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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산일기 Nov 24. 2015

워킹맘과 전업맘, 그 애매한 관계에 대하여


얼마 전, 정부가 전업 주부의 어린이집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일명 ‘맞춤형 보육’ 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는 부모의 맞벌이 여부와 관계없이 영유아들은 누구나 무상으로 어린이집 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발표이후 수많은 전업 주부들은 강한 불만이 잇따랐다. 꼭 일하는 엄마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우는데 수고로움이 클 터인데, 전업주부에게 어린이집 무상 보육 혜택을 줄이는 것은 엄연한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특히 첫째 아래로 동생을 두거나, 출산을 앞두고 있는 경우 도움은 더욱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전업주부들의 입장이 이해되지만, 워킹맘인 나로서는  정부의 새로운 방침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불현듯 1년 반 전, 둘째 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겪은 난감했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만 해도 지금과 같은 어린이집 입소 경쟁은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무상 보육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전업 주부들의 어린이집 이용이 많지 않았다. 특별히 인기 있는 국공립 시설이 아니고서는 일반 어린이집 입소에 큰 불편이 없던 때였다. 그러나 4년 뒤, 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가 되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국공립은 물론이고, 가정식 어린이집 또한 대기는 필수가 되었다. 무상으로 어린이집 이용이 가능해지다보니, 굳이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가정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가장 기가 막힌 건 맞벌이 자녀들을 노골적으로 기피하는 듯한 어린이집의 태도였다. 아무래도 일하는 엄마들보다, 전업주부들이 아이를 맡기는 시간이 짧을 테니, 어린이집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운 좋게도 집 근처의 어린이집에 자리를 얻긴 했으나 당시 나는 전업 주부들에게 상당한 반감을 품었더랬다.실제로  이 무렵 나와 비슷한 처지의 직장 동료들은 모이기만 하면, “전업 주부들이 너도 나도 공짜라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바람에 정작 어린이집 이용이 필요한 우리 같은 워킹맘들이 피해를 본다.”며 툴툴거리기도했다. 이른바 ‘워킹맘 연대’가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정부가 ‘맞춤형 보육’ 방안을 발표한 이후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전업 주부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냉대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맞춤형 보육정책’이 추진되면 전업주부 아이를 받는 어린이집의 경우, 정부의 지원금이 줄어들게 되므로 어린이집에서는 전업주부의 아이의 입소를 차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쯤 되다보니, 정부가 오락가락한 보육 정책으로 워킹맘과 전업맘 사이의 이질감과 적대감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온다. ‘국민 행복 증진’이라는 무상 보육의 취지는 좋지만, 얼마나 꾸준히 시행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과 대비가 부족했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얼마 가지도 못해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정책을 바꿀 거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은 만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엄마들이 워킹맘, 전업맘 편을 나누어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은 씁쓸하기까지 하다.    

 

학부모 모임에서의 ‘워킹맘 수칙’    


첫째 솔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많은 지인들은 내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자녀의 학교생활이 시작되면 엄마들과의 커뮤니티가 매우 중요한데, 전업주부들은 일하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엄마들과의 모임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수칙도 있었다. 첫째, 첫 만남에서는 명함을 주는 일은 금지. 둘째, 가급적 일과 관련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 것. 셋째, 모임의 밥 값, 차 값 등을 계산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나설 것, 등이었다. 

처음으로 가진 반 모임. 나는 지인들이 충고를 새기며 약속 장소를 찾았다. 요즘 일하는 엄마들의 수가 늘었다고는 하나, 솔이 학급 엄마들의 80%이상은 전업 주부였다. 나는 그 어느 자리에서 보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이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왼쪽 가슴팍에 달았다. 엄마들이 각자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나는 내 소개 앞에 으레 붙이는 직장명이나 직위 등은 모두 빼고, 아이의 이름과 성별, 사는 곳을 밝히며 무난한 소개를 마쳤다. 어색한 분위기는 잠시, 엄마들은 자녀들이 같은 반에 속해있다는 공동체 의식 하나로 이내 가까워졌다. 벌써부터 누구누구 엄마 대신, 언니, 동생 하는 친근한 호칭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솔이 반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며, 학교 소식이며, 궁금한 것이 산더미 같았지만 출근 시간에 쫓겨 중간에 일어나야만 했다. 슬슬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리를 뜨려는 데 반 대표 엄마가 뒤를 쫓아오더니 말했다. “솔이 어머니, 제가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 전부 정리해서 따로 공지해 드릴 테니, 걱정 말고 출근하세요.” 입학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첫 번째 반 모임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일어서며 들었던 개운치 못했던 마음이 대표 엄마의 배려 넘치는 말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 실제로 몇 시간 뒤, 반 대표엄마는 모임에서 나온 몇 가지 사항(아이들 생일파티, 정기 모임, 학교 봉사활동 등)들을 정리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반 엄마들이 모두 함께 찍은 단체사진까지 첨부돼 있었다. 비록 그 안에 '솔이 엄마'는 없었지만 그 사실이 전혀 아쉽지 않은 다정하고 고마운 배려였다. 

솔이가 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덧 8개월. 그간 운동회, 소풍, 생일 파티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어졌다. 나는 가급적 모든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일 때문에 부득이 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반 엄마들은 대신 솔이를 잘 챙길 테니 걱정말라는 연락을 보내온다. 심지어 지난 가을 소풍 때에는, 아침에 도시락 쌀 시간이 없으면 대신 싸주겠노라고 나서준 엄마도, 예쁜 컵에 색색의 과일을 담아 솔이 몫으로 챙겨준 엄마도 있었다. 어쩌면 애초에 '워킹맘 수칙'같은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출근할 곳이 있든 없든, 우리는 이미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동지가 아닌가.


가사 노동도 엄연한 일, 모두가 워킹맘.     


나는 더 이상 전업주부들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것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그 어떤 고된 직업보다도 힘들고 어려운 노동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주말동안 아이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진을 빼다가 월요일 출근시간을 기다린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을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은 오늘도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 일부를 희생하고 있다. 결코 '일하기 싫어서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녀들도 워킹맘과 똑같이 치열한 경쟁 속에 학창 시절을 보냈고, 장차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을 테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와 남편을 위해 자기 자신을 접어야 했던 그녀들의 숭고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전업주부'라는 말도 어딘가 어페가 있는 듯하다. 그녀들도 일을 하기 때문이다. 치워도 끝이 없는 청소와 빨래, 식사 준비만 해도 하루가 다 갈테지만 신경써야 할 게 어디 이 뿐인가. 워킹맘들은 일한다는 이유로 베이비시터나 부모님들에게 육아 도움이라도 받지만 전업주부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요구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산후조리를 마치기가 무섭게 외로이 아이 둘 셋을 입히고 먹여야 하는 부담을 잠시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워킹맘과 전업주부를 구분하고 그 역할의 과중함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 우리는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한다. 당신도, 나도 '엄마'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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