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 감동이잖아
이번 대만행도 어김없이 필드워크로 채워질 전망.
받을 학위 다 받고 졸업도 했는데 또 필드워크? 할 법도 하지만, 이제 갓 도로에 나선 신참내기 운전자에게 실전 경험은 많을수록 좋지 아니한가.
졸업 후 첫 9-10개월은 코트에 들어서 있는 초짜 테니스 선수가 된 느낌이었다. 근데 여러 명의 상대가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 오는.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공을 구질 고민할 틈 없이 쳐내고 나면, 숨을 고르기 전 왼쪽에서, 머리 위에서, 심지어 등 뒤에서도 공이 날아왔다. 종종 1:1 경기가 순식간에 1:4 경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예고 없이 관중이 난입한다든지 날이 너무 더워 평소보다 물이 더 많이 필요하다든지, 경기 외적인 변수도 툭툭 튀어나왔다. 원래 지난달의 내가 함부로 외쳐버린 "yes"를 이번 달의 내가 허덕허덕 처리하면서 사는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이건 뭐, 보이지 않는 숟가락 살인마에 맞서는 기분이랄까.
물론 숨이 턱턱 막히는 막막함으로만 점철되는 시간은 아니었으나 주어진 역할의 범주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음은 매일 느꼈다. 보통은 졸업 후 바로 포닥을 시작하거나 아예 non-academia로 바로 진입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그 경계도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Generative AI는 산업계뿐 아니라 학계의 판도 역시 묵직하게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길만 보고 미래를 설계하기엔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인간도 그에 맞춰 진화하길 바라는 사회적 기대도 매일같이 높아진다. 더 이상 전통적인 "학계 vs 비학계"의 기준으로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판단.
거창하게 말을 했지만 그냥 되는대로 다 해보겠다는 이야기였다.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일단 현재의 non-academic 포지션을 시작했고 동시에 academic career를 위한 총알도 장전해 두는 길을 선택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즉, 먹고살 돈을 주시는 분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동시에, 내 시간을 쪼개 학술 논문을 출판하고, 학회에 참석하고, 학계에서의 발자국을 늘릴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꾸역꾸역 해내보려는, 뭐 그런 길. 이번 대만 방문 역시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고.
아주 솔직한 마음을 내보이자면, 밴쿠버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 숨 고르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다른 도시/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면 밴쿠버의 진가가 더 잘 드러난다고 생각할 정도로, 살 때는 모르지만 나가보면 비교적 꽤 훌륭한 도시임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박사과정이 녹아있는 곳이라 그런가, 그곳에서는 숨 고르기가 잘 안 된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졸업 후 첫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쉬었던 기간이라곤 동부의 선배 집을 방문한 여름의 3박 4일과 어느 섬마을로 갔던 겨울의 1주일이 전부였다.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작년부터 넘어온 데드라인들 덕분에 새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원래 먹고사는 일은 녹록지 않으니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 잘 안다. 주말도 없는 마라톤이 졸업 후에도 이어진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허들도 뛰어넘고 굴렁쇠도 굴리고 춤도 추면서 달려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뭐... 설마 몰랐겠는가. 그저 모르는 척했던 것일 뿐.
사막 한가운데에 떠 있는 신기루 같은 존재가 학위였다면, 그 오아시스에 다다르는 순간 다음 오아시스를 생각하고야 말 구조적 저주(?)에 대해 지겹도록 듣고 보았다. 학위의 무게란 실로 가볍고도 무거우면서 내 기준에서는 별 것 없는, 아주 미묘한 대상이었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에 걸쳐 획득한 학위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으나, 그리고 그 노력값에 대한 보상은 응당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어쩐 일인지 나와 짝꿍의 일상에서는 학위의 존재가 지워진 것만 같았다 (심지어 그 학위 쪼가리, 서랍 어딘가에 대충 널브러져 있다). 그저, 다시 달려야 하는 트랙만이 끝없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 뿐. 한 때는 그 끝도 모를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연구에 종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시간도 있었는데, 내가 그나마 "선수답게" 해 낼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1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는 왜 새벽 1시 이륙일까. 한국행은 시간대라도 고를 수 있지, 대만행은 늘 이른 새벽 이륙이다. 지난번엔 랜딩 후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비즈니스 클래스를 고르는 사치를 부렸지만, 이번엔 깔끔하게 이코노미로. 출국하는 당일까지 각종 일을 해치우고 야간 비행을 하자니, 돈 많이 벌어서 비즈니스 타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만 더 간절해졌다. 10-15년 전에는 비행만 생각해도 설렜던 것 같은데, 요즘은 비행이 덜 반가운 요소가 하나둘씩 생긴다. 일단 비행이 10시간이 넘어가면 엉덩이가 쪼개질 것 같아 심히 걱정이 되고, 난기류에 과민반응하는 내 자율신경계도 최근에 득템 해버려서 걱정이 안 되진 않는다. 순조롭게 결정되었던 일정인 만큼 비행도 순조롭기로 마음먹은걸까. 기장이 풀액셀을 밟아 1시간 정도 비행시간이 단축되었고, 난기류도 없었으며, 공항에서 3시간 정도 기다려야 열릴 줄 알았던 현지 통신사 카운터도 일찌감치 열려서 꽤나 가뿐한 마음으로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2년 전에도 신세 졌던 택시 기사를 다시 조우하여 대만식 아침으로 같이 배도 채우고 밥집 메뉴 보는 법도 배웠다. 대만은 주로 아침밥을 사 먹기 때문에 빼곡하게 적힌 메뉴판을 볼 수 있으면 아침 식사의 폭이 넓어진다.
차로 1.5시간을 달려 도착한 대학의 게스트 하우스는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예전에 와본 적 있기에 2년 전에 지내던 귀신 나올 것 같은 숙소에 비할 데 없이 좋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로 넓은 방을 주다니...턱하니 내어준 two-bedroom unit은 내부 인테리어나 가구는 낡았을지언정 침구며 바닥 청소며 상태가 훌륭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대만에서도 새삥나는 느낌을 찾기 쉽지 않다). 방마다 설치된 벽걸이 에어컨, 분리된 주방, king bed, 등등. 나름 호텔식 서비스를 내세우는 곳이라 구석구석 꼼꼼함이 느껴졌다. 나 혼자 있는데 두 번째 침실은 어디에 쓸꼬... 널따란 거실은 우리 집 거실보다도 크구나... 에어컨도 다행히 내 나이보다 적어 보이는군, 하하.
학과에서 별도로 그릇과 조리도구까지 준비해 주는 철저함을 보여 2년 전 나의 설움을 씻어주었고, 무엇보다 리셉션이 1층에 있어 필요한 점을 바로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 감격했다.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먹을 수 있는 조식과 건조기가 있는 세탁실이라니... 2년 전의 그 귀신 나올 것 같은 숙소는 리셉션은커녕 사람이 산다는 사실조차 와닿지 않아서, 복도에서 간간이 들리는 사람 발자국 소리가 은근히 무섭기까지 했었단 말이다. 게다가 세탁실이랍시고 있었던 지하공간은 건조기도 없는데 습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어서 세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고육지책으로 급한 옷은 손빨래를 하고, 한국 방문시 빨랫감을 들고 갔다 오고, 그것도 아니면 입던 옷을 그냥 버렸다. 아아... 나는 2년전에 대체 어떤 숙소에서 지냈던 것인가 ㅠㅠ
2년전, 내가 어마어마한 숙소에 머무르며 지진과 바선생, 그리고 추위에 덜덜 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당 학과의 supervisor는 나에게 대단히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뭐, 그 교수의 잘못이겠는가. 그냥 당시 내 일정과 랜딩 날짜가 애매하여 거기에 배정된 것이겠지...굳이 장점을 찾자면, 방세는 더럽게 쌌다. 나는 돈을 써서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싶었고, 제발 돈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게끔 학교에 사정했지만 그 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강제로 많은 저축을 하게 된 나는, 그때 남은 돈을 짊어지고 이번에 신주로 오게 된 것. 아하하.
해당 학과 교수도, 학과 행정직원, 대학원생도 잘 모르는 숙소의 존재라니. 짝꿍과 나는 가끔 그런 농담을 한다. 그 숙소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보듯이 다른 세계로 통하는 곳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실제로 밤이 되면 엄청난 음기가 느껴졌고, 3개월 살 동안 오며가며 마주친 사람은 단 3명에 불과했다. 건물이 콜로세움과 같은 구조라 내부에 잔디밭이 있는 형태였는데, 그러다보니 사람보다 곤충이 더 많았다. 그런 곳에서 살아남았으니, 나는 이 세계에 속해서 잘 먹고 잘 살아봐야겠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숙소에서 대충 짐 정리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마사지 받으러 뛰쳐나가기. 비행으로도 지쳐있었지만 이미 폭풍 같은 3월을 보냈기에 누구라도 날 좀 주물러줬음 했다. 뜨뜻한 장판 위에서 등을 조물조물 조져주니 노곤노곤 녹아내렸다.
부디 이번에는 마음을 덜 졸여도 되길. 그리고 예상치 못한 random luck이 마구마구 쏟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