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아와 함께 ‘예중 합격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과목 별 EBS 만점왕 문제집을 메인으로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 봤다. EBS 만점왕이 개념은 정말 잘 정리되어 있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밤아에게 연습 문제가 많이 부족해서 추가로 EBS 단원평가 문제집도 구입했다. 다른 아이들은 주로 학과시험 대비를 위한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하기 때문에 기껏해야 EBS 단원평가 정도 풀고 시험 보러 간다는데, 우리는 학과시험 대비를 가정학습으로 진행하기도 했고, 청각장애를 가진 밤아의 특성 상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야 했기 때문에 문제집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사회와 과학, 국어는 EBS와 별개로 딱 1권의 문제집만 추가로 준비했다. 딱 1권이지만, 5학년 2학기 사회, 과학 국어, 6학년 1학기 사회, 과학, 국어까지 사실 총 6권이다. 그리고 수학은 밤아가 어려워 하는 부분들은 기탄수학 문제집을 따로 준비했고, 일반 수학 문제집들은 다 푸는 족족 새문제집을 구입해서 5학년 2학기와 6학년 1학기의 과정들을 까먹지 않도록 챙겼다.
한 번은 책꽂이에 꽂힌 밤아의 문제집들을 무심코 바라보았는데, 괜시리 내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예술 중학교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 어린 아이인데 말이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이 문제집을 다 풀어내야 한다는 압박이 밤아를 짓누르는 순간 폭발하게 될 무언가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문제집들을 앞에서부터 차례로 풀어나가기엔 밤아가 너무 지겨울 것 같았다. 우리 세대 사람들이 고등학교 때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만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처럼 밤아도 수학의 앞부분만 반복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5학년 2학기와 6학년 1학기 교재를 격일로 하루씩 번갈아가며 풀게 하기로 했고, 문구에서 예쁜 스터디 플래너를 사와서 그날그날 해야 할 과제들을 플래너에 적어주었다.
쎈수학 5-2 p. 50 ~ 54 풀기
쎈수학 5-2 p. 48 ~ 49 오답 고치기
사회 5-2 조선시대 부분 읽기
과학 6-1 만점왕 대단원 정리 풀기
이런 식으로 매일 미술학원에서 귀가 후 1시간 정도씩 공부할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을 적고 스스로 공부한 후 체크할 수 있도록 우리만의 스터디 플래너를 마련해서 공유했다. 물론 6학년 1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시험에 포함되는 모든 과목에 대한 엄마의 개념 정리가 수차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학습 플랜이었다. 밤아는 이 플래너에 적힌대로 공부를 했고, 다 한 부분에는 체크를 했다. 못 한 부분에 대해서는 ‘엄마의 잔소리’ 따위 하지 않고 다음 날로 자연스럽게 넘겼다.
사실 이 학습 플랜에는 혹시나 겪게 될 초등학교 6학년의 질풍노도 시기에 대한 대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즘 아이들 사춘기는 더 빨리 온다던데, 밤아라고 사춘기를 그냥 지나가지는 않겠지. 사춘기 때문에 공부를 안 하겠다거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엄마는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해놓고 공부를 안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6학년이 되기 전 시험 범위에 대한 모든 개념 정리를 끝내놓은 이유도 컸다. 아무쪼록 밤아의 공부 시간인 밤 11시부터 12시 사이에는 밤아와 내가 최대한 부딪히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의 학습량을 계획했고, 부족하거나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 그리고 오답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부분에만 엄마의 개입이 들어갔더니 밤아의 사춘기 초입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예술 중학교의 신입생 입학식 선발고사를 한 달 정도 남겨놓았을 때쯤엔 더 이상의 문제집을 푸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엄마표 문제집’이다. 일단 고조선부터 현대사까지 전체적인 부분과 민주주의까지 나오는 방대한 양의 사회 과목은 내가 직접 요점을 정리해서 문서로 만들어주었다. 특히 교과서에 완벽하게 기반한 ‘엄마표 문제집’을 만들어서 이 문제들을 정확하게 다 풀고 익히면 사회 교과서 전체가 밤아의 두뇌에 정확하게 들어간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교과서의 중요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특히 외워야 할 키워드는 괄호로 비워둔 후 스스로 채울 수 있게 했고, 이 요점 정리를 다 학습한 후에는 엄마가 만든 문제집으로 정리하며 공부하도록 했더니 밤아는 교과서 몇 페이지에 무슨 그림 밑에 나오는 어떤 단어라고까지 외울 정도로 척척박사가 되고 있었다.
과학은 오답과 실험 위주로 오답 정리 문제를 만들었는데, 실험은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아서 문제집을 사진 찍은 후 컴퓨터로 옮겨서 만들었다. 화질도 떨어지고 채점했던 흔적도 있지만, 오답 체크를 이렇게라도 하니 더 이상의 오답은 반복되지 않았던 것 같다.
밤아의 예중 입학 프로젝트를 하면서 요즘 말로 ‘영혼을 갈아 넣은’ 엄마표 개념 정리와 요점 정리, 엄마표 문제지와 오답 정리까지 안 해본 공부법이 없을 정도로 반복, 반복, 또 반복, 기초가 정말로 튼튼해졌다. 이렇게 공부했는데 입학시험에서 낙방하면 밤아가 그 어린 나이에 처음 겪어보는 인생의 첫 실패에 얼마나 실망을 할까 염려되기도 했다. 또 이 만큼 노력했는데 시험에서 떨어지게 될 경우, 아이가 얼마나 번아웃을 심하게 겪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 정도 공부했으면 혹시나 불합격하더라도 공부한 내용이 엄청 튼튼한 자양분이 되어 일반 중학교에 가서 더 깊은 과정을 공부하게 될 때 지식의 귀한 밑거름이 될 수 있겠다 스스로 위로하며, 늘 고생하는 밤아를 격려했다.
“밤아야, 할 수 있어. 다른 친구들도 분명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만, 너의 평생에 이런 노력은 처음이잖아. 정말 멋지고 훌륭해. 그 누구보다도 멋진 성과를 낼 수 있을 거야. 조금만 더 힘내자.”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실패하면 어떡하나’ 불안한 내 마음을 아이에게 내비추지 않으려고 애써 강한 척,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아이 앞에서 강한 척(?)을 했고, 밤아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열심히 따라왔다. 아니, 이미 공부가 습관이 되어 미술학원에서 귀가한 후 목욕하고, 무조건 11시가 되면 책상 앞에 가서 앉았다.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토양이 엄청나게 비옥해. 이렇게 갖가지 방법으로 깊게 뿌리 내린 우리의 학습 나무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거야. 우리 서로를 믿어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