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굴이 Apr 22. 2023

Soul Ache, again

April 2023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좀처럼 집중을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근육 과사용과 장시간 앉아 있는 시간이 이어지면서 작년 12월부터 고관절과 허리가 좋지 않았다. 대충 버티고 넘어가기엔 일상이 불편할 정도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운동을 계속한 것이 화근이었다. 클리닉에서 당분간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한 지 어느새 1달 반에 넘어가고 있었다. 


운동을 할 때는 몰랐다. 운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괴로울 줄은. 

3년 전 진단을 받은 이후로는 운동을 숙제처럼 꼬박꼬박 했다. 공부는 쉬어도 운동은 쉬지 말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작년 9월, 코로나에서 회복한 이후에는 심지어 운동을 늘렸다. 1주일에 2회 정도 가던 스피닝을 3회로 늘렸고, 필라테스/요가도 1회에서 2회로 늘렸으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추가했다. 심장이 뛰고 땀이 흐르고, 그럼으로써 살아있는 느낌이 좋았다. 이 불확실성 넘치는 혼돈의 카오스 같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내 몸만큼은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고 단련시킬 수 있다는 데에서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한 나는 내 삶의 통제력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가장 힘들어한다. 가끔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한국을 방문하면서 일정이 바빠서 운동을 하지 못하거나 엄마 간병을 하던 3주 동안 운동을 하지 못한 것은 견딜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은 아니었고 상황이 여의치 않아 운동보다 더 중요한 일들을 해결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시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면 운동을 하지 못한 1달 반, 2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느꼈던 무력감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눈앞의 닥친 일들을 헐레벌떡 넘기기에 바빴고, 그 결과물이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은 저 멀리 있는데 나는 그곳을 영원히 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내 뇌를 지배하고 있었다. 남들과의 비교가 싫어서 거리를 두고 있지만 애초에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싫어서 나는 남과 다른 길을 추구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경쟁력이 없어 도망가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문했다. 




8년 전의 데자뷔 같았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좌절감을 가져온다. 많이 아프든 적게 아프든, '아플 시간이 없다'는 마인드로 무장한 나에게 필요 이상의 짜증과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무력감은 꽤 빠르게 좌절감, 그리고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그때도 지금과 비슷했다. 누가 봐도 '우울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을 때에는 오히려 멀쩡했다. 6개월 혹은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어느날 문득, 예고 없이 그런 날이 찾아온다. 내 무의식 저 어딘가에서는 나도 인지하지 못한 채 도움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듯 싶다. 차라리 기대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았을까. 용기내어 조심스레 손을 뻗었는데 철저히 거절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우울감이 나를 잠식한다. 8년 전에는 내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우울감이 우울증으로 넘어간 다음에야 심리 상담 치료를 시작했다. 


지금은 안다. 어떤 징조가 위험한 지. 언제 진지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역시 단순한 무력감이 아니었다. 잠을 과하게 자고 있었고, 서서히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하기 싫었고, 식욕이 하나도 없었다. 먹고 싶지 않았다. 


만난 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Paula에게 급히 연락을 했다. 

우울한 것 같다고. 아니, 우울하다고. 

전문가에게만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조치를 취한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모든 일을 시시콜콜 다 알아야 하는 이 상황이 버겁다고 말했다. 나는 자식 된 도리로서 간병을 했을 뿐이고 누구보다 그들의 건강을 바라지만 오늘의 피검사 수치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매일같이 '보고'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끝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초월자에 대한 기도도 듣고 싶지 않았다. 단호하게 종교는 개개인의 가장 사적인 부분이라고 끊임없이 말했지만, 내 말은 늘 공중에서 사라졌다. 힘든 시간을 겪은 그녀가 의지할 곳이 그것밖에 없다면,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그냥 참고 넘어갔다. 그렇게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부터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이 말을 하는 지금도 죄책감이 들지만, 나는 의사도 신도 아니다. 전도의 대상도 아니다. 상대가 나의 일상을 물어봐줄 순 없었을까. 평생을 독립적으로 살게끔 키웠고, 내 감정을 나누는 법을 알지 못한 상태로 지금까지 왔는데, 왜 이제 와서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의지하는 걸까. 내가 하루 아침에 부모의 위치로 자리바꿈 한 것 마냥...


안타깝게도 내 기억의 일부는 아직도 그날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데,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다. 나는 이곳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시계는 나를 위해 특별히 느리게 걷지 않는다. 내가 소속된 곳의 사람들은 나에게 받을 돈이 있는 사람처럼 꼬박꼬박 나의 성과를 측정하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들의 지원이 반갑지 않았다. 조만간 갚아야 할 부채나 다름없기에.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시절 어떤 답을 갖고 있었을까. 어떤 청사진을 마음에 품고 있었을까. 그들의 답이 곧 내 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만, 그저 듣고 싶었다. 다들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고 하니, 그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미 이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오로지 나 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보고 싶었다.  


어렵게 연락을 했다. 

내가 나에게 큰 믿음을 가지지 못했을 때 나보다 나를 더 믿어준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준 분이었고, 단순히 학술적 지원뿐 아니라 심리적 지원도 아끼지 않던 분이었다. 나와 같은 어려움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었다. 


내가 원하던 대답이 아니어서였을까. 아니, 나는 애초에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며칠 만에 온 답장에 반갑게 이메일을 열었지만, 남의 생각을 알아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답변이 왔다. 그만두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권태기가 온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몰라서 물어본 것인데, 상사로부터 엉망인 보고서에 대한 질책을 듣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루 종일 그 말만 생각났다. 음성지원이 되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불과 하루 이틀 만에 말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생각의 흐름이 지나치게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식욕이 없어서 뭘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동안 잘 버텨왔는데 결국 무너져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aula가 물었다. 

잠은 자냐고, 밥은 먹냐고. 그리고 자살충동이 드냐고. 


잠은 지나치게 많이 자고, 식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아직은 아니지만 이 패턴이 지속되면 다음 단계가 뭔지 안다고 답했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상대는 내가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지 모를 것 같다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해 봤냐고 물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상대도 적절한 답을 해줄 수 있으니, 대답의 톤이 친절하진 않지만 막상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아니, 하지 못했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내가 이것밖에 안 된다는 걸 증명하는 것 같잖아. 그래도 괜찮은 상대라는 걸 알지만 그냥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 나는 약해지고 싶지가 않은데 마음처럼 되지가 않네. 


나는 네가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나한테 이렇게 연락을 해 준 것만 봐도 네가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겠어. 문제를 늦지 않게 수면위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단다. 나에게 연락을 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구나. 정말 용기 있는 행동이야. 우리 이제 인정하자. 겨울은 춥고 길었고, 너는 지금 잘 못 지내고 있어. 이 기나긴 여정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고, 최근 1-2년간 너는 너무 많은 일을 겪지 않았니. 네가 있는 그곳은 늘 비교가 만연한 곳이고, 너는 너의 감정을 인정받지 못한 채 자랐어. 그런 교육 환경이었고, 그런 사회였잖아. 모두가 결과에만 집중하는 그런 곳에서 자신을 긍정해 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너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을 거고, 늘 불안했을 거야. 네가 끊임없이 사용하는 '생존'이라는 단어만 봐도 알 수 있어. 너는 지금 생존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네가 이 과정을 잘 마치고 받을 그 학위는 너에게 차고도 넘칠 경쟁력을 가져다줄 거야. 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목소리에 의식적으로 "No"를 외쳐야 해. 나는 너의 '생존' 가능성 여부 보다 한 인간이자 객체로서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는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너는 지금 영혼이 아픈 (Soulache) 거란다.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이 또한 다 지나갈 거야. 다만 당분간은 정말로 제대로 된 휴식을 가져봤으면 한단다. 일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 잠시동안 손을 떼고,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면 들로 산으로 나가서 한동안 이 세상을 탐험해 보자. 수영장을 이제 갈 수 있다고? 그러면 당분간 운동을 재개하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자. 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주변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자. 내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 지원해줄게. 우리는 당분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거야. 어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해줘 보자. 네가 스스로에게 가장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니?



음... 

Thank you for being there with me. 

살면서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잘 못했어. 사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정형외과 병동의 이상한 가족 -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