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중에 박물관 해설을 업으로 하는 친구가 있다. 가끔 밤아와 사회 공부하다가 막히는 지점이 있으면 친구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받곤 했다. 5학년 2학기 여름 방학 때에는 친구에게 밤아와 밤아 동생을 맡겨서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 체험을 부탁했다. 친구는 본인이 전문가인 만큼, 그리고 친한 친구의 아이들인 만큼 더 열과 성을 다해 박물관 투어를 해주었다. 근데 하루 2~3시간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을 해설과 함께 견학하려고 하니 주어진 시간에 비해 볼 것들이 너무 많기도 했고, 특히나 방학이라 아이들이 엄청 많았는데, 소음 속에서 밤아가 해설을 제대로 듣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뜨거운 여름에 실내 온도 제한으로 다소 더운 듯한 박물관에서 내 친구도 땀을 뻘뻘 흘리고 나왔다. 집에 와서 아이들에게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니 책에서 보던 걸 실제로 봐서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여름 방학에 박물관 가는 것을 그만 하기로 했고, 집에서 늘 하던 대로 교육방송과 교과서, 문제집 등으로 공부를 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교사가 직업인 친구로부터 괜찮은 책 한 권을 추천받았다. 「읽으면서 바로 써 먹는 어린이 한국사 퀴즈」라는 책인데, 이 책은 대부분이 만화로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도 했고, 퀴즈 형식으로 된 책이라 서로 퀴즈를 내고 맞추는 활동을 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마법천자문’이나 ‘수학도둑’ 시리즈 만큼 시리즈 책들이 줄지어 출간되고 있었다. 시리즈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밤아 동생 덕에 나도 「읽으면서 바로 써 먹는 어린이 한국사 퀴즈」 책을 구입한 후 시리즈 책들을 연달아 구입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바로 써 먹는 어린이 한국사 퀴즈」는 초등학교 5~6학년 사회의 한국사 부분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들을 퀴즈 형식으로 담고 있었다. 심지어 단답형이라 예중 입시의 학과시험 준비에 찰떡궁합이었다. 한국사의 흐름이 아닌 단순 암기를 위한 책으로 쓰기에는 정말 좋은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서로 퀴즈를 내기 위해 좀 더 열심히 역사 공부를 했고, 드디어 퀴즈를 풀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대한 제국을 선포한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올렸던 장소는?”
“환구단!”
사실 사회가 어렵고 양이 많다고 날마다 사회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매일 수학을 기본적으로 하고, 나머지 과목들을 나름의 계획에 따라 공부했는데, 사회 공부를 안 하는 날과 식사 시간이 길어질 때 「읽으면서 바로 써 먹는 어린이 한국사 퀴즈」를 아주 유용하게 썼다. 심지어 운전하다가도 퀴즈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중요한 퀴즈 몇 개 정도는 아예 외워버렸다. 같이 대화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생각나는 퀴즈를 하나씩 던지면 곧잘 대답하는 밤아가 신기했다. 밤아 동생도 형과 엄마가 퀴즈를 주고받는 것이 즐거워 보였는지, 가끔씩 책을 들고 내게 와서는 퀴즈를 하나씩 냈는데, 이미 답을 다 외우고 있는 내가 고민하는 척 하며 알아맞히니 엄마 진짜 똑똑한 거 아니냐며 리액션을 했다.
이 정도 공부했으면 여름에 너무나도 더워서 힘들었던 박물관에 다시 가봐도 되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에 다시 방문했다. 그리고 이미 현대사까지 공부를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서대문형무소에도 갔다. 단, 체험학습 선생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렇다고 내가 대신 설명하는 것도 아닌, 밤아가 설명하는 박물관 견학이었다. 밤아는 백제의 금동대향로를 찾아서 그 모습을 그의 언어로 묘사하고, 거북선과 판옥선을 찾아서 그 시대 상황을 설명했다. 때마침 영화 ‘한산’을 관람한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라 거북선과 판옥선을 보며 영화에서 보았던 그것들과 비교도 하고 이야기해볼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었다. 밤아가 설명하다가 부족하거나 막히는 부분은 내가 다시 알려주기도 했다. 사실 내가 체험학습 선생님처럼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서, 나도 그저 보고 느끼는대로 설명했지만, 서로 잘 한다 칭찬하고, 틀리는 부분 지적도 해가며 알찬 시간을 보냈다. 박물관 해설사나 체험학습 선생님보다는 훨씬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박물관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했다.
「읽으면서 바로 써 먹는 어린이 한국사 퀴즈」 책을 통해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역사를 접한 밤아 동생도 박물관에서 아는 것이 있는 척 거들었다. 남들은 유물 한 점 바라보며 3~5분 정도의 긴 설명을 듣고 자리를 옮기는데, 우리는 박물관 전체를 도는 데 1시간이 안 걸렸다. 일부러 시간을 좀 끌어보려고 밤아 동생에게 핸드폰을 맡기고 멋진 유물을 사진 찍어보라고까지 했다. 그래도 1시간 컷이었다. 너무 대충 보지 않았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미 공부도 했고, 내가 공부한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 정도의 시간이라면 1시간도 충분했다. 대신 박물관 바깥의 정원에서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편의점에서 시원한 음료를 구입해서 함께 마시며 여유롭게 맑은 하늘을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