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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하고 싶다는 말의 진짜 의미

당신은 정말로 이혼하고 싶은 게 아니다

by 애기곰

오래 전 (비밀) 이야기.


살고 싶지 않은 날이 있었다.

이거 저거 다 싫은 날이 있었다.

살아서 뭐 하나 싶은 날이 있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무료 심리 상담소를 찾아주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예약까지 해두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한 내 인생 첫 상담선생님은 나에게 다짜고짜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자살방지서약서.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은 절대 자살하지 않겠다는 내용과, 그런 생각이 들면 곧장 전화하라는 내용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사인했다.




선생님과 독대한 작은 방에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살고 싶지가 않다고, 그러니 지금 이 시간이 별로 의미 없을 거라고 말했다. 영락없이 삶을 체념한 사람이었다.


살고 싶지가 않다는 나의 말에 선생님의 대답.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어서 그래요.


"너무도 잘 살고 싶어서, 도저히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고 발버둥 치는 거예요.

OO씨는 정말로 죽고 싶은 게 아니예요."


생기 없던 나의 눈동자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흘러나왔다.


맞다.

나 엄청 잘 살고 싶었지.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는데 잘 안 됐지.


이 시간이 의미 없을 거라던 나의 말이 무색하게 나는 평생을 가져갈 한 마디를 얻고 말았다.




지금은 이 말을 결혼에 적용하며 산다.


이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잘 살고 싶어서 그래요.


잘 살고 싶어서 상대와 결혼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서 아예 삶을 리셋해버리고 싶은 마음.

'이혼하고 싶다'는 말의 이면에서 그 마음을 찾았다.


너와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

너를 더 사랑해보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이 분명히 거기 있었다.




나는 잘 살고 싶었고, 남편과 더 사랑하며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을 읽어준 상담선생님과 남편에게 고맙다.


한편, 이 글을 읽을 '이혼'을 품고 있는 당신.

오죽했으면 이혼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품었을까, 쉬이 품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닐 텐데...

마음이 아려온다.


다만 힘주어 말하고 싶은 건,

어쩌면 당신은 정말 이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그 사람과 잘 살고 싶다.

그러려고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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