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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카야 Dec 19. 2023

영알못 K-아줌마
캐나다에서 후반전을 시작하다 #2

당장 컬리지 입학을 위해 매일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근처 library에서 IELTS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같은 해 그나마 입학이 어렵지 않은 2년제 컬리지 Business 과에 입학했다. 당시 Business의 b자도 몰랐지만 그냥 졸업장이나 따자라는 생각으로 점수에 맞추어 들어갔다.  

한국에서 대학다닐때 징그럽게 공부 안해 1년이나 더 다니고 겨우 졸업했던 내가 20년만에 캐나다에서 다시 대학생이 된것이다.

입학하고 보니 과아이들은 다 내 아들 또래였고 강사들도 심지어 나보다 젊었다. 아침에 배가 아파도 어제저녁에 뭘 먹었는지 생각이 안 나는 할매 기억력과 때맞춰 시작해 준 노안, 뼛속까지 아날로그 세대인 나에게 모든 과제와 시험이 컴퓨터로 진행되는 수업 모든것이 영어만큼이나 나를 힘들게했다.

뭔놈의 group work은 그리 많은지...영어도 어눌하고 나이도 많은 동양인 아줌마랑 그룹이라도 되면 은근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들을 애써 못본체 해야했다. 

대학 수능에서 수학은 찍어 반타작한 나인데 의외로 accounting 수업이 너무 재미있고 성적도 좋았다. 아마도 다 모르는 영어 일색인데 숫자가 나오니 그나마 반갑고 해볼만 했던거같다. 

밤늦게까지 과제와 씨름을 하면서 내가 뭔 영광을 보겠다고 이 나이에 이 고생하며 공부를 해야 하는지 때려치우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당장 때려치워도 딱히 할 일이 없는 나는 다음 날도 여전히 얼굴과 매치 안 되는 배낭을 들쳐메고 학교로 향했다. '앞으로의 20년을 위해 2년만 고생하자' 나 자신에게 주문을 외우며...

하지만 나에겐 이게 내 마지막 기회라는 그들에게 없는 절심함이 있었다,그리고 내 인생처음으로 장학금이란걸 받아보았다.


그렇게 1학년을 끝나고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summer student(인턴) 과정을 신청하고 학교에서 마련해 준 인터뷰들을 보기 시작했다. 같이 신청한 다른 아이들은 다 여러 회사와 은행에 합격해 여름 동안 일할 곳이 정해졌는데 나만 계속 인터뷰에 떨어졌다. 인턴 과정을 위한 수업료도 내고 수업도 이수했는데 일할 곳이 정해지지 않자 학교도 난처해했고 나도 그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창피해 10년 동안 끊었던 담배가 다시 생각날 정도였다. 학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우리 학교 finance 부서에 나를 위한 자리를 억지로? 급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출근한 첫날, 파릇파릇한 대학생을 기대했는데 이건 뭐 아줌마가 summer student라고 오자 팀장도 팀원들도 당황한 눈치였지만 어쩌라고...

그때는 모든 서류가 지금처럼 전산화되기 전이고 때마침 회계감사기간이라 나는 인턴 4달 동안 서류 정리와 회계 감사를 위한 서류 찾는 일을 해야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끝이 안 보이는 서류 목록을 들고 하루 종일 어두침침한 자료실에서 서류를 찾아 팀장 책상에 서류 더미를 갖다 놓은 일이 내 일이었다. 한국에서 100명도 넘는 직원들을 부리던 내가 여기 와서 왜 이런 허드렛일이나 하는지 문득문득 찾아오는 자괴감에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당시 나보다 다들 어린 나이에 벌써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여유롭고 당당한 그들이 너무 부러웠고  나도 그들처럼 이 직장에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이 시간을 기회로 만들자라고 마음먹고 내가 할수있는 일을 최대한 열심히 했고 그런 나의 열정을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몇번의 인터뷰에서 떨어지다보니 내가 경쟁력이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되었고 이 기회가 나에게 너무나 절실했다. 당시 나의 카톡 프사에 "Survive to the last"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무조건 이 조직에 살아남아야했다.


그렇게 4달의 인턴 과정이 끝나는 날 세상 무뚝뚝한 우리 팀장이 회사 전체메일로 내 도움덕에 올해 회계감사가 그 어느 해보다 수월하게 끝났다며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렇게 나름 뿌듯하게 그해 여름 나의 인턴 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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