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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Nov 03. 2024

아니, 접영이 더 힘드네요

Halloween 특집이래요

핼러윈 장식과 복장으로 넘쳐나는 캠퍼스를 구경하다 보니, 한 주가 후루룩 지나갔고 훈련날이 다가왔다.


지난주 배영 주간에는 강습 말미부터 어깨가 뻐근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틀 정도 voltaren (덧: 근육통, 관절통, 염좌에 쓰는 바르는 소염진통제)과 테이핑 신세를 졌다 (테이핑 뜯어내다 살갗이 같이 뜯어진 것은 핼러윈 서프라이즈인가...!). 배영만 했다 하면 오른팔을 들어 올리기 힘들거나 오른쪽 어깨가 과하게 뻐근한데, 이건 또 어떻게 고쳐야 하나. 분명 건강하자고 하는 운동인데 언젠가부터 수영 갔다, 피지오 갔다, 수영 갔다, 피지오 갔다, 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피지오 테라피스트가 이렇게 자주 올 거면 수영을 그만두는 게 낫지 않냐, 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 아니구나, 얘네는 그런 말을 하는 종족이 아니구나. 


친애하는 피지오 선생은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provincial-level 수영선수였다고 했다. 내가 하는 운동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테다. 실제로 수영 동작에 대해서도 가끔 조언을 해 준다. 얼마 전엔 삔 발목 치료를 받다가 넌지시 물어봤다. 


"너는 수영하다 다치면 어떻게 했어?"

"응? 나? 아... 글쎄다...? 근데 나는 그때 어렸잖아."

"ㅠㅠ"


그렇다. 젊음은 부상도 피해 가는 무적과 같은 존재. 

수영장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그런 존재들. 선수 훈련 시간에는 아예 레인 몇 개를 통째로 배정해서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늘 놀랍다. 누가 물 밑에서 그들을 밀어주기라도 하듯 수면 위로 솟구치는 접영과, 모터보트 뒷 꽁무니에서나 볼법한 물보라를 자유형 발차기로만 만들어낸다. 50m 레인에서조차 팔 몇 번 저으면 금세 끝과 끝을 오가는 존재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 아직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이라 몸이 참 가벼웠던 기억이 난다.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니 진도 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부모님의 출근 시간 때문에 강제 새벽반 수영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강습생 중 미성년자는 나뿐이었다 (가끔 아빠 따라 강습받으러 온 다른 소년도 있었으나 1-2달 만에 사라졌다). 우람한 성인 남성을 포함하여 각양각색의 체격과 체력을 가진 강습생이 있었지만 다들 나 혹은 그 소년의 가벼움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체격이 크고 힘이 좋아야 물을 잘 잡고 밀어낼 것 같지만(이것도 맞다), 물에서는 일단 잘 떠야 한다. 흔히 성인 남성보다 성인 여성이 물에 더 잘 뜬다고 하는데, 그건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근육량이 많고 체지방률이 낮아서 그렇다. 실제로 주변에 사이클링, 클라이밍 등을 잘하는 남성들도 수영장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그들이 수영을 못해서라기보다 물에 잘 뜨지 않는 조건(aka. 무거워)을 갖춰서 그렇다고 봐야 한다. 물에 뜨는 것으로만 따지면 체지방률이 남성보다 높은 성인 여성 혹은 아예 몸이 가벼운 청소년이 유리한 것이다. 


물에 잘 뜨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몸을 띄우려고 킥을 아주 열심히 차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체력을 아낄 수 있으며, 같은 동작을 해도 좀 더 쉽게 물을 탈 수 있다. 수영은 결국 기록 싸움이고, 속도는 물을 얼마나 잘 타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이 운동에서 물타기는 매우 중요하다. 


모르긴 몰라도, 2차 성징이 오기 전의 내 몸이 지금보다 훨씬 더 물을 잘 탔던 것 같다. 물에서 저항을 가장 많이 받는 영법 - 접영 - 을 할 때면 어김없이 '그때가 좋았지'와 같은 과거 미화에 빠진다. 실제로 접영을 그렇게 잘하지도 않았고 본격적인 테크닉 교정을 하기 전 수영을 중단했기 때문에,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하자니 이력서에 경력을 부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상체가 수면 밖으로 솟구칠 때 힘들지 않았다는 점. 그건 끌어올려야 할 몸이 무겁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물고기처럼 매끈한 유선형이었던 몸은 어른이 되면서 굳을 대로 굳고 굴곡이 생겼다. 삶이 무거운지 내 몸이 무거워서 무거운지 모를 어깨와 허리 그리고 엉덩이를 수면 근처로 띄우려면 여기저기 하찮은 근육을 조금 붙이는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엉덩이가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해 하체 근육을 조금, 굴곡이 생기고 두툼해진 상체가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기 위해 상체 근육을 찔끔 붙여오는 식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근육으로 인한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그저 현상유지만 하면 다행이다. 


부럽다. 

젊디 젊은 그대들과 이전의 (더) 어렸던 내가.  





핼러윈 장식을 머리에 달고 나타난 코치는 제대로 핼러윈 분위기를 내보자며 오늘은 접영을 조져보잔다. 핼러윈과 접영의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아, 오늘 만만치 않겠다'라는 생각은 한다. 뭐, 언제는 만만했던가. 일단 수영 전 고기반찬으로 배 채우고 온 것은 잘한 결정이다. 


접영을 아예 머릿속에서 지운 지 정말 오래되었다.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요통을 늘 달고 살기에 접영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좀 더 솔직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그냥, 힘들어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접영은 다른 영법과 달리 물을 정면에서 맞으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저항이 심하고 가장 많은 에너지가 드는 영법이다. 다른 영법에서보다 코어의 역할이 좀 더 돋보이는 편이고, 상체의 힘이 부족하면 제대로 된 동작을 구사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코어와 하체로 물을 눌러 수면 위로 몸을 띄울 수 있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잘 되지 않으면 과도하게 상체를 세움으로써 허리에 부담을 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접영을 권하지 않는다. 한편, 상체가 수면 밖으로 잘 빠져나오지 못하면 흔히 '만세 접영' 혹은 '살려주세요 접영'이라고 하는 것을 구사하게 되는데, 물 밖에서 보면 흡사 익사 직전의 구출 요청 같아 보여서 그렇게 불린다. 상체, 특히 팔 힘이 약한 경우 수면 아래에서 물을 밀어내기도 버거운데 물 밖에서 팔을 빠르고 힘차게 돌려 앞으로 던질 기력이 없어서 그런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 특히 남성보다 상체 근력이 약한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쓰고 보니, '접영을 못하는 방법'으로 글을 한 편 더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수영을 하면 내가 힘들 때 혹은 힘들기 전 먼저 '힘듦'을 예약하고 원하는 만큼 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조금 덜 힘든 운동, 더 편한 영법을 찾게 된다. 레인에 사람이 많이 몰릴 경우 양팔을 쫙쫙 하늘로 날려 보내야 하는 접영을 하자니 남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서 자유형만 주구장창 했다는 건,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참으로 바람직하고도 선량한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결국은 힘들어서 피한 것이다. 다치는 것도 싫고. 


하지만 코치와 함께라면 피할 길이 없다. 

보드를 잡고 허리와 허벅지의 힘으로만 물을 눌러 돌핀킥을 차는 것부터 시작이다. 발등아 잘 버텨줘,라는 속삭임을 속으로 삼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꿀렁인다. 한 팔 접영을 시킬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의외로 한 팔 접영은 물을 타는 것도 호흡 타이밍을 잡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 물론 왼쪽으로 한 팔 접영을 할 땐 좀 더 멍청함을 느끼게 된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수영에서도 오른팔이 일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오른팔로 물을 잡을 때와 왼팔로 물을 잡을 때 물을 밀어내는 힘에서 차이가 느껴지게 마련이다. 왼팔은 물을 적게 밀어내니 수면 위로 덜 솟구친다. 


인간의 몸은 마치 얇디얇은 와인잔 같이 나약하면서도 끝내주게 적응을 잘하는 기관이다. 

왼팔의 이두와 삼두가 오른팔의 그것보다 덜 발달되어 얇은 대신, 왼쪽 광배는 오른쪽보다 더 활성화가 잘 된다고 느낀다. 사실 광배근 크기의 좌우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내 몸에서 광배라고 불리는 근육이 육안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 해당 근육을 뇌로 느끼고 활성화시키는 과정에서는 왼쪽이 조금 더 잘하고 있는 것 같다. 오른쪽은 이두와 삼두의 힘이 좋다 보니 광배가 개입하기 전 이들이 일을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광배가 조금 얌전하다. 광배만 나오라고 불러봐도 이두랑 삼두랑 어깨랑 같이 나오려고 한다. 반면, 왼팔은 이두와 삼두가 별 볼일 없어 그런지 광배가 일찍 독립심을 길렀다. 이두, 삼두 없이 자기 혼자 잘해보겠다고 한다. 어디 하나 부족하다고 해서 그냥 영원히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역할도 좀 나눠서 하고 도와주면서 결국은 기능을 하게끔 설계된 것이 인간의 몸인가, 싶다. 


Mermaid drill이라는 아주 사람 우스워지는 훈련을 할 때 즈음에는 물을 많이 먹어 배가 부르려고 한다. 두 팔을 차렷 자세로 고정한 채 돌핀킥만으로 전진하는데, 짝수번째 킥 (2번째, 4번째,...)에서 수면으로 올라가 호흡을 해야 한다. 이때 고개를 너무 많이 젖히면 또 목이 아플 수 있으니, 순전히 돌핀킥과 코어의 힘만 활용해서 수면으로 떠올라야 한다. 얼굴이 많이 빠져나올 필요도 없이 턱은 물 속에 조금 잠겨도 된다는데,  뭔가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일단 수면 밖으로 얼굴을 잘 못 내밀겠는데 그 와중에 숨까지 쉬자니 타이밍을 놓쳐 물만 먹는데, 피하지 말고 계속 하라는 코치의 말을 들으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심정이 이럴까' 생각해 봤다. 


이제 full swim으로 다녀오라는데, 이런, 한 팔 접영처럼 스무스하지 않다. 아주 먼 옛날, 물 위를 날아다니던 청새치 너굴이는 어디 갔나 (청새치였던 적이 있는지는 불문에 부치는 것으로...). '살려주세요 접영'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인 것 같은데, 순간 숏핀 (aka. 오리발) 생각이 절실했다. 처절하게 찌질거리고 있을 때 아주 작은 도움만 있으면 이 상황을 타개하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절실함. 


마음을 고쳐 먹었다. 

도움이 있을지언정, 결국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찌질해질 수 있다는 걸 이제 알 나이가 되지 않았나. 벽에 걸린 전자시계의 앞자리가 '5'에서 '6'으로 바뀌자, 코치는 오늘의 훈련을 종료했다. 이제 타인의 수영을 방해할까 저어하는 선량한 시민의 마음가짐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숏핀이든 뭐든 가져와서 일단 연습을 좀 해야지, 쪽팔려서 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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