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지속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임용고시 합격 후 첫 발령을 받은 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을 맡았다.
우리 학년은 4-1반부터 4-6반 까지 여섯 학급이 있었는데, 나는 4-2반에 배정되었다.
지금이라면 반 배정은 제비 뽑기로 하겠지만, 당시 내가 4-2반을 맡게 된 이유는 딱 하나,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위해서였다. 2반 교실이 위치상 교사 회의실에서 가장 가까웠고, '막내 교사가 커피물을 담당해야 한다'는 모두의 동의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는 아침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는 역할을 1년 동안 수행하게 되었다.
불만은 없었다.
커피 없이 우리는 아이들을 맞이할 수 없었으니까.
평가 문항을 만들 때도, 운동회나 학예회가 있는 날에도, 학부모 상담이 있는 날에도, 교사가 뛸 힘은 커피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결혼 초, 가장 적응이 어려웠던 것은 시댁에서의 하룻밤이었다.
낯선 곳에서 왠지 모를 불편감에 쉬이 잠들지 못했고, 다음 날 아침 뚝딱거리는 도마소리에 헐레벌떡 깼다. 아침을 정해진 시간에 꼭 드셔야 하는 분들이라 비몽사몽으로 상을 차렸고, 평소 아침을 빵 한 조각과 커피로 먹는 나도 꾸역꾸역 밥을 떠 넣었다.
일 년에 몇 번 되지 않는 날이라는 생각에 몇 차례 잘 넘겼지만, 곧 한계가 왔다. 어느 명절을 보낸 후 돌아오는 기차에서 남편에게 '나 시댁에서 커피 마실 시간 한 번만 주면 안 될까' 요청했지만 '부끄러운 줄 알라'는 남편의 싸늘한 목소리에 기차에서 홀로 내린 적도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이 몰아쳤다.
고요히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나의 아침 시간을 어린 쌍둥이가 잡아 삼켰다.
뭐가 뭔지 모를 실체 없는 화가 나를 덮쳤다.
원하지 않았지만, 화는 남편에게도 두둥실 떠 갔다.
정신을 차린 건 오후 세 시, 커피 한 잔이 들려있던 내 손을 바라보고 나서였다. 숨 돌릴 틈이 생기니 어두웠던 마음이 한 톤 밝아졌다. 남편에게 사과해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좋은 어른은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연히 정문정 작가의 한 줄을 발견하고, 책상 위 텀블러를 바라보았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내 삶의 장치가 이거였구나, 커피를 마시는 잠깐의 여유는 내가 좋은 어른이자 좋은 아내가 되도록 돕는구나, 새삼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좋은 교사가 되려고 커피를 마셨다.
좋은 아내가 되려고 커피를 마신다.
마음은 의외로 호떡 뒤집듯 뒤집어진다.
좋은 호떡 뒤집개만 알고 있다면.
커피든 치킨이든 산책이든 음악이든, 하나쯤은 '나만의 좋은 기분 유지 장치'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결혼, 한두해하고 말 것 아니니까, 생각보다 오래 지속 가능해야 하니까, 그 장치를 여럿 만들어두는 것도 좋겠다.
결혼과 함께 내 삶의 좋은 장치도 늘어간다.
p.s.1
지금의 남편은 그날의 자신이 몹시 부끄럽다고.
어딜 가나 아내의 커피를 확보해 주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p.s.2
'삶의 장치'라는 말은 정지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에서 차용했다.
가라앉을 것 같은 날일수록, 스스로가 가라앉지 않게 다시 수면 위로 자신을 띄워 올릴 수 있는 삶의 장치들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