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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May 26. 2023

죽이지 않을게

May 2023

오늘도 지난 한 주의 근황을 묻는 말과 가벼운 명상으로 시작했다. 


별다른 이벤트 없이 소소하게 흘러간 한 주였지만 또 그렇다고 시간이 느리게 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느새 5월 말이라는 사실이 소름 끼칠 정도로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이것저것 한 일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한 주는 이유 없이 심심했다. 


뭐, 비교적 좋은 징조라고 했다. 어쩌면 예전처럼 목적 지향적인 삶을 조금씩 되찾아 갈 준비가 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닐 수도 있고. Paula가 말 끝을 흐렸다. 


두 가지 목소리가 서로 싸우고 있다고 털어놨다. 내가 다시 일상을 되찾아도 될지 묻는 목소리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데 섣불리 나섰다가 또다시 번아웃이 와서 퍼져버리면 어쩌지 하는 상충된 목소리. 누가 더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들 만큼, 잊을만하면 서로 자기가 맞다고 고개를 쳐들며 싸운다. 


첫 번째 목소리에 대해서 Paula는 이렇게 물었다. 6월 한 달을 더 쉬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내 마음속에 무슨 감정이 일어나는지. 즉각적으로 반발이 불붙듯이 일어난다. 당장 6월 중순에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이번에는 5월처럼 빠질 수도 없고, 내가 기획자이자 발표자이다. 6월에도 칩거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행히 이 행사는 그렇게까지 빡빡하지 않다.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도 있다고 했다. Paula는, 그렇다면 이것을 '재시작'의 계기로 삼기보다 일을 다시 시작해도 괜찮은지 내 상태를 체크해 보는 '시험대'로 삼아보자고 한다. 다음 달을 예전처럼 살아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는 작업을 매달 하자고. 


두 번째 목소리는 조금 까다롭다. 지금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은 나도, Paula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경험을 발판 삼아 어떤 부분을 개선해 볼 수 있을까. '개선'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접근법'이라 칭해도 좋다고 한다. 현 상황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혹은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며,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쉬는 날을 정해둘 것"을 못 박는다. 주말이든 주중이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날을 꼭 만들어야 한다고. 그 다음 답은 더 쉬웠다. 몸에서 적신호를 알려온 덕에 규칙적으로 하던 운동을 1달 반 가까이 쉬어야 했는데, 그때의 답답함과 무력감이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물론 내 몸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한동안 과하게 밀어붙인 탓에 고관절 문제를 조금 악화시킨 감이 없잖아 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되, 운동을 노동처럼 하지는 말라는 당부를 들었다. 삶을 기분 좋게 만들 수준의 '적당한 운동'만 하라고 (대체 이 '적당한' 수준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 걸까). 


마지막으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 사실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한, 성과주의와 비교가 만연한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결말이 뻔히 보이는 불구덩이로 똑같은 짚섶을 진 채 들어갈 수는 없다. 분명 조금은 덜 타는 짚섶을 지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를 특별히 더 힘들게 했던 내 마음가짐은 무엇이었을까. 


모호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가 선택하는 길은 나에게 맞지 않다고 말하면서, 정작 소수가 선택하는 길을 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할 자신이 없었다. 만에 하나 대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가게 될 수도 있으니, 그때를 대비하여 필요한 부분을 갖춰둬야 한다는 욕심쟁이 마음이 나를 지배한 탓이다. 길이 다르면 전략도 달라야 하는데, 어느 길을 추구하는지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분명한 답을 내지 못한 채, 이것 저것 다 갖춰보려고 욕심을 냈던 것이다. 애매함을 무기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미국 정도는 되어야 북한을 상대로 '전략적 모호함'이라는 그럴싸한 (그렇지만 실제로는 상황 파악도 잘 안 되고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상대의 대응에 따라 그때그때 제일 괜찮아 보이는 선택지를 고르겠다는 편리함) 이름을 붙여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럴 깜냥도 안 되고, 깜냥이 아무리 된다 한들 성격이 아주 다른 두 길을 동시에 선택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 어느 것도 '내 것이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둘 다 잃지 않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마음을 품었나 보다. 원래 양다리는 정말로 부지런하고 머리도 좋아야 하며 에너지도 넘쳐나야 발각되지 않는 법이랬다. 나는 양다리에 소질이 전혀 없다. 


대다수가 선택하는, '주류'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차고 넘치게 많았다. 그 길은 지금처럼 보상이 제대로 주어질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의 세월을 최소 2년에서 8-9년 정도 더 보낸 후, 끊임없이 내 존재의 이유를 말과 글로 남에게 증명해야 한다. 어차피 이 길을 선택한 이상 말과 글로 세상과 소통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10년에 가까운 모호함의 세월을 더 보내야 할 만큼 '주류'의 길이 퍽 가치 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길을 이방인의 나라에서 추구하려면 현지인들보다 더 월등한 실력을 갖춰야 할 것이고, 미련 없이 한국에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기엔 한국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그리고 나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의 내 미래를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그래도 밥 벌어먹고 살 길이 그곳뿐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선택지가 이곳에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얼마나 오래 유지될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의 세월을 또 견디기엔, 내 정신적, 육체적 인내심의 항아리에 공간이 별로 없다. 그저 이 오래된 여정을 마치고 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 뭐라도 배운 것을 써먹고 싶다는 바람뿐이다. 어차피 한평생 무용한 것을 추구해 왔는데, 하루라도 빨리 유용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인정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고, 그 사실을 주위에 알려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도움을 받아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어차피 가지 않을 길을 염두에 두고 쓸데없이 에너지 낭비 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Paula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해결책인 것 같단다. 예전과 비슷한 삶으로 돌아가도 위의 세 가지 사항을 꼭 기억하고 mantra처럼 깊이 기억하란다. 같은 이유로 번아웃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며. 




늘 하듯이,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제 때 먹는지를 물어보았다. 밥은 꽤 잘 먹고, 잠은 원래도 그랬듯이 많이 자는데 여전히 꿈을 하루도 빠짐없이 꾼다고 말했다. 수면 다이어리를 적어보라고 해서 각 잡고 적어보려고 했는데, 적을 것도 없이 매일의 꿈이 거의 비슷했다. 늘 나는 도망자 신세였고, 살인자, 도둑, 귀신, 괴물, 혹은 인간과 섞인 외계인 변종 등등의 존재로부터 늘 쫓겼다. 때로는 현실처럼 생생해서 이것이 꿈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에 떨었고, 때로는 꿈 속임을 알았어도 쫓긴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을 졸이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이 꿈에는 결말이 없었다. 그저 내가 꿈에서 깨는 것이 추격전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 같았다. 


이 추격자(chasers)들은 원하는 게 뭘까? Paula가 물었다. 

낸들 아나. 나도 알고 싶지만 꿈은 꽤나 살벌해서 나는 매일 도망 다니기 바빴다. 


만약 꿈에 개입할 수 있다면 꿈속의 나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까? Paula가 또 물었다. 

글쎄, 숨겨주거나, 도와주거나, 보호해 주거나, 셋 중에 하나 아닐까. 


다시 물었다. 추격자들이 원하는 것이 뭐냐고.

잘 모르겠다. 그냥 나를 잡아서 죽이고 싶어 한다는 것만 알겠다고 답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이런 꿈이 익숙하냐고 물었다.

그럼, 아주 익숙하지. 시험이든, 데드라인이든, 뭐든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오면 대왕 벌레도 나오고 귀신도 나오고 살인자가 판치는 것이 내 꿈속 세계인 것을. 


추격자들은 무엇의 표상이냐고 물었다. 

뻔하지 않겠어. 스트레스나 불안 아닐까. 


그 스트레스나 불안은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란다. 

뭐, 늘 그렇듯이, 내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일하기를 바라겠지?


Paula가 날카로운 취조를 끝냈다. 

자기가 생각하건대, 내 꿈속에서 나를 쥐 잡듯이 잡으러 다니는 이 무서운 족속들은 자기들이 '죽을까 봐' 겁이 나는 것 같단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늘 '나'라는 기계를 돌아가게 만들던 윤활유 같은 존재였는데, 내가 스트레스 및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멀어지니까 자기네들이 소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것 같다고 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은 항상 그 자체로 나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공식적인 허가를 받고 '정당한 휴식'을 취하는 지금의 상황은 분명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내 무의식 속에서 나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부분(achiever)에게는 계획에 없던 지금의 상황이 몹시 당황스럽다. 내가 평안과 안식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어 버리면 종래에는 스트레스와 불안이 잠식하던 그 부분이 없어질까봐, 말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질까 봐, 나의 achiever는 떨고 있는 것이다. 


나의 achiever를 관장하는 무의식에게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란다. 너를 뿌리째 뽑아 버리지 않겠다는 '안심'의 말을 해주란다. 이 긴 여정을 포기하지 않고 마쳐보겠다고 약속의 말을 전해주란다. 다만, 스트레스나 불안에 떠 밀려서가 아닌, 나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는 순간 다시 일어서 보겠다고.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겠다고.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준 achiever를 영영 잃는 것이 아니라고. 꿈에서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그 무시무시한 존재들을 만났을 때, 도망 다니던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그들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네볼 것을 권했다. 나 또한 너희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내 안에서 너희들은 계속 살아 있을 테니, 내가 나의 중요한 조각을 잃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이다. 


새로운 꿈의 해석에 눈이 화등잔만 해진 나에게 Paula가 조용히 덧붙였다. 

쫓기는 꿈은 언젠가 인지하기도 전에 사라질 것이라며. 자기도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치는 꿈을 종종 꾸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고 있다고 했다. 마음의 밸런스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종종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늘 놀랍고 신선하다. Paula와의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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