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 나도 정말 그녀의 왕팬이다. 결혼 프러포즈 선물로 남편이(그 당시 남자 친구) 김연아 선수가 하고 다니는 귀걸이를 선물해줬을 만큼 나는 김연아 선수를 정말 좋아한다. 김연아 선수는 워낙 세계적인 선수이니 실력은 당연하거니와 외모도 아름답고, 인성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죽기 살기로 연습에 매달린 그녀의 근성, 한국인이라면 두 주먹 불끈 쥐고 응원하는 한일전에서도(일본 선수와의 경기) 꺾이지 않는 그녀의 멘탈,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혹독한 식단관리도 함께, 엄격한 멘탈 관리까지 뒷바라지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김연아 선수는 은퇴했지만,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제2의 김연아’를 꿈꾸며 그녀의 어머니처럼 내 아이의 재능을 일치감치 발견해 지원해주고 싶어 한다.
우리 밤아가 비록 그 시작은 미약하고 누구보다 출발선이 늦었지만, 엄마인 내가 어떻게 밤아를 이끌고, 밤아가 얼마나 따라와 주느냐에 따라 밤아의 미래가 달려있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을 나는 늘 안고 살았다. 내가 김연아 선수의 어머니처럼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약 125세 정도 까지는 건강하게 생존해서 밤아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굉장한 오버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저 밤아가 독립적으로, 누군가의 경제적 지원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마련하는 데 내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밤아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관심을 갖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거의 주 6일 하루에 1~2회씩 타 지역으로 언어 치료를 다니는 밤아는 다른 친구들처럼 예체능이나 공부 쪽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 흔한 태권도와 피아노조차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나 풀고 오라는 마음으로 일단 태권도를 등록했고, 피아노는 아이가 흥미 없어 하는 것 같아서 동네에 있는 미술 공작소에 등록했다.
태권도는 아이가 즐거워했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움직임이 크고 활발한 밤아의 머리에 붙어 있는 인공와우 기기는 밤아가 크게 점프를 할 때마다 날아가는 바람에 분실과 파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걱정이 많았는데, 결정적으로 아이 머리에서 나는 땀 때문에 와우 기기 내부가 자꾸 부식이 되어 9만원짜리 소모품을 2주마다 주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아이가 태권도에 흥미가 있어도 장기간 지속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아가 다닌 미술학원은 공작소 같은 개념으로 온갖 재료를 제공해주고 본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들어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었는데, 어린이가 사용하기에 안전한 톱으로 나무도 쓱싹쓱싹 잘라보고, 3D 펜으로 에펠탑도 만들어보고, 다리미질도 해볼 수 있는 ‘어린이들의 미술 천국’ 같은 신기한 공간이었다. 밤아는 이 곳을 엄청 좋아했고, 원장님도 참 좋으셔서 미술치료 받는다는 마음으로 꽤 오랜 기간을 다녔다.
하루는 미술학원 원장님이 ‘모나미’에서 미술대회를 한다며 밤아에게 출품을 제안하셨다. 밤아가 그림을 잘 그려서가 아니라, 어차피 학원에서 그림 그리고 우편으로 접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으니 물감 쓰는 연습도 할 겸 도전해보자는 취지였다. 나는 원장님의 제안에 동의했고, 밤아는 동물원에서 사자를 구경하는 아이가 사자에게 음료수 캔을 던지는(주제: 자연사랑 환경사랑) 그림을 그려서 택배로 보냈다. 사자의 갈기가 재미있게 묘사되었고, 생동감이 아주 살짝 느껴지는 초등학교 2학년 남아의 평범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들려온 놀라운 소식. 모나미 미술대회 ‘입선’이란다. 엄청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밤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놀랍고도 귀한 상이었다.
생애 첫 상을 받은 밤아는 기분이 좋았나보다. 밤아는 미술학원 원장님께 대회에 또 그림을 내보고 싶다고 말을 했고, 이어 ‘조선미술신문’에서 주최한 ‘전국 청소년 미술대회’에서는 최우수상을, ‘한국미술교육학회’에서 주최한 ‘국제친선학생미술대전’에서는 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는 2학년 초등학교 생활의 화룡정점을 찍었다. 밤아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주최한 ‘진로찾기대회 그리기 부문’에서 1등을 한 것이다. 밤아는 방송반에 가서 금상을 수상했고, 그 모습이 학교 전체 학급에 방송으로 송출되었다. 그날 만난 많은 친구들이 “오늘 학교 티비에서 너 봤어!”하면서 밤아를 알아봐주었다. 밤아의 금상 수상은 가기 싫은 도움반에 억지로 가느라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이래저래 사건과 사고가 많았던 초등학교 생활 중 처음으로 밤아의 자존감이 하늘 높이 치솟은 대사건이었다.
아이가 상을 몇 개 받아오니, 나도 ‘어! 밤아가 그림에 좀 소질이 있나?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라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 조예가 전혀 없는 나에게는 밤아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 우리 애가 그렸으니 무조건 잘 그렸다고 눈에 콩깍지 씌운 듯 감상할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아직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되었으니 조바심을 내려놓되 하이에나의 눈빛으로 관찰하며 살펴봐야지. 그리고 미술학원 원장님께 최대한 많은 미술대회에 참여하고 싶으니 대회 소식을 공유해달라고 말씀드렸다.
미술학원 차원으로 출품하는 것은 단체 5명 이상 모여야 출품 가능한 대회가 많은데, 다른 아이들은 상을 못 받을까봐 아예 출품 자체를 안 하려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개인적으로 그린 후 출품하겠다고 하고, 틈 날 때마다 식탁에 넓게 물감과 도화지를 펴고 밤아가 그림 그리는 것을 도왔다. 손재주가 워낙 없으니 말로만 재잘재잘 옆에서 잔소리 보태가며 여러 대회에 출품을 준비하면서 밤아의 표정에 생기가 돋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언어 치료 시간이나 엄마와의 공부 시간에 이래라, 저래라 지적 받았던 것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 활동은 오로지 본인 스스로의 생각과 감성으로 표현하니 밤아의 영혼이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밤아는 ‘잘 한다, 대단하다’ 칭찬 받으니 본인의 그림 실력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했고, 언어적 표현의 한계로 표출하지 못한 내면의 것들을 도화지 위에 쏟아내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