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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Aug 30. 2024

정신 차려보니 쫄보가 되어있지 뭐예요

옛날 옛날에,

우리 외할머니는 자도 자도 잠이 쏟아진다는 나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잠 좀 내한테 팔아라. 늙으면 잠이 영 달아나뿌고 (달아나버리고) 안 온다."


원치 않는 만성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할머니는 내 기억으로도 새벽 4시면 일과를 시작했었다. 하지만 노화와 수면 단축의 상관관계에 대해 전혀 알 길이 없었던 그 나이의 나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할무니, 나이 드는 게 뭐길래 잠도 안 와?"

"나이 드는 거는 서러븐 (서러운) 일인기라. 잠도 안 오고, 겁도 많아진다카이 (많아진단다)." 


노화와 수면 단축의 관계에 대해서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는데, 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할머니. 그렇게 노화와 쫄보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아주 잠깐 알게 되었지만, 살면서 그 말을 체감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바로 오늘, 저녁시간까지만 해도. 





올여름의 마지막 수영 수업.

사실 독일병정 코치는 이미 몇 주 전 지나가는 말로 마지막 수업에 대해 흘렸다. 물 밖 출발 동작인 Dive 훈련을 하겠다고. 으응, 그렇구나. 하지만 뭐, 스케줄이란 늘 유동적이니 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아아, 내 실낱같은 희망은 부서지고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한국에서 흔히 스타트 훈련이라고 하는 그 동작은 어릴 때 수영을 배우면서도 끝끝내 정복하지 못한 동작이었다. 어정쩡하게 두 팔을 길게 뻗어 머리 뒤에 붙여봐도, 배치기로 물에 철퍽 떨어지기 일쑤였다. 이후 성인반 수업을 들어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배우는 사람에게도 어렵지만, 가르치기도 쉽지 않다. 선수가 아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수영반에서는 강사들도 이 동작에만 시간을 할애하기 힘들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하루치 운동량을 채우는 것이 목표인 사람들도 많고, 그들의 '수강료 값'에 준하는 수업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 영법은 어찌어찌 가르쳐주면 괴발새발 물에 떠서 가니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어느 정도 결과가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dive start는 가성비가 참 좋지 않은 훈련이다. 감각을 익히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연습이 고되다. 


게다가 코치가 동반되지 않은 경우 수영장에서 dive를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자칫 그 레인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 위로 떨어져 크게 다칠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 수영장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밴쿠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수영장은 국제대회 규격이라 물 깊이가 2.5m에 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iving deck은 자유수영 시간에 쓸 수 없었다. 즉, 개인이 연습할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영법과 관련된 테크닉은 수업 시간에 좀 버벅거려도 혼자 연습하고 몸에 익힐 시간이 충분했는데, dive는 이야기가 달랐다. 쫄림이 느껴졌다. 아, 오늘 수업 힘들겠구나. 


떨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일병정 코치는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훈련 방식은 점점 출발대와 시선의 높이를 올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첫 단계는 쉬웠다. 수영장 측면 물 밖 끝자락에서,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다른 한쪽 다리는 90도를 만든 채 두 팔을 길게 뻗어 머리 뒤로 두는 streamline position을 취한다. 그 상태로 90도로 굽힌 다리의 무릎을 살짝 앞으로 밀면서 상체를 물속에 빠뜨리는 동작이었다. 앉아서 시작하니 서 있을 때에 비해 시선이 낮아서 안정감이 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배치기(주: 수면을 배로 치며 입수합니다.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고통스럽습니다)를 할래야 할 수도 없는 자세여서 크게 무서울 것도 없다. 다만, 물속에서 올라오면서 눈앞에 레인이 있는 줄 모르고 출수하다가 눈탱이를 맞았다는 게 유일한 흠.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오늘 수업이 고행의 연속길이 되리란 것을. 


두 번째 단계는 diving deck이 설치된 벽 출발선이다. 아직 deck위로 올라가진 않았지만, 출발 지점에서 무릎을 굽히든, 선 자세에서 뛰어들든, 수영장 측면 물 밖 끝자락보다는 조금 높이가 높아졌다. 무릎을 굽히고 할랬더니, 코치가 한 단계를 생략한다. 서서 걸음을 내딛는다는 생각으로 하중을 앞으로 옮겨서 입수하란다. 어쩌지. 이미 무섭다. 마음속으로 열 번, 스무 번 정도 생각하고 자세를 잡았다가 풀었다가 겨우 큰맘 먹고 뛰어든다. 아오, 배야. 배치기, 가슴치기, 두루두루 친다.


저렇게 슝- 날아야 한다. Diving deck 아래 수영장 벽 끄트머리에서 내려다봐도 이미 꽤 높다. Deck에 올라서면 당연히 무섭다. 출처: Unplash


서서 하다가 얼굴치기도 할 것 같아서, 생략된 단계를 소환하여 무릎 굽힌 입수자세를 더 연습해 보겠다고 했다. 얼굴치기는 피했지만, 여전히 배로 물을 치고 있었다. 이러다가 장이 터지는 거 아닐까. 오늘 빈 속으로 오길 잘했다. 뭐라도 먹었으면 물속에서 토했을 거고 나로 인해 수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비상 대피를 해야 했을 거고 나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어 물속에 잠기고 말았을 테니까. 


classmates들은 이제 3단계인 diving deck에 올라가 있다. 이게 낮아 보여도 위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것도 뛰려고 들면) 은근 높이가 느껴진다. 코치도 처음 몇 번은 diving deck에서 그냥 물에 수직으로 뛰어드는 연습을 시켰다. 물론, 나는 이 단계에 가기도 낙오자가 되었다. 흑흑. 


diving deck에서 연습하는 사람들 옆 레인에서 누군가의 몇 번째 배치기인지 모를 소리가 드넓은 수영장을 울렸다. 어쩌면 그렇게 밀도 있게 배로 물을 칠까. 배뿐 아니라 상체 전반을 이용해서 물을 치다 보니 쇄골 근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수영복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아랫배 피부는 토마토 색이겠지. 


배치기는 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보는 사람도 상당히 고통스럽다. 겪어본 고통이 더 아픈 법이니. 하도 배치기를 하니, 보다 못한 독일병정 코치가 "dive가 별로면 다른 걸 할래? 뭐 턴 연습이나 그런 거"라고 물어본다. 잘 대답했어야 했는데 잠깐 어물쩡거리다 우물우물 뱉어낸 말이 이 모냥이다. 이왕 왔으니 그냥 배워보고 싶기도 한데 조금 무섭기도 해,라고. 아차, 나는 '무섭다'에 방점이 찍혀있었는데, 코치는 '배워보고 싶다'에 방점을 찍은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독일병정 코치는 표정이 없을 뿐, 마음은 따뜻한 여자였다. 기원을 알 수 없는 내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불식시켜 주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나머지 classmates들이 다 하는 것을 보면 여기서 크게 다칠 것도 없고, 내 수준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다리로 전혀 추진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으니 다리로 바닥을 차라고 했다. 그러면 물이 너를 받아줄 거라는, 아름다운 비유적 표현도 잊지 않았다 (water will catch you!). 나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무언가 내 마음속에서 두려움의 허리를 단단하게 끌어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계속 수영장 벽 끄트머리에서 배로 물을 치는 꼴을 보던 코치가 말했다 (대체 몇 번째인가...!). 내가 다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차라리 무릎을 바닥에 굽혀서 시작하지 말고 온전히 일어서서 뒷다리로 땅을 박차듯이 물로 뛰어내리라고. 그렇지만 무릎을 일으켜 세운 높이에서 물을 내려다보면 알 수 없는 거리낌과 주저함이 몰려왔다. 번지점프를 할 때 머뭇거릴수록 더 뛰기 힘들어진다고 했는데, 딱 그 마음이었다. 배치기를 할 것 같아 두려운 건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을 만큼 물이 깊다는 건 알 텐데, 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겁쟁이로 만든 것인가. 방향을 잘못 잡아 수영장 측면 벽에 머리를 부딪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간간히 들었다. 사실 그렇게 하려면 처음 시작부터 조준점을 그쪽으로 잡아야 할 테니, 정면을 보고 입수한다면 측면에 머리를 부딪히기 거의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자세를 잡고 오래 서 있을수록 오히려 몸에 힘이 들어가서 다리가 미세하게 후들거렸다. 푱! 하고 뛰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수영장 밖 출발지점에서는 그 한 걸음, 정말 그 딱 한 걸음이 어려웠다. 눈을 감고 뛰면 오히려 부상의 위험이 커질 것 같아 눈을 부릅떴다. 아아, 안 된다. 내 발바닥에 누가 엿을 발라서 바닥에 붙여두었나 보다.


내면의 나와 엄청난 갈등을 겪던 날 지켜보던 코치는 지상에서 할 수 있는 훈련을 알려주겠단다. 벽을 보고 선 채로 물구나무서기 직전까지의 자세를 연습하랬다. 두 다리가 바닥에서 떨어질 필요는 없지만, 한 다리로 바닥을 차면서 추진력을 얻어 두 손은 땅을 짚고, 머리와 상체는 숙이고, 바닥을 찬 다리가 하늘을 향해 뻗는 자세였다. 머리가 바닥을 향해 있으면서 몸의 중심점이 뒤집히는 느낌을 익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아오 씨, 

원래도 뻣뻣하기 그지없는 몸이라 서 있거나 누워 있을 때 말고는 상체와 하체가 아름다운 일직선을 이루지 못한다. 당연히 땅 짚고 옆돌기 같은 건 못한다.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하루에도 12번 넘게 옆돌기를 하는 걸 보고 동경만 했지 차마 할 엄두를 못 냈다. 머리가 심장보다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은 나에게 대단히 큰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때 옆돌기를 마스터하지 못해서 오늘 내가 수영장 구석탱이 벽에서 고통을 겪는구나. 조기교육의 절실함을 구구절절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 혼자 벽 보고 한 다리를 쩍쩍 들어 하늘로 보내고 있자니, 사타구니 근육이 미세하게 떨린다. 머리와 상체를 숙이면 저 멀리 diving deck에 올라가 있는 classmates들의 뒤집힌 모습이 내 다리사이로 보인다. 까아꿍.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 뜀틀을 하면서 늘 뜀틀을 넘지 못하고 그 위에 안착하던 내가 생각났다. 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구 실기시험을 치르면서 공을 컨트롤하지 못해 이리저리 뻥뻥 날려대던 내가 생각났다. 실기시험 점수 잘 받고 싶어서 체육시간마다 연습했는데, 그래서 팔목 언저리가 부었는데, 그래도 시험날엔 만점 기준인 20개인가 30개인가를 넘기지 못했다. 너무 아쉽다고 선생님을 졸라 기회를 한 번 더 얻었지만, 그래도 못하긴 매 한 가지였다. 잊고 있었다. 나는 운동신경이 별로 없는 편이었지. 그래도 어떻게 수영을 했네. 내 몸뚱아리. 고생이 많다. 


혼자 벌서는 것 마냥 하늘로 끝도 없이 쳐들어 올리던 다리에 쥐가 나기 직전, 코치가 다가왔다. 

"뛰어 볼래?(Ready to dive?)"

내 몸이 시소라도 된 마냥, 머리를 허리 아래로 보냈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니 조금 맛탱이가 갔나 보다. 출발 지점에 서서 자세를 잡자마자 그냥 물로 꾀꼬닥 처박혔다. 정신줄을 놓고 다시 올라와서 또 물로 처박혔다. 이번엔 조금 미끄러지기까지 했는데 코치가 말했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제일 나은걸!(the best from you!)" 

실수가 베스트라니 민망해라. 아무래도 물구나무서기 같은 연습을 하면서 머리로 피가 너무 많이 몰린 것이 틀림없다. 공포심이고 나발이고 주저 없이 물 밖에 나오자마자 다시 출발점에서 자세를 잡았다. 수업 종료 4분 전. 보충수업반 학생처럼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하던 나에게, classmates들이 조용한 응원을 보내주며 입수를 권했다. 꾸준히 나의 배치기를 보더니 연민이 생겼나 보다. 


수업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코치는 오늘 훈련으로 다이빙이 조금이라도 덜 무서워졌다면 그 자체로 성과가 있다고 (improvement) 말했다. 나도, 비록 diving deck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입수가 조금 덜 무섭게 다가온 사실에 집중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개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래된 문제들은 어쩌면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계속 그 '문제'의 수명이 연장되는 것일 수도 있다. 나 역시 60분 내내 분명 뱃가죽은 많이 아팠지만 정작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1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희생된 뱃가죽이 들으면 억울해할 소리다.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봤다면 이해가 빨랐을 텐데 (수영장 내에서는 privacy의 문제로 촬영이 불가능하다). 수업 내내 <너굴이의 배치기쇼>를 몇 칸 떨어진 레인에서 지켜본 짝꿍이 만면에 꾸러기스러운 표정을 잔뜩 묻히고 나에게 다가왔다. 무릎도 뱃가죽도도 눈탱이도 조금씩 욱신거림을 느끼며 그의 개구쟁이 입이 서서히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너 왜 자꾸 물로 쇽- 하고 떨어지냐 ㅋㅋ"


아... 그랬다. 슝-이어야 했는데, 쇽-이었구나. 

바닥을 딛는 다리에서 추진력을 얻어 폴짝 뛰면 포물선을 그리며 입수하게 되는데, 나는 물 밖에서 자세를 잡은 후 그저 물로 (굴러) 떨어졌던 것이다. 배치기가 아니라 얼굴치기를 해도 할 말 없는 자세였다. 실제로 추진력을 얻어야 하는 다리의 무릎을 수영장 벽 끄트머리에 여러 번 찧어 피멍이 들었다. 벽과 거리가 충분히 벌어지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짝꿍은 여전히 키득 웃으며 조금만 더 가까이 떨어졌다면 벽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저렇게 유선형을 그리며 물에 '뛰어'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저 검은 화살표의 궤적처럼 물에 쇽- 하고 그저 떨어졌다. 또르륵... 출처: WikiHow


나는 왜 '슝-'을 하지 못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무서웠으니까. 딱히 무서울 것이 없다고 코치가 말해주는데도, 내 눈앞에서 수영 실력 고만고만한 사람이 셋이나 잘도 '슝-'을 하는데도, 내 발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무거웠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포기하고 샌드위치를 입으로 욱여넣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 진짜 나이 들었네."

물에 쇽- 하고 떨어진다고 놀리던 짝꿍이 쳐다본다.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진다더니, 내가 겁이 많아졌네." 

"지킬 것이 많아서 그렇지."


글쎄, 지킬 것이 뭐 그렇게 많은가?

갸우뚱했지만, 내 몸도 내가 지켜야 할 것에 해당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었다. 

언젠가부터 사고의 위험성에 관한 엄마의 말이 자주 머릿속에서 울린다. 사고는 한순간이지만 후유증은 영원하거나 매우 오래간다는 그 말. 덤벙거리며 다니다가 이리저리 찢어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헐레벌떡 뛰다가 두꺼운 유리창에 어떻게 부딪혔는지 새끼손가락 마디가 1센티가량 찢어지기도 했다. 여행용 가방이 발등을 찧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생때같은 엄지발톱이 빠진 적도 있었다. 일상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보행과 각종 신체동작에서 발톱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 발톱은 약 10년 동안 빠졌다 새로 났다를 반복했고 상처가 커서인지 발톱 모양도 울퉁불퉁 예쁘지 않다. 더 이상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자리 잡은 것은 불과 2-3년 전이다. 오밤중에 화장실을 가다가 자기 집 거실에서 여행용 가방에 걸려 넘어진 엄마는 대퇴골 골절과 함께 2차례에 걸친 수술을 겪어야 했다. 회복과정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이, 대수술의 후유증도 나이 든 엄마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강처럼 작용했다. 의사도 잘 모르겠다는 질환이 내 몸에 있다고 하니, 살면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증상이 생기면 모두 그 '질환' 때문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정상적인 몸이었다면 어느 정도로 불편했을지 나는 알 길이 없으니, 자그마한 일에도 심리적으로 (잠시나마) 절절매게 된다. 내 한계를 모르고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에 박자 맞춰 운동하다가 어디 하나 삐끗했을 때, 그 후유증은 길고도 길었다. 낫지도 않을 거면서 단지 증상 완화만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그렇게, 그렇게, 내 역치는 점점 낮아졌나 보다. 아니면, 원래 겁이 많은데 센 척하느라 숨기고 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 쫄보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조금 쫄보였는데 자기가 쫄보인지 잘 모르는, 뭐 그런.


모르긴 몰라도 쫄보는 나타나는 시간, 장소, 상황에 규칙이 없나 보다. 한 때는 번지점프도 씩씩하게 했었는데, 이제는 Six Flags 놀이기구 탑승 영상만 봐도 손바닥에 땀이 송골 올라온다. 작년 여름에는 캐나다에서 가장 빠르다는 Zip Line도 탔었는데, 올여름은 whale watching 가다가 파도 따라 넘실대는 배 위에서 과호흡을 맞이했다. 


쫄보가 미리 언질이라도 좀 주고 나타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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