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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Dec 29. 2023

셀프 후려치기는 이제 그만

True Refuge by Tara Brach

**아래 내용은 Tara Brach의 2013년 출판작 True Refuge: Finding Peace and Freedom in Your Own Awakened Heart을 읽고 각색한 것입니다.




언니. 

내가 예전에 살던 기숙사에 Adam이라는 친구가 있었어. 

여자애들이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할 정도로 훤칠했는데, 얘는 오히려 남자애들 사이에서 인기가 더 많았던 기억이 나. 브라질 출신답게 축구를 엄청 좋아했거든. 근데 보통은 그렇게 인기가 많으면 바람둥이일 것 같고 뭐 그렇잖아. 몇 번 대화를 나눠봤는데 의외로 남의 말도 잘 들어주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애더라. 걔랑 나랑 기숙사에 지내던 시기가 겹칠 때에는, 내가 밴쿠버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영어도 어눌하고 문화 차이도 매일 느끼고 있었어서 대화가 썩 매끄럽진 않았던 것 같다. Adam이랑 더 친해질 수 있었는데 나의 어벙함이 가끔 어색함을 만들어낸 탓인지, 그냥 대충 친한 사이로만 지냈던 기억이 나네. 


Adam이 기숙사를 나가고 나니까 오히려 걔를 정기적으로 만날 기회가 생겼었어. 내가 수업을 듣는 건물에서 걔도 같은 날 수업을 하더라구. 그래서 그냥 매주 화요일은 수업 전 걔랑 점심 먹는 날이 되었지. 그즈음의 나는, 밴쿠버에 오기 전 가졌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렘과 동경, 그리고 무언가를 잘해보겠다는 야심 따위는 다 갖다 버린 지 오래였어. 은근 수업을 가는 날이 두려워지기도 했고 그냥 주어진 과제만 꾸역꾸역 할 뿐 마음은 늘 답답했거든. 나는 이곳에서 완벽한 이방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지인도 아닌 어중이떠중이가 되어 있는 것 같았어.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보이지 않는 벽에 내가 머리를 갖다 박는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까 마음이 지치긴 하더라. 그러다 보니 1주일에 하루 보는 날, Adam이랑 밥 먹으면서 좀 밝았으면 좋으련만 나도 모르게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힘들고" 식의 넋두리만 늘어놨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걔한테 좀 미안하네. 그때 걔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민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살아내느라 바빴을 텐데... 


처음 몇 번은 그냥 의례히 할 만한 조언이 오고 갔어. 쉬엄쉬엄 하라,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질 거다, 등등. 근데 언니도 알다시피 그런 조언은 내 귓등도 스치지 않고 지나갈 거잖아. 나도 머리로는 알면서도 입으로는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는 화요일 점심시간이 몇 번 반복되었어. 어느 날 Adam이 묻더라. 만약 자기가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힘들다고 한다면 뭐라고 대꾸할 건지. 뭐 크게 생각할 것도 없었어. "너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고 더 이상 너를 몰아붙이는 것은 무리니까 잘 먹고 잘 자야 한다"와 같이 특별할 것 없지만 응원을 담은 대답을 해줄 거라고 말했지. 내가 아니라 걔를 아는 누구라도 그렇게 말했을 거야. 걔는 진짜 열심히 하고 있었고 나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랬더니 Adam이 다시 묻더라. 친구에게는 그렇게 쉽게 나오는 말을 왜 스스로에게는 하지 않냐고. 그러면서 나 자신을 잘 대해주라(treat yourself well)고 하더라. 난 조금 멍청해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물었어. 나 자신을 잘 대해주는 게 뭐냐고.  


Adam이 그러대. 스스로를 잘 대해주는 것이 뭔지 잘 모르겠으면, 내가 친구에게 해줄 법한 말과 행동을 하면 된대 (treat yourself as your bestie). 나도 언니한테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는 둥, 잘 챙겨 먹어야 덜 힘들게 늙는다는 둥, 그런 말 하잖아. 근데 정작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해준 적도 없고 해 줄 생각도 못 한 거지. 그 당시에는 무릎을 칠 만한 발상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나는 그로부터 지금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내 부족한 점은 없는지, 남에게 책 잡힐만한 구석은 없는지, 어디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면서 나를 들들들 볶았네.  


몇 년 전 타코집에서 부리또 씹으면서 Adam이 말했던 '스스로에게 친구가 되어 줄 것'이랑 비슷한 개념을 올여름 Tara Brach의 책에서 다시 봤다? 아, 물론, 이 책은 Paula가 추천해 준 거야. 이미 그쪽 세계(?)에서는 유명한 책이었나 봐. 그나저나 난 요즘 뭘 읽을 때 요약본은 만들어놓지 않으면 그렇게 찝찝하고 불안하더라... 직업병인가 봐... 그래도 이왕 만든 거, 언니한테도 도움이 좀 되면 좋겠다. 언니도 스스로를 깨 볶듯 애써 볶는 편이니... 


  


내가 나의 베프가 된다는 건 어떤 뜻일까?

모르긴 몰라도 다음의 것 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내가 나의 베프가 되는 것은 애초에 물 건너간 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스스로에게 무자비한 잣대를 들이대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비판, 사소한 일로 흠잡기, 쉼 없이 스스로를 몰아가기." 


오, 세상에. 나는 10대부터 위의 3가지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나를 후려치고 있었네. 


Tara Brach라는 미국 심리학자는 True Refuge라는 책에서 자신도 스스로에게 가혹했다고 고백했어. 마치 자신에게 근본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있고 이를 고쳐야 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대했대.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사람이 심리학자이자 명상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만난 내담자 및 학생들 역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거. 왜 다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가혹할까? 마치 최면상태(trance)에 빠진 것처럼 스스로가 별 볼 일 없다고 여기는 '왜곡된 믿음 (distorted beliefs)'은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Tara Brach는 self-compassion이라는 개념을 활용해 보래. 한국어로는 '자기 연민'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으나 저자의 핵심 주장을 고려하면 '스스로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인정'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겠다. 자기를 그저 불쌍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더 깊은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해 보자는 뜻이겠지? Self-compassion이 가능하려면 인간은 스스로의 취약한 부분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대. 벌써부터 무시하고 싶긴 하다... 나는 늘 스스로를 들들 볶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믿음'을 '셀프 후려치기'로 부를래. Tara Brach의 책을 보면 이 셀프 후려치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총 4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각 단계의 앞 글자를 따서 RAIN이라고 부르기로 했대. 여담인데, 영미권 애들은 이런 거 참 잘 지어내는 것 같아. 


Recognize what is going on;

Allow the experience to be there, just as it is;

Investigate with interest and care;

Nourish with self-compassion  


첫째(R), 스스로가 '셀프 후려치기'의 늪에 빠져 있음을 인식/인정하쟤. 끊임없이 나를 옮아 매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하네. 모든 일의 해결은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데, 나는 왜 이 '인정'부터도 어렵게 느껴지지? 무튼, 스스로가 '셀프 후려치기'의 상태에 빠져있는지 여부는 간단히 확인할 수 있대. 내면의 목소리가 스스로에게 가혹한가,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가, 혹은 우울감/우울증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는가 등을 확인해 보면 된다는군. 


언니는 어때? 나는, 우울감/우울증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 적이 많았고, 알 수 없는 불안은 늘 내 뒤통수에 달려있는 또 하나의 나 같은 존재였어. 가까이로는 올여름만 해도, 어느 날 갑자기 번아웃이 탁 하고 오더니 단 이틀 만에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만 줄줄 흘렸지. 거기서 더 방치했으면 우울증으로 가는 KTX 타는거였지.여기서는 내가 처해 있는 상황 때문에 그렇다 쳐도, 서울에서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어. 늘 우울감이 내 하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어도 2-30%는 되었던 것 같아. 내가 시험에 합격할까,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이번 프로젝트가 진척이 될까, 합격을 할까, 원하는 점수를 얻을까 등등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으니 당연한 거겠지? 어떻게 결과가 항상 내 마음에 들 수 있겠어. 하지만 또 어떤 인간이 신선 놀음하듯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의 마음으로 인생을 살 수 있는지도 의문이야. 결과가 좋으면 기뻐하기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넘어갔고 (혹은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그 화살을 나에게 돌리는 가장 쉬운 방법을 택했던 것 같아. 누군가를 탓하기라도 해야 '해결책'이 있다고 믿을 수 있잖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120%의 노오력을 들인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어야만 했어. 그래야 최선을 다하면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공식이 생기고 내 캄캄한 마음을 밝혀줄 등불이 될 테니. 안타깝게도 나는 '최선'을 다했는지 여부를, 내 만족감이 아니라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결과에 두는 우를 범하고 살았더라고. 


둘째(A), 내가 겪는 모든 감정과 생각, 그리고 몸으로 느끼는 반응 등을 그대로 내버려 두래 (let them be there). 유명한 노래의 제목이기도 한 "let it be"는 사실 말이 쉽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그다지 쉽지가 않다고 생각해. '셀프 후려치기' 혹은 '자아비판의 늪'에 갇힌 경우에는 스스로가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let it be'를 실천할 수 있다고 하네. 그 내면의 목소리에 동의하는 대신, 내가 나를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그 기저에 깔린 고통스러운 감정 (자기 비하, 비관 등) 또한 인지할 수 있게 된다면 'let it be'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간 것이래. 이 시점에서 오은영 박사의 '긍정'에 대한 정의가 떠올랐어. 흔히 '긍정'이라고 하면 '부정'의 반대 개념으로 '좋은 것'을 떠올리는데, '긍정'이라는 단어의 한자를 들여다보면 그 정의가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대. 


그래서 내가 '셀프 후려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냥 인정해 봤어 (물론 Paula의 도움으로). 처음에는 정말 잘 안 되더라. Paula가 계속 "너는 잘하고 있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상담을 받는 건 대단한 거야", "마찬가지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박사 논문을 쓴다니, 스스로를 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 주렴", 등등의 말을 했는데 조건반사적으로 고개가 저어지더라. 한국에서 뼛속 깊이 체득한 '겸양'의 지혜가 동양의 신비로운 미소와 함께 발현되는 순간이랄까. 여름에 내가 적어놓은 일기 한 번 봐봐. "나와 비슷한 단계에 있는 남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고",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이 긴 과정을 빨리 끝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내가 부족한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는데 남들이 잘하고 있다는 말은 그냥 하는 소리일 뿐이고",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등등 죄다 셀프 후려치기 뿐이야. 


어느 순간부터, "not good enough"의 저주에 빠져서 겸양의 미덕을 양껏 발휘하고 있는 나에게 Paula는 단호하게 "no"를 외쳤어. "운이 좋았다"는 마음가짐도 좋지만, 나는 겸손이 지나쳐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대로 인정하래. 끊임없이 성과를 보여야 사랑받고 관심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나를 인정해 주래. 못한 것을 잘했다고 말하는 페이크 말고, "아, 네가 사랑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구나"를 입 밖으로 말하면서 심장 근처를 어루만져 주라더라.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럴 때 마다 6-7살짜리 혹은 14-15살 무렵의 내 모습이 자꾸 연상돼. 내가 아닌 타자의 사랑을 갈구하지 말고, 그 어린아이가 원하던 사랑을 내가 주면 된다는 Paula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방울방울 차올랐던 기억도 나네. 


셋째(I), 앞선 단계에서 나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몸으로 느끼는 것들을 인정하고 긍정했다면 이를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대. 이때 고압적인 검사와 같은 태도로 임하지는 말자. 세상 물정 모르지만 학구열 넘치는 학자처럼 '진실을 향한 열망'으로만 무장한 채 나의 깊은 내면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 보래. "나의 이 상처 입은 마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감정은 내 몸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등등. 이때 던지는 질문은 몸으로 느끼는 그 감각에 최대한 초점을 둔 것이어야 하고,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된대. 스스로를 보살피는 느낌으로 접근해야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비로소 개개인의 깊은 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상처, 공포, 불안, 수치심 등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 


이 글을 다듬는 지금과 달리 올여름의 나는 내 깊은 내면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찾고 싶지만 너무 애쓰다 보니 잘 안 보이는 상태'였던 것 같아. 찾고자 너무나 노력하다 보니 잘 안 찾아지더라고... 내 선생님은 나한테 "너무 의지만 좇다가 현실을 못 볼 수 있으니 대충 찾았다 싶으면 그냥 땅바닥에 발 붙이고 지내"라고 말씀하시대. 우리샘 답지 ㅎㅎ


나는 여름에 참으로 답답했었어. 그때의 일기를 보면 각종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토해놓고 있네. 식도염이나 편두통으로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은 뭐 대수롭지 않았고, 내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 부분은 동기부여가 1도 안 된다는 점이었어. 데드라인은 말만 데드라인일 뿐, 마감을 훌쩍 넘긴 일들이 쌓이고 있고 내 마음도 같이 까맣게 타고 있었지. 그런데 정말로 컴터를 만지작 거리기만 할 뿐, 혹은 연구와 전혀 관련 없는 것만 들입다 팔 뿐,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손댈 엄두가 안 나더라. 악순환이 반복되어 스트레스는 있는 대로 받고 건강만 안 좋아졌지. 죄책감이 나를 지구 맨틀까지 짓누르는 건 말해 뭐 해. "이럴 시간이 없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종래에는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고, 결국 파업을 선언했어. "I'm not doing well!!" 이럼서. 


아직도 내 내면 어딘가에서는 사회에서 안정적이라고 믿는 길, 옳다고 믿는 길을 외면할 자신은 없고 그렇지만 순순히 그 길을 따라가기는 싫은 심술쟁이가 있다고 생각해. 지금은 그 심술쟁이가 좀 잠잠해. 어차피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걔도 알았고, 내가 그냥 힘들어서 놔 버린 것도 있거든. 이 단계에서 강조하듯이 내 몸이 받아들인 느낌과 감정에 집중해 보니, 올여름 나는 그저 막막하고 잘 모르겠고 그냥 좀 숨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숨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숨을 수 있으니 Paula의 도움으로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공식적'으로 쉬긴 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했지. 내가 이 얄팍한 수를 쓰며 현실도피를 하고 있나. 고작 종이 조각 몇 장 뒤로 숨고 있나. 세상은 녹록치 않을텐데, 이러면서 말야. 


숨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은 슬펐던 기억도 나. 이해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내 목소리를 누군가 들어주길 바랐었는데 (be listened), 그게 거절당한 순간 그와 유사하게 내 목소리가 묵살된 기억과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의 상처가 한꺼번에 올라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Paula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기억 속 내가 가장 답답하고 슬프고 짜증 나고 결국엔 포기하고 내 마음을 갈무리해서 어디 꽁꽁 숨겨버리는 장면이 '내 목소리가 파묻히는 경험'과 관련이 깊더라구. 어릴 때는 어리기 때문에 내 선호도가 최종 결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내 바람을 마음 한 구석에 잘 묻어놔야 하는 경우가 있었겠지? 후자의 경우는 그냥 어른의 마음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면 이해도 되고 잊기도 하는데, 어릴 때 상처받은 장면은 참 잘 잊히지도 않아. 어차피 해결책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좀 들어주면 안 되나... 하는 원망이 저 어딘가 한 구석에 짱 박혀 있었던 모양이야. 다른 이야긴데, 아이를 잘, 정말로 잘 키운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해... 뭐 좋은 대학가고 돈 많이 벌고 그런거 말고. 이 험난한 세상 자기 중심 잘 잡고 살 수 있게 감정적 자산이 많도록 키우는 거 말야. 유년시절의 경험이 그 사람 인생 전체를 관통하잖아... 내 결핍이 뭔지 평생 모르면서 끌어 덮어놓고 살든가 아니면 나 처럼 다 커서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마음을 개보수하든가... 


넷째(N), 이야기가 길었다만, 이제 Self-compassion을 실천할 준비가 되었대. 모든 것은 인지와 인정으로부터 시작한다고 하네. 나의 내면을 살찌우고 스스로를 진정으로 보살피기 위해서는, 내 안의 상처받은 부분, 곪아터진 부분, 상처 입은 지도 모르는 부분이 어딘지 알아야 하고, 이를 통해 적극적인 치료와 보살핌이 가능하대. 내 안의 상처받은 내가 원하는 것은 뭘까? 스스로에 대한 용서, 사랑, 혼자가 아님을 상기시키기, 혹은 안심시키기 등 그 형태는 다양하겠지. 한 번에 필요한 것을 얻을 수는 없을 테니 여러 번에 걸친 시행착오가 필요할 거고. 스스로에게 "나는 여기 있어",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 등과 같은 말을 속삭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래. 아마 이런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한테는 좀 어려운 과제가 되겠다. 종종 두 팔로 나를 감싸 안거나, 두 손은 내 심장께에 올려놓는 작은 행동만으로도 스스로에게 효과적인 'self-compassion'을 실천할 수 있대.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고 마음 어딘가 뻥 뚫린 부분을 조금씩 채우는, 그런 거 말이야. 아마 평생에 걸쳐해야겠지? 


Paula는 항상 내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을 때 손을 심장께로 얻고 눈을 감으라고 했어. 생각을 차단하고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그 첫 느낌이나 이미지에 집중하래. 눈물이 왈칵 올라오거나 (눈을 감고 있는데도), 약간의 옅은 미소가 번지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what did you notice"라고 물어. 그 순간이 아주 중요하대. 모든 순간이 기억나진 않지만, 대체로 그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내 내면을 보살피는 마법의 묘약은 꽤 단순했어. "I'm here", "I will be with you", "you are safe" 등의 말을 나에게 해주래. 무슨 영화에서나 보는 오글거리는 대사 같잖아. 근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던 적이 있었어. 한참 호흡 패닉이 와서 잘 다니던 수영장에서도 물에 얼굴을 담그기가 무섭던 날이 있었다? 운동을 안 하기는 아깝고, 지금 포기(?)하면 상당히 오랜 기간 물에 들어가기 힘든 마음상태가 될 것 같아서 조금 용기를 내 봐야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물에 들어가면 진심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공포가 확 오더라고. 나도 모르게, "괜찮아", "안전할 거야" 등의 말을 되뇌면서 출발 준비를 하는 내가 있었어. 그 이후로 그런 순간이 가끔 찾아오면, 그냥 "응, 무서운가 보네", "괜찮아, 물속에서도 혼자가 아니야" 등의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면서 나를 안심시키곤 해. 




언니, 

내가 들로 산으로 뛰노는 바람에 우리는 꽤 자주 만날 수 있었잖아.  다운타운에서 수다도 자주 떨고 좋았는데... 좀 더 열심히 놀 걸... 이제와 아쉽네. 


올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나는 올 봄여름을 꼭 돌아보고 지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이럴 시간 없는데"라는 관점으로 보면 낭비에 불과한 시간이었으나, 나는 나라는 사람의 근간을 닦을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나는 왜 불안을 확대 재생산했을까? 불안을 가중시켜 내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좋을 리가 없는데 왜 그랬을까? 왜 동기를 상실했을까? 애초에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과도한 수면과 실종된 식욕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던 걸까? 현실도피와 자기학대인가? 현실에서 나의 초라한 모습 혹은 갈 길이 먼 내 모습은 수면의 힘을 빌려 잠시 외면하고 싶고, 잠에서 깨어난 시간 동안은 나를 벌 주기 위해 식욕을 없애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은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생각보다 빨리 루틴을 회복했지만, 만약 나 혼자였다면 과연 지금의 상태였을까 아니면 예전처럼 바닥으로 기어내려갔을까? 시간 앞에서 한없이 불안해지는 내 마음에게 무엇을 줘야 불안이 가라앉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타인의 인정'을 잠시 떠올려 봤어. 부모님의 인정, 지도교수의 인정, 동료들의 인정 뭐 그런 거? 뭐 소염진통제처럼 잠시 잠깐은 약빨이 듣겠지? 하지만 역시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었지. 가을을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보내고 내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적어놓을 수 있는 말은 역시, 이 터널을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나를 인정하자는 것? 이 여정을 끝낼 무렵의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벌써 꽤 뿌듯해. 뭐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1도 없고 이토록 오래 이걸 붙잡고 있는 게 무슨 자랑이 되겠어. 현실적인 문제? 뒷일도 잘 모르겠어. 미친 밴쿠버 집값, 언니도 겪었던 남의 나라에서 외노자로서의 취업지옥, 이제 가족도 있으니까 인생계획에 변수가 하나 더 생긴 것 등등. 나열하다 보면 끝도 없지만, 아 몰랑. 그냥 닥치면 그때 하자,라는 매우 편안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을란다. 


내가 올 3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잖아, 언니.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정말 나를 향한 글이었어. 내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고 분석해 주는 Paula의 존재가 너무나도 감사했지만, 나는 여전히 목말랐던 것 같아. 모국어로만 전달되는 것들이 있잖아. 언어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누가 내 이야기를 몇 시간씩 몇 달이고 들어주겠어. 결국 나 밖에 없더라고. 아마도 나는 내 목소리가 날아가서 어딘가에는 당도하길 바랐나 봐. 단 한 명의 청자, 그게 미래의 나라도, 그저 지금의 내 목소리가 들리길 바랐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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