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년이 된 밤아는 어렸을 때 하던 다양한 학습 활동들을 시시해 하기도 했고, 전문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미술학원에 등록한 후부터는 ‘엄마표 융합 수업’을 하겠다고 소모할 시간도 더는 없었다. 이제는 정말 시간 싸움이기 때문에 미술 실기에 들어가는 시간 외에는 중고등학생들처럼 매일 교과서와 참고서 읽고 문제집 푸는 방식의 공부를 할 차례이다.
공부와 실기가 정말 중요하지만 밤아는 언어 치료도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주 2회 정도는 꾸준히 언어 치료를 다녔는데, 나는 낭비되는 시간이 없도록 늘 집에서 밤아의 저녁 도시락을 준비한 후 차로 이동하면서 먹게 했다. 주로 김밥이나 유부초밥, 김치볶음밥 같은 한 그릇 밥으로 준비했다. 요즘 SNS에 많이 올라오는 병아리 메추리알, 문어 비엔나 같은 귀여운 먹거리는 재주가 없어 만들지 못하지만, 남자 아이인만큼 간단한 후식과 우유까지 챙겨서 ‘양’으로 승부했다. 가끔은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준비한 후 컵라면도 줬다. 아이가 차 뒷좌석에 앉아서 라면 먹는 날은 운전하는 내내 내가 더 긴장하며 조심해서 먹으라고 잔소리를 많이 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밤아에게는 나름 추억이 되었던 것 같다. 차에서 밥 먹는 것도 평범하지 않은데, 심지어 컵라면이라니...
고학년이 되면서 대폭 바뀐 밤아의 스케줄은 대강 이렇다.
오후 2:40 하교 후 바로 언어 치료 센터로 출발
3:30~4:50 언어 치료 + 조음
4:50~6:00 차로 이동 중 저녁 식사
6:00~10:00 미술학원
10:20 귀가 후 씻고 간식 먹기
11~12시 공부
‘너 연예인이니……. 그럼 난 매니저?’
맞네. 나 완전 매니저였네. 하교 후 주 6일 언어 치료 다니던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바쁜 것은 비슷하지만, 그 바쁜 내용이 상전벽해와 같은 일상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이런 모습이 정말로 대견했다. ‘밤아야’ 하고 부르면 뒤 돌아 보기라도 해달라고 기도하던 때가 있었는데, 중학교 입시라니! 믿을 수 없는 일상에 바빠도 늘 힘이 넘쳤다.
나는 오전에 잠시 쉬며 저녁 도시락과 집에서 밤아 동생이 먹을 식사 준비, 오후에는 라이딩하며 매번 재활 상담 받고, 차에서는 도시락 먹이고, 다음 스케줄인 미술학원까지 또 라이딩했다. 밤아의 오후 일정 전부를 책임지는 나는 만능 매니저가 따로 없었다. 연예인이 방송 스케줄 늦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나도 밤아가 언어 치료에 늦지 않게, 미술 학원에도 늦지 않게 ‘차 막히면 어쩌나’ 마음 조려가면서 운전하고 다녀야 했고, 중간 중간 밤아 동생도 체크해가면서 한 개의 몸으로 열 가지 일도 한꺼번에 처리하는 만능이 되었다. 밤아가 언어 치료에 가지 않는 날에는 도시락을 들고 3시 30분까지 미술학원에 등원, 2시간 그림 그린 후 저녁 도시락 먹고, 10시까지 미술 활동 후 귀가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밤아는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공작소에서 90분씩 노는 것처럼 미술을 하던 밤아가 입시학원으로 옮긴 후 2시간, 3시간, 또 1시간 더 늘려서 4시간을 한 타임으로 진행하기까지 나는 아이가 지쳐 떨어질까봐 긴장했지만, 밤아는 오히려 4시간이 부족하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이에 밤아가 참 많이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예중 합격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에도 언어 재활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아는 밤아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내 성격 같으면 미술도 공부처럼 직접 케어해야 직성이 풀렸겠지만, 도저히 손도 댈 수 없는 영역이라 미술학원에 온전히 맡겼다. 그리고 예중 시험 실기 문제가 ‘고양이의 동세를 표현하시오.’, ‘리본을 율동감 있게 표현하시오.’ 같은 문장 형식으로 출제되는데, 혹시나 어휘를 몰라 그림을 못 그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험에 출제될 만한 어휘는 따로 설명을 부탁드렸다.
나는 늘 해왔던 것처럼 공부를 최대한 구멍 없게 하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는데, 매일 비슷한 방법으로 공부를 진행하다 보니 오답이 자주 발생하는 취약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오답 노트’라도 만들어서 정리했을 텐데, 하루에 1시간, 길면 1시간 30분 정도 되는 공부 시간 안에 오답 노트를 정리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태블릿을 활용한 오답 정리’였다.
문제를 일단 풀고 오답이 나오면 다시 풀되 재차 틀리는 것이 있으면 태블릿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바로 다시 풀게 하기 보다는 하루나 이틀이 지난 후에 제시했다. 이렇게 시간 차를 두고 같은 문제를 다시 줬을 때 오히려 정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또 오답일 경우는 정말 모르는 문제이기 때문에 태블릿으로 찍은 사진을 태블릿의 ‘도큐먼트’ 앱이나 메모장 등으로 연동해서 편집 기능을 활용하여 태블릿 펜슬로 풀게 했다. 우리 집은 애플 제품을 주로 쓰기 때문에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활용했는데, 밤아가 펜슬의 컬러와 굵기 등을 이것저것 바꿔가며 아주 즐겁게 문제를 풀었다. 잘 안 풀리는 경우 나도 펜슬을 활용하여 태블릿 위에 풀어주었는데, 문제집에 푸는 것에 비해 훨씬 새로운 느낌이라 주의력 환기에도 좋았고, 오답 체크에도 굉장히 요긴하게 잘 사용했다. 학습에 있어서 ‘꿀팁’이라고 할 정도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항상 문제집에 연필로 쓰면서 공부하고, 빨간 색연필로 채점 받다가 태블릿을 가끔씩 활용하도록 하면 기억 속에 저장도 잘 되고 아이 기분도 리프레시 되는 등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