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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에 튀겨 죽일 놈은 누구인가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중에 대하여

by 애기곰

남편이 어른들 사이에서 들은 이야기.


이 분의 딸이 꽤 오랜 세월 별거 중이라고 했다.

왕년에 딸사위 부부가 함께 고깃집을 크게 한 적이 있는데 이후에 시작한 다른 장사가 잘되지 않았고, 고깃집 이후로는 사위의 벌이가 시원찮았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딸이 나가 장사를 시작했고, 속상한 마음에 사위를 향해 '똥물에 튀겨 죽일 놈'이라고 했다고.

남편이 어린 시절에 들은 말인데, 잊히지 않았는지 언젠가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나 역시 오래전 한 번 들었음에도 잊히지 않는다.

일단 똥물을 튀기는 것 자체가 상상 이상이다. 농도며, 끓는점이며...


다만 상상할 수 있는 건, 당시 사회에서 돈을 못 벌어 여자를 고생시키는 남자에 대해 슬프게도 이런 무시무시한 말이 오갔다는 것 정도.




무직 남편 부양 10년.

다행히 똥물은 준비되지 않았고 튀겨 죽이는 일은 더더욱 없었지만, 똥물의 끓는점을 가늠할 정도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10년을 보냈다.


때로는 울며, 하지만 다시 의연해지며

때로는 웃으며, 하지만 또 침울해지며

그렇게 10년을 침잠했다.


내가 쓴 물에 다져지고 질겨질 동안, 딸의 시간을 저 멀리서 지켜봐 준 내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슬픔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나는 가끔 상상했다. 시골에 계신 분들이 대뜸 올라와 남편 혼구녕을 내주는 장면을. 내 딸을 이렇게 고생시켜서 어디 쓰겄냐고, 눈물 콧물 쏙 빼주는 순간을.


나의 바람과 달리, 나의 부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10년 간 딱 한 번, 격한 감정으로 부모님께 전화한 날이 있었는데 그때 아빠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한 마디 하셨다.


딸, 많이 힘들지?
그래도 O서방이 더 힘들겨.


그때는 참 야속하기만 했던 말인데, 아직까지도 이 한 마디가 떠나질 않는다. 사람에 대한 예의, 존재에 대한 존중을 그때 배웠다.




재작년에 쌍둥이를 낳고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하고 있다.

다른 돌봄 인력이 마땅치 않아, 당시 비정규직 일자리를 잡은 남편이 1년 만에 그만두고 육아와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


부부가 신생아 둘을 보려니 공부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남편은 그해 시험에 낙방했는데,


O서방 떨어졌어?
다행이다. 같이 쌍둥이 볼 수 있겠네.


딸의 육아를 도와줄 수 없어 늘 미안하다고 말해왔던 (장애가 있는) 엄마는, 사위의 무직 기간이 한 해 더 연장된다는 소식에 순수하게 기뻐했다.


엄마의 말처럼 무척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아기 둘의 성장을 직관하는 '행운'을 함께 누리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남편의 (마지막이 될) 시험이 성큼 다가왔다.

사위가 이번에는 꼭 붙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하자, 아빠가 껄껄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험에 붙으면 좋지.
떨어지면 더 좋구!


내가 10년 걸려서 깨달은 것을 이미 알고 계셨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알 수 없는 낙관으로 답했다.


상황과 관계없이 긍정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

사람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예의.

그리고 끝 간 데 없는 신뢰.


그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내 아이들에게도 기억될 만큼.


얘들아,

잘 되면 좋지, 잘 안 되면 더 좋구!



p.s.1

세상에 똥물에 튀겨 죽일 놈은 따로 있다.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는 가당치 않다.



p.s.2

10년간 남편의 가치를 한 톨도 깎지 않으셨던 양가 부모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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