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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굴이 Nov 15. 2024

IM 주간

부작용: 식욕, 수면욕 터짐

혼자 수영 연습을 하러 가면 수영장에서 종종 코치를 만난다. 

본인도 아직 현역 선수이기 때문에 정규 연습을 위해 하루 3번 수영장을 온다고 했다. 새벽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저녁에 한 번. 한 번에 90분가량 훈련하고 그 외의 시간은 주로 먹고 잔다고 했다. 난 그저 나랑 체격 조건도 비슷한데 어깨는 짝꿍 어깨와 비슷한 이 코치가 존경스럽다. 


다시 우리 클럽 훈련으로 돌아와서...

코치는 지지난주 접영까지 (일단) 가르쳤으니 이제 제대로 운동량 좀 빼 보자고 작정한 것이 분명하다.  




지난주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하더니 IM을 주구장창 시켰다 (IM: Individual Medley, 개인혼영의 약자. 순서는 접영, 배영, 평영, 그리고 자유형). 스무스한 IM을 위해서는 한 영법에서 다른 영법으로 넘어가는 턴을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라, 오픈턴 (Open turn, 배영을 제외한 모든 영법에서 사용 가능, 접영 -> 평영, 평영 -> 자유형, 등)과 배영 턴 & 바사로킥 (Vasallo kick)을 계속 연습시켰다. 


Open turnhttps://www.youtube.com/shorts/p5awKUBCNCM

덧: "Elbow your brother"이 참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ㅎㅎ


오픈턴은 늘 사용하는 턴이었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그동안은 정교함을 포기하고 편안함을 얻기 위한 턴이었다. 즉, 빠르고 힘찬 턴이 아니라, 산소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마시기 위해 물 밖에 머무르는 시간을 길게 잡는... 한 번 수면으로 떠오르면 한참 뒤에야 물 속으로 돌아가는, 뭐, 고래의 호흡 같은 것이랄까... 하지만 코치와 함께라면 요령 부릴 틈이 없지. 오른손으로 벽을 살짝 밀고, 무릎은 빨리 가슴께로 가져오되 물이 새어나가지 않게 붙이고, 왼팔이 물 밑에서 균형을 잡는 동안 오른팔은 수면 속으로 빠르게 들어와야 하며, 그 동안 두 다리는 벽을 박차고 어뢰처럼 나아가야 한다. 재빨리 스트림라인을 갖춰서 돌핀킥으로 나가는 것이 핵심. 



Vasallo Kickhttps://www.youtube.com/shorts/eczcaPLaKXQ  

바사로 킥은 처음 해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지난번에도 간략히 언급했지만, 배영은 얼굴이 수면 밖으로 나와있어 편할 것 같지만 은근히 호흡 조절법이 어려운 영법이다. 오히려 잠시 정신줄을 놓으면 삽시간에 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바사로 킥 역시 호흡 조절이 관건이었다. 다른 영법으로 오다가 벽이 가까워지면 두 팔이 나란히 앞을 향할 수 있도록 한다. 두 손으로 벽을 밀어내면서 순식간에 무릎을 가슴께로 가져와 물에 눕는 자세를 만든다. 그 와중에 양팔은 뒤통수 뒤에서 스트림라인 잡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수면 밖으로 잠시 인사 나왔던 얼굴은 천장을 본 상태로 잠수한다. 물 밑에서 누워서 돌핀킥을 차면서 코로 숨을 계속 계속 뿜어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야 한다. 배영은 턴조차 한 차원 높은 호흡 조절 능력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턴만 연습하면 뭔가가 되는 것 같다가도, IM을 하면서 실제로 수영과 턴을 접목시키면 역시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다짐이 수영장 밑바닥에서 올라온다. 맞다. 매번 잘못해서 매우 추해지거나, 어설프거나, 물을 먹거나 한다는 뜻이다. 




이번주

점점 옥죄어 오는 데드라인의 압박으로 이번주는 수영 훈련을 건너뛸까 고민했다. 

수영 훈련 직후 온라인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고, 훈련이 빡센 경우 연구실에 있어봤자 졸음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받아서 (자기한테) 짜증내거나 칭얼대지 말고 훈련받고 와서 기절하라는 짝꿍의 간곡한 부탁(?)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수영장으로 나선다. 


200m warm-up을 시켜놓고, 코치는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끊임없이 적는다. 처음으로 화이트보드의 시작과 끝이 문자로 가득한 것 같다. 물에서 어미새를 올려다보는 새끼새와 같은 강습생을 내려다보며, 코치는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내가 주문하는 건 다 잘해왔으니까 (진짜??), 오늘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이게 이 클럽에서 내가 목표했던 최종 훈련 레시피야."


빼곡히 적힌 훈련량은 가히 수영 후에 폭식하거나 기절하기 딱 좋았다. 

200m, wp (warm-up),

IM kick 25m*4 (해석: 접/배/평/자유형의 킥만 25미터씩), 20R (20 second rest),

IM kick fast (25m*4), 50@ (한 킥과 휴식을 50초에 끝내기)

IM spin 50m*3: bf -> bk, bk -> br, br -> fr (접영에서 배영, 배영에서 평영, 평영에서 자유형),

IM 100m (접배평자, 쉬지 말고)

IM spin 50m*3

IM 75m (접배평), 25m choice of swim (보통 힘들어서 자유형으로 옴)

100m choice of swim (보통 힘들어서 자유형으로 겨우 옴)


딱 1km에 맞춰서 훈련량을 짜 넣은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갈수록 체력이 달려서 1-2개 정도는 빼먹었다. 마지막 자유형은 6비트 킥도 힘들어서 2비트 킥으로 겨우 왔다. 나는 아직 힘빼는 법이 몸에 잘 익지 않아서 자유형으로도 훈련을 1km 하면 마친 후 약간 졸리다. 그런데 이걸 IM으로 하자니 정말 '이 짓을 하루라도 어릴 때 할 걸'이라는 생각이 굴뚝같다. 마치고 인터뷰도 해야 하고 글도 왕창 써야 하니까, 하면서 스스로랑 또 조금 타협을 한다. 타협은 할 땐 좋지만 하고 나면 기분이 별로다. 그래도 다치지 않아야 한다는데에 더 방점을 둬 본다. 


접영에 진심인 한 수영메이트는 코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접영 주간을 예고했을 때, 자기 접영 못 한다고 울상을 짓던 그였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나 보다. 내 접영 실력도 하찮지만 그래도 아주 못하던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 접영을 처음 배우는 그를 보면서 느낀다. 남녀의 체격조건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나보다 최소 15cm 이상은 클 테니 발 크기도 월등히 클 테고, 하체 및 코어 힘도 훨씬 좋을 것이다. 그동안 개인 연습에서 자유형 킥 훈련을 빠짐없이 했던 나는, 이 친구보다 뒤에서 출발해 먼저 도착점에 들어왔다. 하지만 접영 킥으로는 성별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접영 드릴을 개인 훈련 프로그램에 넣자고 다짐한다. 


우리의 허우적과 허기짐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코치는 남은 2회 동안 어떤 내용을 다루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다. 접영에 꽂힌 메이트께서 플립턴 (flip turn, 물속에서 회전하는 턴)을 외쳤고, 나도 찬성표를 던졌다. 코치는 내친김에 dive start도 해보자고 한다. 슬쩍 나를 바라보며, "지난번에 다이브 잘 못했던 것 아는데, 그래도 deck을 사용하는 건 훈련 때뿐이니, 한 번 해보자."라는 말을 덧붙이며. 플립턴과 같은 날 다룰 예정이라고 하니, 지난번처럼 1시간 내내 굴욕을 겪진 않아도 되겠지. 아니지, 혹시 모르잖아? 내 실력이 좀 나아졌을지? (Dive를 못해서 따로 연습하다 햄스트링 대박 뭉친 썰: https://brunch.co.kr/@boyish-aaron/75)


수영 후 배는 고프고, 시간은 빠듯하고, Body Energy에서 프로틴 때려 넣은 스무디를 사 먹었다. 

#몸매 관리 #트레이닝에 진심임 #오늘도 운동 완료 #프로틴 섭취, 이런 거 전혀 아니고, 마땅히 먹고 힘낼 것이 없어서 먹었다. 새로운 맛에 도전했는데, 마치 에그마요샌드위치의 속 재료에 피클과 물을 더 추가한 맛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이상한 맛이었지만 다 먹었다. 인터뷰하면서 꼬르륵거릴 순 없으니까. 



덧: 인터뷰 내내 화면에 잡힌 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참고로 실내 히터는 off 상태. 그리고 집에서 초저녁부터 내리 3시간을 잤다. 돌아버리겠네. 할 일도 많은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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