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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zart Mar 15. 2021

살아있는 시체의 밤

당신은 좀비에 쫓기는 인간인가, 인간을 쫓는 좀비인가?


다빈치의 인체 해부도

다빈치가 코덱스에 남긴 인체 해부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50세의 나이에 밀라노 생활을 청산하고 20년 만에 피렌체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곳에는 젊은 미켈란젤로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는 다시 밀라노로 돌아가 자신의 마지막 연구 주제가 될 인체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직접 시체를 해부하고 인체 구석구석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그가 남긴 1800개의 인체 해부도는 현대 의학계도 감탄할 만큼 놀라운 정확도를 자랑한다. 그런데 그가 남긴 그림 중 한 군데에 오류가 있다. 다빈치가 부정확하게 묘사한 부분은 바로 여성의 자궁이다.


그가 자궁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해부에 사용할 여성의 시체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술 취해 길거리에서 사망한 신원 미상의 사체들을 해부에 이용했다. 전쟁이 한창인 이탈리아에서 여성은 2세 생산이라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으니, 무연고 여성 시체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결국 다빈치는 동물 해부 지식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다.


다빈치가 해부한 사체들 대부분은 ‘사회적 역할’이 거세된 남성들이었다. 살아있을 때 쓸모없던 부랑자들이 죽은 후 다빈치의 해부도를 통해 인류에 공헌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500년 후 무연고 시체의 후손들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바로 ‘좀비’다.



좀비의 탄생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의 밤' (1968)

좀비 현상은 1968년 개봉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야심차고 반항적인 젊은 로메로 감독은 예산 10만 달러짜리 저예산 흑백 영화에 강렬한 사회 비판 메시지를 집어넣었다. 당시는 냉전의 한 복판이었다. 그는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좀비가 방사능 오염으로 탄생했다고 설정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묘사한 좀비의 행동 방식이다. 그의 영화 속 좀비는 생각도 없고 목적도 없이 어슬렁거린다. 살아남은 인간들이 옆을 스쳐 지나가도 잡지 못할 만큼 느리고 멍청하다. 그가 묘사한 좀비는 물질적 풍요가 극에 달한 미국인들이 마약과 말초적 쾌락에 빠져 허우적대는 무기력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반 할리우드 정신으로 탄생한 좀비의 가치에 할리우드가 주목하면서 다양한 좀비 영화들이 쏟아져 나온다. 좀비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고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 TV, 게임이 지금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좀비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는 좀비가 오락물로 소비되는 현상을 개탄했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다. 좀비는 지금도 변함없이 사회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좀비도 달라졌을 뿐이다.


진화하는 좀비

브래트 피트 주연의 월드워 Z (2013)

2002년 개봉한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에서는 좀비들이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인간과 동일한 육체적 능력을 가진 난폭한 좀비는 관객들의 공포를 몰아넣었다. 좀비의 생성 원인도 방사능에서 바이러스로 대체되었다. 냉전 체재가 해체되면서 핵위협보다 바이러스 확산이 현실적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사태가 이런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2013년 개봉한 ‘월드워 Z’에서 좀비들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좀비들이 힘을 합해 인간이 피신해 있는 예루살렘 성벽을 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좀비들이 ‘특정 목적’, 즉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17년 개봉한 대한민국 최초의 좀비 영화인 ‘부산행’에도 협력형 좀비가 나온다.


좀비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현실판 좀비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제 시선을 당신이 속한 조직으로 돌려보자. 당신 곁의 좀비는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그는 조직의 발전이 자신의 안위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조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를 공격한다. 조직 내 좀비는 당신의 상사, 부하, 동료일 수 있다. 그는 당신보다 나은 스펙, 외모, 화려한 언변으로 무장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대니 보일 감독이 ‘28일 후’에서 묘사한 인간과 동일한 능력을 지닌 좀비의 현실 버전이다.


좀비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인간(열심히 일하는 동료)을 처치하지 못한 좀비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주변에 오염시켜 동료들을 좀비로 만든다. 결국 좀비 떼에 둘러싸인 인간은 그들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월드워 Z’의 ‘협력하는 좀비’가 바로 그들이다.



우리 안의 좀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2016)

이제 시선을 조직에서 국가로 확대해보자. 


최근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적 좀비가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이익은 ‘현재 상태의 유지’이다. 그들은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시도 자체를 구조적으로 봉쇄시키고 있다. 어떤 국가나 조직도 현상 유지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구성원들은 자신이 속한 곳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해야 한다. 더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다. 


눈앞의 안위를 지키려는 좀비가 혁신하려는 인간을 잡아먹도록 방조하는 국가나 조직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좀비 청정 지역이었다. 그런데 최근 협력형 좀비가 한국형 좀비로 불리기 시작했다. 영화 ‘부산행’이 넷플릭스를 통해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부산행’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진행 중이다.) 4년 전 개봉한 협력형 좀비의 원조인 ‘월드워 Z’가 억울해할 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월드워 Z’에서 좀비가 처음 발생한 지역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세계인들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고 협력하는 좀비’를 한국형 좀비로 부르는 상황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좀비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좀비에 쫓기는 인간에 감정이입을 한다. 미안하지만 관객 중 대다수는 인간이 아닌 좀비에 감정 이입을 하는 편이 적절하다. ‘자신의 현실적 삶이 좀비에 가까운지 인간에 가까운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좀비에 가깝다는 반증이다. 


영화 ‘부산행’에서 광기에 찬 좀비 떼가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열차 유리창에 머리를 거침없이 들이받는 장면은 섬뜩하다.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열차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인간인가, 

아니면 

그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다른 좀비들과 힘을 합쳐 
창문에 머리를 들이받고 있는 
좀비 중 한마리인가.

- Boz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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