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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Jul 29. 2024

나이 먹고 영법교정을 한다는 것

맨날 떡실신

올림픽 시즌이 벌써 돌아왔다.

요즘은 올림픽, 월드컵, 이런 단어들이 겁난다. 나는 아직 밴쿠버에 처음 온 그때에 머물러있는 것 같은데 세상의 시계는 너무도 빨리 흐르는 것 같아서... 솔직히 무섭다. 이러다가 정신 차려보면 환갑일까 봐. 


센강 똥물에서 파리 시장과 프랑스 대통령이 수영을 하네 마네, 선수촌에 에어컨이 있네 없네, 식단이 대부분 비건이네 어쩌네, 올림픽 시작부터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도교수가 프랑스인이라 유럽의 혹독한 여름 (aka. 40도를 넘나드는데 에어컨이 없는...)에 대해 매년 듣지만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의 여름도 싫어서 여름엔 절대 한국을 가지 않는다. 


예전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들을 봐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김연아/박태환 선수 제외), 요즘은 종목 상관없이 결승전을 볼 때 종종 울컥한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아직 여성호르몬이 끊길 나이는 아닌데, 감수성이 더욱 풍부해지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 메달 입상권자가 결정되면 감정은 한층 더 올라온다. 그 역사적인 순간이 감격스러워서 혹은 입상한 선수의 성공에 감화되어서는 아니다. 저 자리에 서기까지 저들은 어떤 낮과 밤을 보냈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모두가 자신을 뿌리까지 갈아 넣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메달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곤 하지만 모두가 입상을, 그것도 이왕이면 금메달을 노린다. 시상대에 서든, 서지 못하든,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냈던 시간과 흘렸던 눈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누군가는 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나는 그들의 삶이 어떠할지 단 10%도 알지 못한다. 전문체육인 혹은 전문예술인의 근처에도 못 가봤다. 그래서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한들, 사실과 가깝지도 않을 테고 주제넘는 생각일 확률이 크다. 그래도. 결과가 전부는 아니라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고 있다고. 아니, 그냥 그 쉽지 않은 길에 서 있는 당신 그 자체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은 대게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생각한다. Niels Borh는 '전문가(expert)'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전문가란 특정 영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실수를 다 해 본 사람이다 (An expert is a person who has made all the mistakes that can be made in a very narrow field)." 말이 쉽지 그 모든 단계에서 크고 작은 실수를 거듭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 고민, 그리고 좌절을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늘 주인공이 좌절을 겪고 절치부심하여 타이어 좀 굴리고 복싱 좀 하고 식단 조절 좀 하고 이 좀 갈고, 그러다가 갑자기 새로운 캐릭터로 재탄생한다. 고난의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축약되어 버리고 단단한 몸과 날카로운 눈빛을 장착한 전문킬러 혹은 레벨 업한 운동선수가 되어 나타난다. 삶이 그렇게 신속히 바뀌고 레벨업이 쉬우면 참 좋겠다. 


나는 특히 몸을 써서 하는 일을 업으로 둔 사람들을 존경한다. 운동, 예술, 기술, 다 포함된다. 

'전문지식인'의 길도 쉽지는 않지만, 몸을 써야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로) 머리만 쓰면 되는 '지식인'의 길보다 몸과 머리를 같이 써야 하는 길이 더 어렵다. 나는 운동을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하는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을 참 싫어하는데, 몸을 조금만 써 보면 금방 안다. 진짜 머리 나쁘면 운동이든 예술이든 기술이든 다 못한다. 그저 개개인의 뇌에서 좀 더 잘 활성화되는 영역이 다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수영,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를 업으로 삼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다. 나는 예체능에 그렇게까지 큰 재능은 없다. 머글 수준에서 귀엽게 즐기고 놀뿐, 이를 업으로 삼았더라면 나는 지금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테다. 자기가 가지 않았던 길에 미련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가 걷지 않았던 길에 미련이 없다. 골방에 틀어박혀 씨름하는 것은 랩탑 하나면 족하다. 그 대상이 피아노 건반이 아니라 다행이다. 나는 넘어져도, 부러져도, 평소만큼 기록이 나오지 않아도, 자세가 잘 잡히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니라도, 울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나아가야 하는 그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갈 자신이 없다. 머리만 쓰면 되는 일은 몸이 좀 불편해도 잘 달래서 머리만 잘 굴러가게 하면 된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으면 쉬었다가 내일 다시 머리를 쓰면 된다. 몸으로 하는 일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아파서도 안 된다. 매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 피아노 연습을 하루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 하지 않으면 동료가 알고, 사흘 하지 않으면 청중이 안다. 이 말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가. 나를 한계까지 밀어붙이다가 부상을 입어도, 내일이면 진통제를 먹고 물 색깔까지 빈틈없이 똑같은 수영장에서 똑같은 물살을 갈라야 하는 삶이 아니라 다행이다. 어느 날 갑자기 물속에서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와도 물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어야 하는 매일이 내 삶이 아니라 다행이다. 이 "다행"은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정한 안도감과 그걸 해내는 인간이 있다는 데에 대한 존경이 반반 섞인 "다행"이다. 




지난달 초부터 Adult swim club을 시작했다. 

혼자 하는 수영을 백날 해서는 발전이 없다고 생각했고, 작년 여름 일대일 강습 이후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혹은 퇴보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원래는 마스터즈 반을 들어가고 싶었는데, 입단(?) 신청서를 작년 여름에 넣었지만 대기가 길다는 답변 외에는 아무런 소식이 없어 수업으로 마음을 바꿨다. 수업은 1주일에 한 번, 5-6명의 강습생과 함께하는데 개별 영법 교정에 적합한 규모였다. 결과적으로 이 편이 훨씬 잘한 일이었다. 지금 이 실력으로 마스터즈에 갔다간 떡실신하고 배를 까 뒤집은 채 물 위에 떠오른 너구리 한 마리가 수영장에서 건져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치는 현역 수영선수였고 대단히 강인해 보였다. 온몸이 아주 탄탄한 근육질이었는데 팔도 다리도 어깨도 모두 독일병정 같았다. 심지어 삼두(aka. 팔뚝살)는 흔들리지도 않는다 (여성의 삼두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대단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완근도 거의 클라이밍 선수 급이었다.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아무래도 단거리 종목 선수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같은 수영이라도 장거리와 단거리 선수의 몸은 외관상 차이가 좀 난다). 하지만 코칭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였다. 몸으로, 그것도 수중에서 하는 동작에 대한 설명을 언어로 전달하는 경험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선수들은 많은 것을 체화했기에 이미 직관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몸으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채널이 그렇게까지 활성화되어 있진 않다. 나를 포함하여 강습생들은 코치의 지시에 대해 여러번 묻고 확인하기 바쁘다. 아무래도 코치가 물 밖에서 말로만 지시하기 때문에 그의 동작을 현장에서 볼 수 없다는 것도 수강생들의 이해 부족에 한몫하는 듯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특히 머리로 먼저 이해가 되어야 몸이 따라가는 편인데, 수영용어와 동작에 대한 것을 영어로 묻고 지시를 바로바로 이해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불현듯 작년 캐나다 국대(aka. 물개선수)와의 수업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https://brunch.co.kr/@boyish-aaron/54). 당시 그는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대단하진 않은 선수"라고 겸손하게 낮췄다. 내가 수영선수가 아니니 그를 평가할 순 없지만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10km marathoner였다. 사람이 어떻게 10km를, 그것도 빠르게, 헤엄친단 말인가), 그의 코칭능력은 꽤 훌륭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개선수는 신체 동작을 언어로 설명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이해를 못 하는 듯하면 이해를 할 때까지 다양한 설명을 추가했다. 청소년 코칭도 맡고 있다고 말하며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물개선수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 나가진 않은 것 같지만, 여전히 물살을 가르며 코칭을 즐기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역시 선생의 가장 큰 자질은 "학생이 모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는 내 신조가 맞음을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독일병정 코치와의 수업은 다른 의미로 신선한데, 그 이유는 매일 새로운 드릴(aka. 훈련패키지)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것 혹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드릴은 전혀 직관적이지 않다. 머리는 '이렇게'인데 몸은 '저렇게'로 하고 있다. Sculling, eggbeater, boat drill, fist drill, finger drag drill 등등. 게다가 제멋대로 혹은 잘못 길들여진 상태로 계속 가려는 근육을 일깨워 오류를 알려주고 새로운 패턴을 익히는 것을 늘 어렵다. 힘은 2-3배로 든다. 첫날에는 어깨로 하는 드릴이 아닌데도 승모근에 힘을 어찌나 많이 줬는지 다음날 뒷목이 뻐근했다. 게다가 레슨 때마다 물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수업이 끝나면 배는 빵빵한데 그렇게 목이 마르다. 어떤 날은 수업 후 식욕이 넘치다가 어떤 날은 아예 식욕이 없다. 진심 숟가락 들 힘도 없는 상태다. 수업을 한 날은 잠들 때까지 온몸에서 열이 뻗친다. 첫 수업한 날은 체온이 37-37.5도를 넘나 들었는데, 그날 코로나에 걸려 발열이 심한 짝꿍의 체온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엔 간밤에 누가 밟고 지나간 것처럼 몸이 무겁다. 그렇다. 수업이 1주일에 한 번만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늘 수업하는 날은 조금 설렌다. 

나는 어떤 걸 잘못하고 있을까. 어떤 부분을 고칠 수 있을까. 오늘은 어떤 걸 배울까. 

그리고 아주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첫 수업보다 두 번째 수업이 덜 힘들고, 세 번째 수업은 쪼금 덜 힘들었다. 수업에서 배운 드릴을 자유수영에서 연습하지만 여전히 힘들다. 이미 내 몸에 많이 익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동작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갑절로 힘들다. 새하얀 도화지에 아무거나 그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두 번째보다는 다섯 번째가, 그보다는 열 번째가 덜 힘들다. 그러면서 내 광배근도 전완근도 내년 여름 즈음엔 좀 더 달라져 있지 않을까


연습을 할 때마다 내 physio therapist가 한 말을 떠올린다.

전직 provincial level swimmer였던 그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루의 반을 물에서 떠 다녔지 뭐..."

아, 수영이 취미라 정말 다행이다. 


#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 존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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