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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람 Sep 30. 2024

인생 첫 입시

 드디어 ㅁㅁ예술중학교의 입학원서 접수 날이 되었다. 미술, 음악, 무용을 전공하려고 하는 꿈나무들이 어찌나 많은지, 3일 간 원수 접수를 받는데 첫날 아침 일찍 갔는데도 2시간 반 이상이나 대기를 하고 겨우 접수했다. 외국 거주 특례전형을 제외한 112명의 미술 학도들을 뽑는 데 311명의 학생이 지원했다. 30대 1, 50대 1 하는 대학교 경쟁률이나 회사 입사 경쟁률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경쟁률처럼 보여져 자칫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것만 바라고 준비해온 아이들만의 경쟁이기 때문에 굉장히 치열하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 몇 년 간 경쟁률을 비교해볼 때 가장 높은 경쟁률이라고 한다. 


 이제 입시까지 딱 1주일 남았다. 남은 일주일 간 미술은 컨디션 조절 잘 해가며 최대한 장점을 끌어올리고, 학과시험은 오답을 체크하고 그동안 잘 외우지 못했던 것을 중점적으로 외워야 한다. 나는 밤아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서 긴 시간 공부시키지 않고 최대한 일찍 재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간 풀어왔던 문제집 중 반복되어 나오던 오답 또는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을 각 5문제씩(실제 시험처럼) 20문제, 5학년과 6학년 문제로 나누어 총 40문제씩 만들었다. 딱 이 40문제만 일주일 간 매일 풀고 시험 보러 가기로 했다. 매일 5학년 20문제, 6학년 20문제를 만드는 일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정말 미련 없이, 후회 없이 해보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컴퓨터 작업에 임했다. 그리고 시험 보는 날 아침에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갈 요점정리 최종본까지 만들어뒀다. 

 여기까지가 내가 준비하는 ‘예중 입학 프로젝트’의 마지막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징~한 엄마였던 것 같다. 남편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질문할 정도로 온 정성과 노력을 다했고, 설사 불합격할지라도 후회 없을 정도로 했다. 사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이 정도 했으면 떨어지는 게 이상하다.’라는 마음이 내 안에 지배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드디어 입학시험 첫날, 학과시험 보러 가는 길. 새벽부터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이용해 학교로 갔다. 흔들리는 지하철에서 요점정리 최종본을 보라고 밤아에게 줬는데, 지하철에서 공부하는 것 자체를 처음 해보는 밤아는 종이를 손에 들고만 있고,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내심 이해가 갔다. 고작 초등학교 6학년일 뿐인데, 입시라니... 나도 이렇게 떨리는데, 긴장해서 손이 차가워진 밤아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요점정리를 보라고 하지 않고, 내가 생각나는 것들 중에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밤아야, 우리 이만큼 온 것만으로도 진짜 대단한 거 알지? 오늘이 첫날이고, 학과시험 보고 와서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실기 시험만 끝내면 마음껏 쉴 수 있어. 첫 단추가 중요한데, 우리는 공부를 정말 많이 했기 때문에 그동안 해온 것만큼만 하면 돼. 긴장 되는 거 이해하는데, 그만큼 긴장할 필요도 없이 정말 수월하게 끝내고 나올 수 있을 거야. 우리가 공부한 것보다 훨씬 쉽게 나와. 일부러 엄마가 좀 어렵게 공부시켰어. 어렵게 준비해야 실전에서 쉽게 느끼거든.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와!”     


 학교 앞에 도착했다. 곧 시험 보러 들어갈 아이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학원이나 레슨 선생님들까지 ㅁㅁ예술중학교 교문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득 찬 인파와 그 열기가 가을 아침의 차가운 기온마저도 뜨겁게 달궜다. 

 나는 마지막까지 밤아에게 하나라도 더 듣고 가라고 FTA가 뭔지, 관세가 뭔지, UN이 뭔지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물어봤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함께 있던 같은 학원 아이가 시험 볼 때 ‘이거 아까 밤아 엄마가 밤아한테 얘기하던 건데’ 하면서 계속 정답을 떠올리려 했는데 끝까지 생각이 안 나서 정답을 못 썼다고 한다. 


 아이들은 학과 시험 시작 시간 20분 전에 교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혹시라도 밤아가 고사장을 못 찾고 당황할까봐 미리 지도를 출력해서 설명했는데, 학교 선배들이 도우미 역할을 하며 아이들에게 길안내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한시름 놓고 나와서 주변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학과 시험은 금방 끝나기 때문에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밤아가 나올 것이다. 

 한 시간은 산책 시간으로도 충분하고, 커피 한 잔 마시기에도 딱 좋은 시간인데, 세상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괜히 내가 더 긴장해서 벌벌 떨면서, 천천히 걷지도 못했다. 막 경보하듯 빨리빨리 걷다가 그냥 교문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다른 부모들도 비슷한 심정으로 교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저 멀리서 아이들이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학과 면접 순서가 앞번호인 아이들일 것이다. 근데 아이들의 얼굴이 어둡다. 몇몇 아이들은 엄마를 보자마자 엉엉 울었다. 이미 울고 나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너무 어려웠다는 말도 있었고, 생각이 안 나서 못 썼다는 말도 있었고, 2번 찍었는데 아닌 것 같다는 말도...내 학창시절 겪었던 시험기간의 이야기들이 ㅁㅁ예중 교문 앞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사람 감정 다 비슷하지 뭐, 1990년대나 2023년이나 다를 것이 있을까 싶다. 


 드디어 밤아가 보였다. 한 시간 전에 긴장되는 뒷모습을 보이며 쓸쓸히 걸어 들어가던 밤아의 모습과 달리, 한껏 밝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밤아는 나를 보자마자   

   

 “엄마, 저 시험 잘 본 것 같아요!”     


 이 한 마디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발단-전개 다음에 ‘절정’ 맞죠? 아침에 엄마가 말하던 것도 나왔어요!”     


 후아. 한 시름 놨다. 잘 봤다니,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정말 공부를 많이 하면 정답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대략적인 점수가 예측 가능하다. 밤아가 스스로 잘 본 것 같다고 하니, 바로 믿음이 갔다. 3일 간의 시험 중 첫날 시험을 잘 봤으니, 스스로에게 기선제압을 성공한 밤아는 더 좋은 컨디션으로 실기 시험 준비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간 쉼 없이 달려오던 학과 시험 준비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집에 오자마자 문제집을 버리려고 꺼냈는데 자그마치 38권이었다. 심지어 전부 다 풀었다. 빈 페이지가 없었다. 내가 대단한 건지, 밤아가 대단한 건지, 어쨌든 대단한 모자라는 것을 38권의 문제집으로 인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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