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험은 밤아가 잘 봤다고 했으니 됐고, 둘째 날은 소묘 시험이었다. 실기시험에 앞서 더 걱정이 되었던 것은 입학고사 공지사항에 ‘중요한 안내 사항은 중앙 방송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캐치하는 것도 밤아에게는 쉬운 일이 아닌데, 중앙 방송은 한 번에 못 알아들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무슨 말이 나오는지 모를 수도 있다. 혼자 한참을 고민하다가 학원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학교에 전화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고등학교는 장애인 특별전형이 있다. 그러나 중학교 입시에는 장애인 특별전형이 없다. 외국에서 3년 이상 살다 온 학생들에 대한 특례전형은 있는데 장애인 특별 전형은 없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특별 전형이 없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뜻일 수도 있어서 밤아의 상황을 학교에 알려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괜히 알리지 않았다가 중앙 방송을 못 들어서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을 생각하니 겁이 났다. 결국 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맡겼다.
너무나도 다행이었던 점은 실기시험 이틀 동안 수차례의 중앙 방송이 있었는데, 그 중 아이들이 우왕좌왕 할 만큼의 큰 공지사항이 있었다. 다행히도 밤아의 상황을 알고 있는 학교에서 밤아의 실기고사실 선생님께 미리 알려서 중앙 방송의 내용을 선생님께서 조용히 다시 한 번 육성으로 들려주셨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듣지 못하고 “네?”하고 되묻는 밤아의 물음에 대해서는 답을 안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해주셨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나 싶다.
둘째 날의 소묘 시험은 정물과 사진이 주어지고 몇 가지 조건이 제시되었다. 주어진 조건에 맞게 4시간 동안 연필로 소묘를 한 후 제출하면 되었다. 밤아가 고사장으로 입실한 후 시험 시간인 4시간이 상당히 길어서 집으로 잠시 들어왔다. 그리고 모든 잡념을 잊기 위해 뜬금없이 헬스장에 갔다. 매일 하는 운동이기도 했고, 어지러운 머리를 식히려고 굳이 그 시간에 운동을 택했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대충 운동을 마무리한 후 학교로 돌아가서 아이들이 시험 마치고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둘째 날 시험도 어려웠던 것 같다.
저 멀리서 밤아가 나오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 사이로 내 얼굴을 밤아에게 보여주기 위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밤아가 바로 알아보고 나에게로 왔다. 아이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시험에 대한 정보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우리 밤아는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했다. 밤아는 다행히도 조건에 맞추어 잘 그렸다고 했고, 처음 보는 조건 문제였지만, 1년 전에 미술학원에서 배운 이론 내용이 생각나서 그에 맞게 잘 했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셋째 날 수채화는 사실 밤아가 약한 부분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 수채화 시험이 끝난 이후에도 웅성웅성 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배경을 그리는 게 아니래.’ 또는 ‘배경 그리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어.’ 등의 내용이 많다. 그렇다면 배경을 그리는 것이 맞을까, 안 그리는 것이 맞을까? 밤아가 나왔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고생했다, 애썼다.’ 말보다는 ‘배경 어떻게 했어?’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밤아는 채색으로 배경을 표현하긴 했는데, 배경을 스케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다 끝났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밤아야. 진짜 고생 많았어. 끝났다!!!”
밤아는 나에게 수채화 도구들이 가득 들어 있는 미술 키트를 맡긴 채 친구들과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처음으로 친구들끼리만 가는 놀이동산인데, 혹시나 길을 잃거나 돌발상황이 생기면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재차 이야기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집중해서 시험을 준비한 기간은 사실 그렇게 길지 않았다. 언어치료를 계속 병행해왔기 때문에 마지막에 언어치료까지 중단하고 미술에만 올인한 것은 4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던 것 같다. 남들은 주말까지 반납하고 미술학원에 있을 때, 우리는 미술학원 시간까지 빼 가며 언어치료를 고집했다. 예중 가겠다고 언어치료 그만두고 미술만 하다가 예중 떨어지면 언어까지 포기한 것이 너무 억울해질까봐 언어치료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밤아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의 진도가 안 맞아서 미술학원 선생님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듣고서야 언어치료를 중단했다. 그러니 나와 밤아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준비한 학과 시험공부에 비해 실기 준비 기간은 많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름 방학 이후로 ‘이제 좀 치고 올라가는 것 같다.’는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합격에 대해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다.
합격자 발표가 예정된 날은 다음 주이지만, 통상 시험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오후 6시쯤 발표가 난다고 한다. 오후 5시가 되니 슬슬 떨리기 시작했다. 밤아는 이미 학원으로 가서 본인이 시험 때 그린 그림에 대한 재현작을 다시 그리고 있었다. 만약 합격한다면 밤아가 그린 재현작은 ‘합격자 재현작’으로 학원에서 눈에 잘 띄는 벽에 멋지게 붙게 되겠지. 5시 30분이 지나가니 밤아 동생과 저녁 먹고 있던 내 젓가락도 흔들흔들, 긴장이 되어 손에 힘이 없어졌다. 5시 40분부터는 핸드폰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ㅁㅁ예술중학교를 검색해서 ‘합격자 조회’ 팝업이 뜰 때까지 1분에 한 번씩 새로고침을 눌렀다.
드디어 6시, 핸드폰의 로딩 속도가 살짝 느려지더니 이내 ‘합격자 조회’ 팝업이 떴다. 조심스럽게 밤아의 이름과 수험번호를 적었다. 손이 너무 떨려서 숫자 4개 누르는 것도 오타가 났다.
합격여부: 합격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내가 갑자기 ‘아~’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옆에 있던 밤아 동생이 놀라서 ‘엄마 왜 울어요?’ 하며 따라 울었다. 분명 웃고 있는 것 같은데 눈에서 막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퇴근하는 회사 셔틀버스 안에 있었다.
“여보, 합격이래!”
셔틀버스 안에서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조용히 전화 받으려고 애쓰는 남편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남편도 울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밤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저 합격이래요...저 예중 합격했어요....”
밤아가 울고 있었다. 우는 목소리가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 느껴졌다. 정말 옆에 있었다면 와락 끌어안고 함께 울었을 텐데,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울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함께 준비했던 학원 친구들이 모두 불합격했다. 그 친구들 앞에서 혼자 좋아할 수 없어서 선생님이 밖에 나가서 엄마한테 전화하고 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밤아 역시 눈치를 보며 목소리에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만큼은 숨길 수 없었다.
1.4kg의 극소저체중아로 세상에 태어나 고도난청 청각장애 판정에 양쪽 귀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고생하고 노력하며 살아왔던가. 그 눈물은 분노, 스트레스, 억울함과 짜증, 원망 등 세상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다 담아 피부 밖으로 내보내는 눈물이었다. 하지만 이 눈물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테니까. 합격의 눈물은 우리의 힘든 시절 눈물들을 뜨겁게 안아주는 커다란 위로가 되어 우리 가족 모두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밤아는 합격의 기쁨과 뜨거운 눈물을 경험했으니 이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 귀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만큼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성공의 기쁨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목표와 그에 따르는 노력에 충실하는 삶의 묘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 이제 새로운 시작이야. 너희 멋진 미래를 응원한다! ㅁㅁ예술중학교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