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넘어 소신 육아' 프롤로그
쌍둥이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내가 한 일,
남편에게 육아 퇴직을 권한 일.
장애가 있는 친정 엄마, 치매 시할아버지를 모시는 시부모님.
이쪽저쪽 열심히 주위를 둘러봐도 도움받을 손길이 마땅치 않아 보였다.
사실 남편은 결혼 후 3년 만에 (나의 권유로) 퇴사를 했고, 재취업까지 약 8년간 일자리가 없었다.
간신히 들어간 곳은 비정규직이었지만 남편이 마음에 들어 하는 직장이었고, 원하기만 한다면 꽤 오랜 기간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다시 한번 퇴사를 권했다.
우리 아기니까 우리가 키워보자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모르는 곳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2년이 지나, 어느덧 남편의 무직 10년을 채운 지금.
부부가 참 어려웠던 시기였음에도, 이 시간 동안 마음과 삶이 크게 다듬어졌다.
쌍둥이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가끔씩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남편의 무직 10년 동안, 다듬어진 것이 있다면 바로 '돈에 대한 시선'이다.
나의 외벌이로 가정을 꾸리면서 삶이 심플해졌고, 점점 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 '행복 유지비'가 별로 들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의 역할도 컸다.
쌍둥이에게 뭘 해줄까 보다 뭘 안 해줄까(결핍의 미), 그래서 더 좋은 건 뭘까를 고민하는 과정 역시 부모 된 우리를 더 소신 있게 만들었다.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시선에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는다
네 나이면 결혼해야지
이제 아이도 낳고, 집도 사야지
이제 더 큰 평수로 넓혀가야지
남자라면 응당 돈을 벌어와야지
여자라면 당연히 아기를 키워야지
우리를 압박하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니, 세상에는 '이래야 하는 것'도 없고 '원래 그런 것'도 없었다. 내 안의 욕망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도 잊지 않았는데, 이 조차 순수한 나의 꿈보다는 사회와 통념이 준 왜곡된 신념인 경우가 많았다.
결혼 후 3년이 안 됐을 무렵, 남편에게 퇴사를 장려하고(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정도의 업무 강도), 쌍둥이 육아를 함께하자고 또 한 번 퇴사를 권한 것도 나와 그를 알기 때문이었다.
이혜림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리 부부는 남들 기준이 아니라
우리 부부만의 기준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도 나는 이렇게 산다.
2년간 남편과 함께 아기 둘을 키우며, 살아보고 알았다. 이 삶이 진짜라는 것을.
대단히 화려한 삶은 아니지만 소박한 멋이 있고, 결핍이 주는 매력도 담뿍 느끼고 있다. 내 마음과 삶이 간소해지니 의외로 저축도 꽤 하고 있으며, 남편과의 사랑도 커졌으면 커졌지 결코 작아지지 않았다. 쌍둥이 양육의 기쁨과 성장도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번 사는 인생, 세밀하게 삶을 다듬어가는 이야기,
삶에서 욕심을 거두고 알맹이만 남기는 이야기.
남편과 함께 아기들을 마음껏 사랑할 시절을 누리는 이야기.
다른 이들 말고, 우리의 삶을 써 내려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가족과 진하게 함께한 시간,
저소비 생활자의 미니멀 육아 이야기,
원하는 삶의 모양을 만들어가는 우리만의 소신을 이 책에 담아봤다.
p.s.
육아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지 않고,
흔쾌히 육아 퇴직을 결정해 준 남편,
육아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존경과 감사를 보냅니다.
::스카이 나온 남자를 10년이나 부양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