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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May 17. 2023

Exquisitely Sensitive

May 2023

나는 예민하다.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와 나의 혈육, 나를 가르친 숱한 선생들, 나의 친구 및 동료들, 나를 진료한 의사들, MBTI를 포함한 각종 성격 테스트, 그리고 성격/기질 검사 모두 내가 '예민한 사람'임을 입 모아 말한다. 심지어 심심풀이로 보러 간 사주카페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생면부지의 타인이 나에게 "겁나" 예민한 사람이라고까지 했었다 (그렇지만 잘 감추고 살아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예민한지는 모를 것이라는 겁나 뜻 모를 칭찬을 덧붙이며).  


예민하다는 특질은 부정적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요즘에서야 다양한 성격과 기질에 대한 연구가 대중화되고 그 어느 것도 더 좋고 나쁜 것은 없다는 (혹은 최소한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속한 사회에서 '예민함'은 '좋고 나쁨'에서 '나쁨'에 속하는 특질로 오랫동안 인식되었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가 유행하면 은연중에 B형 남자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생기고, MBTI가 유행하면 E가 아닌 사람들을 '고쳐야 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바라보는 색안경이 은연중에 느껴지는 것처럼, '예민함'도 같이 일하기 까다로운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 사회 생활하기 힘든 사람 등등 이름을 바꿔가며 '고쳐야 할 문제'로 인식되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매년 큰 시험을 마치고 긴장이 풀리다 못해 꼬인 위장과 장을 부여잡고 응급실을 찾을 때면 부모님 중 한 분이 꼭 "너무 예민해서..." 류의 말을 하셨던 것 같다. 혹은 일상 중에서도 "쟤가 너무 예민해서..." 류의 평가를 적잖이 들었는데, 그 말을 분석하자면 '너무 예민하고 까탈스럽게 굴어서 편하게 넘어가거나 처리할 일도 불편하게 만든다' 혹은 '너무 예민해서 자기 몸과 정신을 혹사시킨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그들은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저런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을 키우다 보니 조금 다른 부분이 보였을 것이고 자식이 조금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혼잣말에 가까운 읊조림이라는 것도 안다 (뭐 물론 가끔은 나에게 짜증이 나서 내뱉을 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같은 공간에서 살던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을 모두 포함해서 상대로부터 일관적으로 "예민하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것도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안타깝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면, 은연중에 아래와 같은 생각의 흐름이 생긴다. 

'내가 그렇게... 까지 예민한가?'

'아... 나는 진짜 예민하구나...'

'혹시 나의 예민함으로 저들이 불편한가? 나의 예민함이 고쳐야 할 문제인가? (실제로 좀 고치라는 소리도 들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좀 '덜 예민한' 사람이 되지? 이 예민함을 어떻게 고치지?' 

등등.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은 자연스레 예민하고 민감한 성격을 갖게 된다. 문제는 이전 글에서도 기술했듯이 기질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https://brunch.co.kr/@boyish-aaron/12). 내가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그 예민함을 고치기 위해 은연중에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예민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과도한 불안이나 화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생애주기 발달과정에서 공부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고, 주변 분위기를 파악하는 법을 익히고, 사회적 예의범절과 상식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후천적으로 학습할 수 있으나, 예민함 (혹은 덜 예민해지는 것)은 학습하는 것이 아니다. 예민함은 그저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자신이 예민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와 함께 그저 있는 것이다. 예민함은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Paula가 말했다. 

예민함 (being sensitive)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넣지 말자고. "너무 예민하다 (too sensitive)"라고 말하는 대신에 예민함이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하자고. 물론, 예민하면 삶이 조금 더 피곤하고 어렵긴 하다. 입맛이 예민하니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혀에 까끌거리는 음식이 많아질 것이고, 냄새를 잘 맡으니 조금이라도 역한 냄새를 맡으면 그저 인상을 찌푸리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심한 경우 두통이 생겨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기도 한다. 정신이 예민하니 남들보다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것이 또 다른 신체화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정하지 않겠다. 예민하다는 것은 삶이 (조금) 힘들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본인도 상담가로서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닌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때 자신의 상담가가 해준 말이 아직도 아름답게 기억에 남아 있단다. It's not too sensitive; it's exquisitely sensitive라고. 세상에 '너무' 예민하다는 것은 없다. 다만, 보석을 세공하는 수준의 정교함으로 주변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뿐이다. "Exquisitely sensitive"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정교한 민감함/예민함' 정도가 되겠지만, 나는 단순한 사전적 번역보다는 조금 더 나은 표현을 찾고 싶었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서는 이 단어가 내포한 의미가 예민하거나 민감하다는 따위의 평면적 개념 그 이상으로 뻗어나가는 느낌이었다. 덜 예민한 사람이 세상을 굵은 선과 큰 점, 그리고 굵직한 도형으로 표현한다면, 예민한 사람은 그 선이 점묘법으로 그려졌는지, 아주 작은 단위의 사진을 붙여 모아 만든 점인지, 굵직한 도형을 그린 선이 알고 보니 여러 개의 색으로 덧칠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예술적 수준의 민감함'을 가졌다고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와닿을까. 


Paula는 또한 예민한 기질을 초능력처럼 생각해 보자고 했다. 예민함/민감함이야말로 나의 가장 훌륭한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보자고. 내가 나의 예민함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끔, 이 부분을 온 마음으로 수용하고 그 기질의 주인이 되어 보자고 했다. 어쩌면 나도 "exquisitely sensitive"하기 때문에 똑같이 exquisitely sensitive 한 자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내가 본인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을 알기는 알까, 아주 가끔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방학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집에서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어른'이 계시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 내가 혼자 집에서 이것저것 탐험도 하고 놀기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음식도 만들어보고 해야 하는데, 엄마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이미 그때부터 혼자만의 시간이 매우 소중한 아이였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엄마는 학기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학에도 각종 연수며 이것저것 바쁜 일이 많았는데, 게 중에는 우리 남매를 데리고 체험학습을 떠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방학이 '방학'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 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든 엄마가 동동거리며 집안 건사하고 일하고 애들 챙기는 모습을 상상하면 안쓰럽다는 말로 다 표현이 되지 않을 만큼 안쓰럽다. 그리고 곧 허무함이 몰려온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살까. 


한국나이로 13살 혹은 14살이 된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예년과 달리 이번 여름방학은 조금 달랐다. 엄마가 베이킹을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베이킹이라는 개념도 생소하고 도구도 구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베이킹 학원을 꼬박꼬박 다니던 엄마는 매일 그날 실습한 빵을 들고 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븐도 구입하고 각종 수입상가를 돌아다니며 베이킹도구를 발품 팔아 마련했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집에서 복습이 이뤄졌고, 그 빵은 모두 우리 가족 (특히 나) 및 주변 지인들 입으로 쏙쏙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한 번의 여름방학을 거치며 빵순이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굳이 밥을 먹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밀가루 식성을 유지하고 있다.  


나도 엄마랑 같이 베이킹 학원을 다니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그랬다. 베이킹이라는 신기한 세계가 궁금하기도 했고, 어느 날부터 엄마와 같이 걸음을 나서는 동생이 보였다. 수강료를 내고 쟤를 데려가는 것은 아닐 텐데 왜 나는 안 데려갈까, 아주 잠시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부엌에서 들리던 엄마와 동생의 말소리가 궁금했다. 반죽을 치대는 소리와 섞여있는 말소리, 그리고 중간중간 버무려진 웃음소리가 궁금했다. 딱히 빵 반죽을 같이 치대 보거나 달걀흰자를 기계로 쳐 올려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끼워줬으면, 하는 마음에 슬그머니 내 방문을 열고 거실을 지나 주방 문을 열었다. 마치 베이킹에는 관심이 없고 물 한 잔 마시러 온 것처럼 그들을 쓱 둘러보았다. 엄마는 왜라고 물었다. 아마 '그냥'이라고 대답했겠지. 얼른 들어가서 네 할 일을 하라는 말이 뒤따라 꽂혔다. 화가 났었던 걸까? 아니면 배제되었다는 느낌에, 소외되었다는 느낌에 많이 속상했던 걸까? 별다른 말을 더하지 못한 채 내 방으로 돌아와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를 갈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 이후에 (나의 방어기제가 늘 그렇듯), 다시는 베이킹 쪽으로 얼씬도 하지 않고 해보고 싶다는 말도 하지 않고 관심 없는 척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관심이 점차 사라졌다. 엄마가 주는 빵만 열심히 먹으면서. 엄마의 베이킹과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기억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장면은 아직까지도 비교적 또렷한 색채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Paula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놀랄 일도 아니고 엄청난 차별을 겪은 일도 아닌데, 내가 너무 우리 엄마를 마녀처럼 묘사하는 것 같아 순간 마음이 찌릿했다. 사실 Paula는 이야기를 시작하던 처음부터 물었다. 

"왜 너는 안 데려갔대?"  

나도 모른다. 물어본 적도 없고, 묻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성인이 되어 식성이 빵순이로 바뀌었던 나이의 2배만큼 먹고도 시간이 한참 더 지났을 때, 엄마가 그날의 추억을 끄집어냈다. 바쁘게 살았지만 중간중간 별사탕처럼 빼먹을 수 있는 행복한 기억들이 많았다고. 그중에 하나가 베이킹을 배울 때였다며. 빵을 구워주면 두 남매가 그렇게 잘 먹었다고 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부모의 마음을 살찌우게 하는 것이 없다는데, 엄마도 그러했겠지. 그렇게 빵 굽던 시절을 조용히 돌이켜보고 있던 중, 엄마가 한 마디 툭 내놨다. 동생과 다니던 그 시절이 소중했고 그 아이에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길 바란다며.


"근데 그 많은 날 중 너는 한 번도 같이 해보겠다는 말을 안 하더라."


어이가 없다 못해 얼탱이가 없어진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표정을 갈무리할 새도 없이 미간이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배신감까지는 아니지만, 이 무슨 헛소린가 하는 말이 입 밖에 나오기 직전이었다. 엄마는 내가 이미 베이킹이나 요리에 관심이 없는 걸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색채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있는 나의 그날을 꺼내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않았냐고. 엄마가 어렵게 발걸음을 해 온 나를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냐고.


기억은 저마다 제각각이어서 같은 장면이라도 사람에 따라 기억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은 안다. 하지만 기억의 블랙박스라는 것이 있다면 꼭 찍어서 보여주고 싶을 만큼 억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날 주방 문을 닫고 혼자 방으로 돌아가 소외감을 끌어안고 울었을 13-14살의 나를 생각하면 코 끝이 아려오기까지 했다. 


Paula는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냐고, 퍽 난감한 질문을 했다. 떠오르는 답이 없었기 때문에 한참을 뜸 들이다 겨우 말을 골라내서 일종의 체념 같은 감정이 떠올랐다고 답했다. 어차피 세상에 맛있는 빵은 많고, 나도 내가 먹을 빵 내가 만들 줄 알고, 어린 시절 기억 한 토막을 이제 와서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 상관없다는 마음. Paula가 말하길, 자기가 느끼기에는 어떤 종류의 감정이 올라왔는데 내가 날숨 한 번 쉬더니 그 감정이 다시 가라앉아 버렸던 것 같다고 했다 (나보다 더 내 감정 변화를 잘 알아차리다니!!). 그랬다. 나는 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다시 심연으로 집어 내려버렸다. 


내가 종종 돋보이고 싶어 하고,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더니, 단번에 Paula의 제재가 이어졌다. 욕심이 많다(Greedy)는 둥 부정적으로 표현하지 말자고. 돋보이고 싶은 욕망 (desire)로 표현할 수 있다고. 빵 하나 만드는 귀여운 추억에서조차 '선택받지 못한' 경험을 했지 않았냐며. 유아/청소년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험을 할 경우 그 사람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명시적이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비교로 점철되어 있었던 성장 과정과, 쪼개지 않은 온전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 경쟁에서 돋보여야 했던 그 시간을 고려한다면, '돋보임으로써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동기부여를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덧붙인다. 성적, 외모, 재력, 출신 학교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돋보이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하고 거절당하는 이 문화적 구조에서 어느 누가 '돋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냐고. '부족함 (not good enough)'을 동력 삼아 불꽃처럼 전진하는 전략만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하다가 밥 먹을 에너지도 없는 상태에 도달하지 않았냐고.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한중일을 넘나들며 만연해있는 남과의 비교, 성과주의 등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숱한 환자들을 봐 왔다고. 그러니 올라오겠다고 발버둥 치는 감정을 외면하고 심연으로 끌어내리지는 말자고. Paula는 오늘도 나에게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과,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마음으로 가르쳐주기 위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욕심이 많아서"라는 둥, "내가 게을러서"라는 둥의 목소리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선뜻 외부의 목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한 달 남짓의 휴식은 그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번의 서류 작업을 거친 다음에야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 성과 (progress)를 때 맞춰 내고 보고해야 하는 큰 시스템에 속해 있기에, '정당화되지 않은 (unjustified)' 휴식은 숱한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의 휴식은 과연 정당화된 것인가. 만약 내가 스스로를 기만하며 별 것 아닌 일인데 정신상태가 글러먹어서, 혹은 배가 아직 덜 고파서, 퍼져버린 것은 아닐까.  


단순히 부모님, 선생님, 교수님, 동료들의 목소리가 아닐 것이다. 사회구조적으로 내 DNA에 새겨져 버린, "문화적"이라는 말로는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뿌리 깊은 목소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 자르듯이 내 목소리 vs. 외부의 목소리로 나눌 수 조차 없다. 쉬어가기를 선택하는 자는 경쟁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그 만트라 같은 생각. 레이스에서 나가떨어지는 자들은 정신상태가 썩어빠져서 혹은 마음의 힘이 약해서 라는 보이지 않는 평가절하. 흔히 말하는 '독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대조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언어 폭력. 


Paula는 비판은 비판을 낳는다고 했다 (criticism owns its head). 내 감정을 DNA에 새겨진 이분법과 약육강식의 논리로 바라보지 말고, 예술적 수준으로 발달한 예민함과 민감함 (exquisitely sensitive)을 무기로 삼아 나를 탐구해 보라고 했다. 이 기회를 통해 나와의 관계를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면서. 내 감정을 눌러 내리지 말고 표면으로 올린 다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며 그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찾아내야 한다고. 내 남은 인생을 위해 'not good enough'의 스토리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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