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논문을 위한 현지 조사차 타이베이 어느 산자락 한 귀퉁이에 짐을 풀었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누가 크래커와 펑리수, 각종 너구리 장식품, 그리고 우롱차와 예쁜 다기를 잔뜩 끌어안고 밴쿠버로 돌아온 것이 벌써 2년전이다.
그간 신변의 굵직한 변화와 맞물려 안개처럼 날아가는 세월 앞에서, 대만에서의 시간은 기억에서 조금씩 옅어졌다. 느려터진 행정력, 실외보다 더 추운 실내를 자랑하는 대만의 겨울, 20여년 만의 큰 지진과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여진, 걸어다닐 때 발자국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바퀴벌레, 등등. 겪을 때에는 치를 떨었을지 언정, 과거의 기억을 미화하고 고통을 경감시키게끔 설계된 뇌 앞에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밴쿠버에서 샌드위치 하나 겨우 살 수 있는 값으로 볶음밥이나 우육면을 시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저렴한 식비. 그 흔한 구글 평점 따위 보지 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들어가도 기대 이상의 맛을 안겨주었던 수많은 전주나이차 가게들. 발 끝에 채이고도 남는 것이 우육면이라지만 단 한 집도 겹치는 육수 맛을 내지 않았던 우육면 식당들, 그냥 과수원 나무에서 툭 따냈음에도 불구하고 당도가 높아 '시럽 먹여 키운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던 망고, ...
적고 보니 죄다 먹을 것 이야기 뿐이지만, 결국 맛있는 음식을 싼 값에 입으로 넣을 수 있어 행복했던 추억.
그래서일까. 내 숙소에 쳐들어왔던 바선생과의 사투, 그리고 그의 뒤집어진 배에 그려진 줄무늬 갯수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을 때 즈음, 대만을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절대 날아다니는 바선생이 그리워서는 아니고). 물론 연구차 방문이고, 마침 지도교수 판다곰도 대만의 어느 학교에서 단기 보직을 맡고 있으니 겸사겸사 "일타 3-4피" 하기에 좋은 시점이라 생각했다.
될 일은 원래 때려 죽여도 잘 된다고 하던가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미팅 2-3번, 이메일 몇 번 주고받은 이후 대만행은 벌써 확정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타이베이가 아닌 신주(Hsinchu)에 머무르게 되었다. 타오위안(Taoyuan) 공항에서 수도 타이베이가 아닌 우측 45도 방향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하는 곳. TSMC 공장이 있는 도시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나의 바선생 항쟁기를 익히 알고 있는 지도교수는 나의 대만행이 결정되자마자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
"추신: XX 기숙사는 바퀴벌레 없음. 방역 철저히 함. 화장실 수채 구멍도 막아둠. 건물 소독도 자주함. 네가 좋아할 것임, 후훗."
우왕 고마워라. 그나저나, 자기가 머무는 숙소에서 바퀴벌레를 잡을때마다 굳이 태평양 너머 이역만리에 있는 나에게 친히 사진을(!) 전송하며 바선생 부고를 전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리고 그 숙소... 내가 머물 숙소랑 같은 건물이잖아...
일단 사진으로 본 숙소의 모습은 매우 멀쩡했다. 어쩌면 이번 대만행에서 숙면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조금 가져본다. 지난번과 달리, 기숙사 건물이 1950년 이전에 지어진 것 같진 않고, 건물의 음기가 지나치게 강해서 뭐 하나 튀어나와도 놀랍지 않을 것 같이 생기지도 않았고, 숙소 내부의 시설이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수준이 아닌 덕분. 예전 행사 때 방문해서 1박을 했던 곳이라 조금 더 안심이 되었다. 그 1박이 타이베이에서의 2-3개월 동안 내가 가장 꿀잠을 잤던 날로 기억한다.
물론, 나의 중국어는 여전히 생존 중국어에 머물러 있고, 이번에도 체류 기간이 짧은 탓에 중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는 없을 것 같아서 못내 아쉽다 (보통 정규 프로그램은 최소 4개월 체류를 요한다). 대체 나는 언제쯤 "제가 중국어를 잘 못해서요"를 말하지 않게 될까. 외국어 공부에 대한 욕심만 많고 실천에 옮길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입 밖에 꺼내기도 이젠 구차하다. 어쩌면 의지나 능력이 거기까지인 것이겠지만.
자, 이번엔 신주 너굴이.
대만의 혹독한(?) 겨울을 피해 3월에 랜딩 합니다. 다음달에 다시 만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