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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보 Apr 01. 2021

그럼, 이게 개... 개.. 개 개 밥 이유?

그건 아닙니다만...

밥을 달라 했던 건 미끼였을 뿐이고, 

할머니는 거지의 미끼를 확 물어 버린 겄여!


바야흐로 먼 옛날, 

개나리와 진달래가 시골 마을 어귀에 만개하고 신록이 만발하던 어느 따뜻한 봄날...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그 당시에는 웬일인지 거렁뱅이 아저씨들이 한 번씩 마을에 출현하시곤 하셨다. 

어린 나는 오랜만에 동네 마을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신나게 한 후 오후 3시 정도

집으로 돌아왔다. 


아뿔싸!


내 눈에 보였던 충격적인 장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음식을 게걸스럽게 드시고 계시는 거지 아저씨의 머리는 산발이었다. 머리카락은 얼마나 샤워를 안 하셨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지만, 떡이 지다 못 해, 쓰다 버린 거친 싸리빗자루처럼 보었다. 옷은 누더기에 때가 겹겹이 쌓인 올리브 색 군복이 콧 물(?)을 옷에 닦았는지 모르겠으나 그 화창한 봄날 오후 제법 따가운 햇볕에 번들번들 반짝이고 있었다. 아저씨의 얼굴색은 가히 영화 속 거지 분장을 한 사람들의 꺼무잡잡하고 얼룰덜룩하게 분장된 무늬보다 더 더럽고 역겨워 구토가 나올 것 같은 몰골로 땟국 자국이 여기저기 산발해 있었다. 더욱이, 얼굴 땟국 자국의 연륜이 양파 세포막만큼 몇 겹으로 켜켜이 겹쳐있는 것으로 보였다.


정말 가관이었던 것은, 그 아저씨의 손톱 길이와 모양...


손톱을 얼마 동안이나 안 깎으셨는지 (아니면 거지 최초 기네스북 등제를 목표로 안 깎으셨는지.. 나의 뇌피셜) 손톱 길이가 회오리 감자만큼이나 느슨하게 돌돌 말려져 있었다. 그 회오리 감자처럼 돌돌 말려진 손톱 밑에는 각종 바이러스의 산실처럼 보이는 시커먼 때가 그 긴 손톱들 사이에 야무지게 그리고 얼룩덜룩 껴 있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게도 그렇게 긴 손톱을 갖고 있는 거지 아저씨는 젓가락질과 수저질을 아주 훌륭히 해 내시고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늘 그러셨듯이 밥 한 상을 정갈하고 푸짐하게 차려 거지 아저씨에게 드린 것 같았고 그 아저씨는 허겁지겁 음식을 드시고 계셨다. 내가 거렁뱅이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 할머니께 가까이 걸어가 옆에 서있자 갑자기 아저씨는 밥 먹는 속도를 급히 줄이 시 곤 거지 분장을 한 암행어사처럼 행동을 하셨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할머니와 거지 아저씨의 대화, 아니 대화라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는 내용은 이러했다. 


거지 아저씨는 '밥 한상 감사히 먹고 있으니 이제는 돌아갈 차비와 용돈을 좀 쥐어 달라'라는 것이었다. 또한, 아저씨는 왜 돈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할머니께서 제안하신 금액보다 왜 더 많이 받아야 하는지를 할머니께 열심히 설명하고 계셨다. 할머니께서는 이런 아저씨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은 그리 좋은 형편이 아니니 500원밖에 드릴 수 없다'는 것으로 이 협상 아닌 협상을 종결지으시려고 하시는 것 같았다. 


눈치로 보아 둘의 신경전은 내가 집에 돌아오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 옆에서 갑작스레 거지 분장을 한 암행어사 역할을 충실히 하시는 비렁뱅이 아저씨가 앉아서 식사하시는 풍경을 보고, 왠지 할머니의 협상이 실패하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거지 아저씨가 앉아서 식사하고 계시는 곳은 할머니의 집 앞마당이 훤히 내다 보이는 평상이었는데, 평상 뒤로는 가람의 구조와 한옥의 미를 무척이나 신경 쓴 신축 한옥 건물들이 아저씨의 병풍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옥 건물들 사이사이는 역사 드라마에 나올 법 한, 혹은 그들의 세트 장 보다도 아름다워 넋을 잠시 잃을 만한 정원이 세팅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아기자기한 가람과 한옥 그리고 잘 가꾸어진 정원덕에 사진작가들이 종종 할머니의 허락을 받고 신혼부부들을 모셔와 실외 웨딩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그 뒤로는 봄 내음 가득한 신록으로 더치 된 나뭇잎을 뽐내는 나무들이 가득 찬 산과 소라색 하늘 위에 뭉게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거지 아저씨에게, 

"우리 집이, 건물도 최근에 신축을 해서 여유가 없어요. 다음에 들르실 때는 더 드릴 테니, 이 차비 500원이라도 받으셔요."라고 말씀하셨다. 


암행어사 역할을 하시던 비렁뱅이 아저씨는 식사를 다 하신 후, 양반 같이 정 자세로 앉아서 후식으로 내 온 수정과를 한 잔을 한 모금에 들이켜셨다. 평상에 정자세로 앉아 계신 채로 몸통만 돌려 주위를 스으윽 한 번 둘러보시더니, 자신의 병풍 역할을 했던 신축 한옥 건물들을 한 참 둘러보셨다. 그 후, 구정물에 몇 번 담갔다가 말린 것 같은 손과 거기에 용케 매달려 있는 회오리 감자 스타일의 길고 돌돌 말려진 검지 손톱으로 뜬금없이 밥상을 가리키며 더듬는 말투로, 

"그럼 이게... 개.. 개.. 개.. 개밥 이유?"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차려 내온 반찬은 육해공이 총출동을 하였고, 잣과 대추까지 뿌려 낸 수정과는 한옥 건물의 신축으로 여유가 없을 리 만무한 한 상차림이었다. 아저씨의 반어법이 담긴 이 한 마디에 할머니께서는 500원이 아닌 500원의 몇십 배인 돈을 노잣돈으로  내어 주신 것으로 이 사건은 막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에 아저씨께서 할머니 댁을 재방문하셨다는 말씀은 듣지 못했다. 


왜 방문을 다시 하지 않으셨을까?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


와타시와 겡끼 데스~~~yo! (私は元気です~~~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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