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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람 Oct 05. 2024

2024년에도 공부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밤아와 나는 2023년 10월 중순, 예중 입시가 끝난 후 10월 말까지 공부 휴식기를 가졌다. 그리고 11월 1일부터 아직 공부하지 못한 6학년 2학기의 내용과 중학교 1학년 수학 과목 예습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쭉 해오던 예습과 현행학습, 복습이 몸에 습관처럼 베인 밤아는 입시를 치르느라 공부하지 못한 6학년 2학기의 과목들이 걱정되었나보다.      


 “엄마, 저 6학년 2학기 내용 모르는데 빨리 공부해야 하지 않아요?”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고 부담도 되는 밤아의 질문이었다. 먼저 공부를 챙기니 당연히 기특하지만, 엄마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그리고 내가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나도 지난 몇 년을 너무 달려왔던 까닭에 조금 쉬고 싶었지만, 밤아의 말에 힘입어 6학년 내용을 서둘러 마쳤고, 드디어 중학교 수학을 시작했다. 


 중학교 과정 역시 EBS 교재를 구입하여 메인 교재로 삼았다. 특히 중학교 수학은 갑자기 유리수와 무리수가 등장하면서 체감 상 많이 어렵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때 ‘어떤 수’를 □로 표현했다면 중학교 수학에서는 x가 등장한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면 수학 문제에 한글은 거의 안 보이고 온통 숫자와 영어로 된 기호뿐이다. 그래서 밤아가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고 차근차근 접근할 수 있도록 EBS 교육방송을 함께 보고, 내가 한 번 더 개념에 대한 복습을 도와줬다. 이렇게 겨울 방학 동안 중학교 1학년 1학기 수학을 거의 끝까지 예습했다. 초등학교 때엔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을 모두 예습하고 새학기를 시작했지만, 중학교 준비는 시간의 여유도 부족했고, 이런 저런 이유들로 수학만 겨우 했다.      


 2024년 3월 4일. 드디어 밤아는 ㅁㅁ예술중학교의 어엿한 신입생이 되었다. 그 어떤 오페라와 뮤지컬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한 입학식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ㅁㅁ예술중학교는 ㅇㅇㅇ 외 270명의 2024학년도 입학을 허가합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주책맞게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사실 ‘합격’이라는 단어를 보고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았는데, 입학식도 ‘이거 꿈 아닌가’라는 생각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입학식 자체가 너무 성대해서 입학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멋진 학교를 내 아들이 다니게 되다니, 감사, 또 감사했다.      

 중학교 정상 등교가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수학 외에는 예습이 된 과목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밤아도 긴장이 되었다. 6교시까지의 수업을 마치면 미술부, 음악부, 무용부 아이들은 각자의 실기조로 흩어져 실기 수업을 받은 후 하교한다. 밤아는 오후 5시 30분에 하교하여 집에 오면 6시 10분 정도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밤아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생후 18개월 때 스스로 낮잠을 끊어버린 밤아가, 낮잠을 끊은 이후 장염에 걸려서 아팠을 때 몇 번 외에는 낮잠이라는 것을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체력 하나는 끝내주는 밤아가 갑자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앉아 있는데 고개가 떨어지고, 아주 그냥 헤드뱅잉을 했다. 달라진 일상에 피곤해서 조는지, 사춘기라고 잠이 많아진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함께 EBS 교육방송을 보는데 옆에서 졸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얼굴에 미스트도 뿌리고, 세수도 시키고, 뒤에서 ‘웡!’하며 놀라게 해도 그저 수면 욕구에 충실한 모습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EBS 교육방송을 미리 보고, 밤아에게 과외를 해주기로 했다. 나 혼자 보기에 EBS 교육방송이 약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서, 1.5배속으로 빠르게 재생했다. 이렇게 과학도 보고, 사회도 봤다. 특히 사회가 외울 것이 엄청 많았다. 한국사에 집중하던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 사회는 갑자기 전세계가 등장하고 기후와 문화적 특성 등 지구본 전체를 훑는 것 같았다. 요즘말로 ‘인강(인터넷 강의)’을 시청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 참. 이러다 내가 수능 보겠네. 만학도로 의대 한 번 도전해봐?’     


 어이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자식 공부시키다가 같이 수능 봤다는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같이 공부하면 수능 시험장도 같이 갈 것 같은데, 누가 이기나 경쟁해보자고 하면 밤아와 나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긴장할까?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직접 실험도 해보던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 교과는 내용도 많고, 특히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더 이상 ‘양배추 지시약’을 만들며 집안을 누비는 여유는 부릴 수 없었다. 그리고 꾸벅꾸벅 조는 밤아에게 교육방송 내용을 내가 직접 과외 선생님처럼 가르치게 된 이상, 옛날 아날로그 스타일로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공책 한 가득 ‘깜지’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졸릴 때 잠도 깨우고, 시험 직전에 암기한 내용을 풀어내는 목적으로 해보려고 근처 문구점에서 커다란 전지를 구입해왔다. 그리고 거실 유리창에 전지를 붙였다. OHP 필름으로 수업하던 나의 학창 시절, 모든 반에 반복되는 동일한 내용의 필기 시간을 줄이고자 선생님들이 전지를 접어 공책 칸처럼 만들고 그 위에 필기를 하신 후 각 반 칠판에 붙여 주셨다. 우리 집은 그 시절 그 방법을 재현했다. 단, 과목마다 전지 위에 쓰여질 내용과 방법을 조금씩 다르게 구성했다. 남편은 ‘정말 별 걸 다 한다.’라고 말은 했지만, 내심 궁금했는지 암체어를 가지고 와 전지 앞에 편안하게 자리 잡고 앉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졸린 잠을 깨우는 데는 전지가 정말 효과적이었다. 일단 서서 공부하게 되니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졸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책상 공부보다 훨씬 덜 지루했고,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웃음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학습법은 누구를 가르쳐보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밤아는 전지를 붙여놓고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에게 본인의 교과 내용을 선생님처럼 가르쳤다. 시험 전 날에도 전지 공부는 계속됐다. 전지를 붙이고 밤아의 설명을 들으니, 중요한 암기 내용에 대한 확인 작업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깨알같이 외우고 풀어내는 밤아의 모습이 정말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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