부 상황에 의해 흐트러지면 '욱'하고 크게 화가 난다. 셋째, 공중도덕/법규/매너/에티켓 등을 잘 지키며 남이 안 지키는 꼴을 못 보고 '정의의 사도'가 된다. 





TCI 검사까지 갈 필요도 없이, 나는 타고나길 참으로 예민하게 타고났다는 걸 한평생 느끼며 살았다. 

오감이 예민하고, 불편한 상황이 오면 신체증상이 발현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민한 나의 성정이 육체를 지배하다 못해 KO패 시키는 것과 같은 사례가 무수히 많다. 여자의 인생에서 불청객 같은 존재이지만 또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 월경을 '"이번에는 중요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이 끝나고 시작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가짐(혹은 불안함)만으로 '늦추거나' 주기를 건너뛴 적이 허다하다. 철없는 시절에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 틀림없다'며 남몰래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그 생각을 후회했다. 만약 신체의 어딘가가 이유 없이 아프다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내 몸의 신경세포를 곤두세우는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내 몸은 이유 없이 아픈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의 기질과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나에게 "유리 인형 같은 몸"을 신줏단지 모시듯 아껴주라는 당부까지 하였다 (물론 나의 겉모습은 유리인형과 거리가 멀다).


예민함과 높은 불안도의 깊고 깊은 상관관계 때문에 나는 자연스럽게 강박적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물건은 늘 제자리에 있어야 했고, 세면대나 싱크대에 물 자국이 있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거울에 남는 손자국을 혐오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기적으로 알코올로 온 집을 닦는다. 손때가 묻는 것이 싫어서. 외출복으로 침대, 식탁 의자에 앉는 것은 절대 내 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코로나로 온 세상이 시끄럽기 한참 전부터 나는 손을 강박적으로 씻었다. 내 손에 있는 세균이 곧 내 입으로 들어갈까 봐. 


두말할 것도 없이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혐오한다. 내 시간은 나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것인데, 내 시간이 타인의 부주의로 인해 낭비될 때 정말 참지 못한다. 내 일정이 외부 상황 때문에 흐트러지는 날에는 화를 식히기 위해 들숨 날숨을 깊게 들이쉬어야 한다. 화내봤자 나만 힘드니까. 예전에는 MBTI를 유사과학이라 생각하여 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재미 삼아한 이후에도 신뢰하지 않았는데, 나의 MBTI 유형을 설명하는 글에서 '번개 극혐, 시간 약속 못 지키는 사람 극혐'이라는 문구를 보고 MBTI에 대한 신뢰도를 조금 높여보기로 했다.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나이트마켓 입장을 위해 기다리던 줄에서 내 앞의 커플이 먹던 컵을 땅에 버리고 떠나는 것을 보고 '네가 버린 것 주워가라'라고 친절히 알려주긴 했다. 생각해 보니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에게 꼭 한 마디씩 하긴 했었다. 쓰레기 버리지 마라, 새치기하지 마라, 등등. 


이렇듯 예민한 사람은 삶이 남들보다 조금은 피곤하다. 

물론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렇게 타고났을 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20대에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 지도 잘 몰랐고, 나 자신을 잘 안다고 보기도 힘들었다. 특정 상황에서 특정 반응을 보이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되지 않으니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진 적도 많아서 '나는 왜 이럴까'하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혹자는 나이가 들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정을 갖게 되면서 집중할 곳이 생겨 삶이 단순해진다고 하였다. 현재의 나는 그런 '주류'의 삶을 사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내 삶에 적용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방면으로 노력한 결과 나를 훨씬 잘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함에 있어 크게 막히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나는 논리적인 설명이 없으면 가슴 깊이 설득되지 않는 사람이라, 20대를 꼬박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를 나 자신에게 잘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100% 나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라는 존재는 '나'에게 더 이상 풀기 힘든 퍼즐이 아니기에 그 사실에서 오는 안정감이 상당하다. 누군가 나에게 나이 들어감의 장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스스로를 잘 알게 되는 데에서 얻는 안정감'이라고 답해줄 것이다. 


물론 나도 불안할 때가 많다.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아서, 그리고 예민한 기질/성격 탓에 나는 종종 '왜 나는 부정적인 경향이 클까' 혹은 '왜 나는 쉽게 불안해질까'를 자문해야 했다. 내가 추구하는 이 길은 크고 작은 시험 하나 통과해서 바로 직업을 얻는 것과 거리가 멀고, 평생을 스스로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길이라 매 순간 불안함과 맞서 싸워야 한다. 기질적으로도 불안도가 높은데 발 딛고 사는 세상조차 불안도를 증폭시키는 조합이라니. 어쩌겠는가, 과거의 내가 한 선택을 오늘의 내가 부랴부랴 뒤치다꺼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불안도가 높은 사람은 늘 대비를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마련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기 싫어서. 그 상황은 나의 불안을 더 높일 것이며, 내가 내 삶의 통제력을 잃었다는 생각으로 흘러가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더 힘들어진다. 경우의 수에 따라 몇 가지 시나리오를 작성한다는 것은 과제지향적 (task-oriented) 성격 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가 늘 과제지향적으로 상황을 대처한다는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결론이다. 


건국대학교 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불안이란 없애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다이어트에 비유하며 불안 관리를 설명하는 것이 꽤 와닿았다. 실제로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단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과 건강에 관심이 조금 더 많을 뿐이라고 한다. 즐겨 입던 옷이 꽉 끼면 '다이어트를 해야겠구나 깨닫고, 점심에 과식한 것 같으면 다음 끼니를 거르거나 가볍게 먹으며 정기적인 운동으로 체력을 키운다. 격렬하게 운동 성수기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잔잔하게 매일의 몸을 돌아본다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는 건 감정의 진폭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언젠가 우울함이 찾아오더라도 빠르게 나아질 수 있는 회복력(resilience)을 얻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회복력이야말로 사람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는 자존감과 깊은 관련이 있다.


Paula가 물었다. 

불안이 올라오고 마음의 조갈증이 날 때 무엇을 해주면 좋겠냐고. 

한참을 내 대답을 듣던 Paula가 말했다.


"항상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봐 줘. 답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어.

불안은 관리의 대상이지 극복의 대상이 아니야. 그러니 데드라인을 대하는 맹렬한 자세로 접근하진 말아보자. 대신, 불안은 늘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관한 것임을 잊지 말렴. 마음이 불안으로 흘러갈 때, 네 몸을 단단히 받치고 중력을 거스르는 두 발과 두 다리를 느껴봐. 너는 지금,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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