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해보자고 제안한 전지 공부법이지만, 사실 오래 전부터 학교에서 심심치 않게 보여지던 교수법이라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전지 공부법의 내용을 과목별로 조금씩 다르게 구성한다면 무작정 외우거나 ‘깜지’ 만드는 공부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국어, 수학, 과학, 사회를 각각의 과목이 가진 특성에 맞게 전지에 들어갈 내용을 구성해 보았다.
일단 국어 시험에는 시와 시조가 범위로 포함되었다. 시와 시조는 내용이 짧아서 전지에 적기 편했다. 나는 ‘정현정’님의 ‘나무들의 목욕’과 ‘윤선도’님의 ‘오우가’를 전지에 적었다. 그리고 밤아가 선생님처럼 수업하듯 각 시들의 주제, 비유나 상징 등 사용된 기법, 종장의 첫 3음절을 지켜야 하는 시조의 형식 등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다. 물론 시와 시조였기 때문에 전지 활용이 가능했었던 것 같고, 시 뒤에 나왔던 소설과 문법 부분은 별도로 공부했다. 밤아의 설명에 뒤이어 중요한 표현 기법이나 특징들은 내가 한 번씩 더 질문했다.
“밤아 선생님! 비유와 상징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음.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작품에 직접 제시가 되어 있어요. 상징은 보조관념만 제시가 되어 있어요. 예를 들면 ‘비둘기’라는 것은 ‘평화’를 상징하고, ‘반지’는 ‘약속’을 상징해요. 하지만 ‘비둘기’와 ‘평화’ 사이에, ‘반지’와 ‘약속’ 사이에 의미의 유사성은 전혀 없어요. 그냥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상징물일 뿐이에요. 비유는 ‘앵두처럼 붉은 입술’은 ‘~처럼’을 써서 직접 비유했고, ‘내 마음은 호수요’는 마음과 호수가 동일하다는 것으로 은유법인데, ‘앵두’와 ‘붉은 입술’, ‘마음’과 ‘호수’는 뭔가 의미적으로 비슷한 느낌이 있어요...”
‘엄마 학생’의 질문에 밤아 선생님은 차근차근 설명을 잘 했다. 내가 잘 가르친 것인지, 밤아가 열심히 공부한 것인지, 무엇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시험 직전의 확인학습 치고는 굉장히 칭찬할 만했다.
시험 직전 수학 공부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진행했다. 일단 교과서에 나와 있는 개념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교과서에 실린 단원평가 문제 오답과 기출문제 오답을 전지에 모두 적었다. 밤아는 학교에서 칠판 쪽으로 나가 친구들 앞에서 문제를 풀듯이 가족들 앞에서 설명을 하며 답을 구했다. 열심히 설명하며 멋지게 답을 도출했는데, 객관식 보기에 답이 없었다. 모두가 웃으며 다시 한 번 계산한 결과 정답이 나왔다. 그렇게 밤아는 오답을 정확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과학은 지구과학 부분이 시험 범위로 들어갔다. 암석과 광물의 특징, 풍화작용, 대륙의 이동 등 외울 것도 많고 사진이나 그림 자료도 아주 많아서 봐야 할 것들이 방대했다. 그 많은 것들을 전부 전지에 적으며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교과서에 나오는 간단한 그림을 전지에 그렸다. 그리고 암석들의 경우 표를 그려 항목만 정리하고 나머지 내용들은 전부 빈칸으로 둔 채 전지에 적었다. 밤아는 전지 앞으로 나와 빈칸들을 하나하나 채워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보, 이거 밤아가 다 설명하기에 너무 많은 거 아냐? 이게 가능해?”
남편이 의심쩍은 눈치로 내게 물었다.
“응. 가능해. 한 번 믿고 들어봐.”
전지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험 범위의 모든 내용들을 채워가며 설명하는 밤아의 모습을 보고 남편은 내심 감동을 받은 눈치였다.
사회는 세계지리 쪽 내용으로 지도 읽기와 그래프 분석이 가장 중요했다. 지구를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누고, 또 적도를 중심으로 저위도, 중위도, 고위도로 나누었을 때 나타나는 기후의 특성과 사람들의 생활 모습 등을 모두 외워야 했다. 사회 과목을 공부시킬 때 공부할 양도 많고, 나도 부담이 커서 ‘이 많은 양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고민도 많고 고생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함께 다녔던 괌이나 베트남 등의 날씨와 서울의 날씨를 비교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 갔었던 싱가포르의 지역적 특성도 함께 이야기했다.
“우리 가족이 재작년에 괌에 갔을 때 크리스마스였는데 엄청 더웠지?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추운 한겨울에 크리스마스를 보내는데, 괌에서는 뜨거운 태양 밑에서 놀다가 산타할아버지를 만났었잖아(실제로 호텔 이벤트로 산타가 왔었다). 괌은 적도와 가까운 저위도 지방이라 1년 내내 더워서 크리스마스도 뜨거운 여름이야. 그리고 태양이 곧바로 비추니까 햇빛에서 조금만 놀아도 피부가 금방 까매졌지? 그게 다 위도의 영향인 거야.”
“우리가 다낭에 갔을 때 비가 막 엄청 많이 왔는데, 조금 기다리니 금방 그치고 해가 떴었지? 우리나라 여름의 장마랑은 비 오는 것이 조금 달라. 어떻게 다른 것 같아?”
여행 이야기를 사회에 접목시키면 밤아도 재잘재잘 말이 많아지고, 교과서의 내용 중에 내가 경험한 것은 없는지 생각하며 듣는 등 밤아의 눈이 신이 나서 반짝거린다. 이미 경험해봐서 느낀 것도 많고 말할 것도 많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부하니 학습 내용 이해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완벽한 이해 뒤에는 암기가 따르는 법, 밤아의 스타일대로 열심히 암기를 한 후, 엄마가 전지에 그려놓은 그래프와 지구 위에 하나하나 필기를 해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래프의 x축과 y축도 몰랐던 밤아였는데, 이제는 막대 그래프와 꺾은선 그래프를 구분해가며 잘도 설명한다. 나는 밤아의 설명을 듣고 있는 남편에게 ‘이 맛에 여행 다니지’라며 여행의 아웃풋을 높이 평가했다. 다음 여행 예약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해오던 교수법인 전지 활용은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신기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집에서 활용하기에 아주 경제적이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만 구성된다. 다만 전지에 들어가는 내용을 엄마가 미리 체크하고 구성해줘야 하며, 질문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수고가 따른다. ‘공부 다 하고 교과서 가져와. 엄마가 질문해볼게.’하는 여느 집의 확인학습에 비하면 엄마도 거의 학생처럼 공부해야 가능한 학습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 방법을 사용해서 가정학습을 하면 확실한 아웃풋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학습 내용을 바라보는 내 아이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책상 앞에 구부정하니 앉아서 책만 바라보고 있으면 내 눈 앞의 글자 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설명하려고 선생님처럼 칠판(전지) 앞에 서 있으니, 마치 본인이 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하나라도 더 설명하고 싶어 하고, 상대방을 더 잘 이해시키고 싶어 하기도 하며, 종이와 글자를 크게 보니 알아야 할 것도 크게 보인다. 한 마디로 시야가 넓어진다. 교과서의 작디 작은 그래프의 x축도 전지 위에 쓰여지면 크게 보이고, 체크해야 할 중요한 항목이 된다. 그래프와 지도도 전지 위에서 보면 크게 보이고, 간과했던 내용도 다시 보게 된다. 전지 한 장이 가져다주는 가성비 높은 학습법, 다소 감성 넘치고 아날로그적이지만 굉장히 추천하고 싶은 학습법이다. 단, 아이가 필기할 때 맞춤법과 띄어쓰기 지적은 금기사항이다. 그저 칭찬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