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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보 Mar 14. 2016

영화감독 김기덕 작품 <나쁜 남자>

<나쁜 남자>의 선화는 <파란 대문>의 혜미와 진아 


김기덕 감독의 영화 <파란 대문>의 주인공 진아와 혜미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원제: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인 나, 즉 와타나베 토오루(ワタナベトオル)와  <파란 대문>에서 진아가 새장 여인숙에 들고 온 에곤 실레의 그림의 작가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파편화된 성의 혼돈을 안고 산 인물들이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 <파란 대문>에서 여성성의 원형, 즉 탈근대적인 성, 즉 영혼과 육체가 하나이며 성이 곧 성스러운 것임을 표현했다. <섬>은 이러한 탈 근대적인 성이 자본과 권력에 의한 이중적인 성을 소우주적 관점의 자궁으로 표현하였다. <나쁜 남자>에서는 <파란 대문>과 <섬>에서 보여 준 파편화된 성의 근대성을 극복하고 예술로써 포옹되는 성스러운 성으로 승화시켰다. 





<나쁜 남자>의 선화는 <섬>의 새 장 속의 새,
그리고 <파란 대문>의 혜미와 진아 

<나쁜 남자>의 선화는 <섬> 속의 소우주적 자궁에 흡수된 새로, 그리고 <파란 대문>의 혜미와 진아를 한 사람인 대학생의 선화에서 자본에 의해 성이 사고 팔리는 선화로 보여준다. <파란 대문>의 혜미와 진아는 자본과 권력으로 파편화된 성으로 상징되는 혜미와 진아의 화해 관계를 시간상 비대칭으로 그리고 내용상으로 대칭으로 그리고 결말상 대칭으로 보여주었다. <섬>의 새는 소우주에 흡수된 성으로, 그리고 <나쁜 남자> 속 선화는 파편화된 성의 과정을 대학생 선화에서 자본으로 교환되는 성의 변화 과정을 한 명의 선화로 나타내어 변화 과정을 비대칭적으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나쁜 남자>의 선화는 소우주적 <섬> 속의 새와 파편화된 대칭화된 성의 <파란 대문> 속 혜미와 진아의 새로운 탄생과정을 보여준다. <파란 대문>의 새장 여인관 앞 모래사장에서 <나쁜 남자>의 선화는 그녀와 한기의 사진을 발굴한다. 

왼편:<파란대문>의 새장의 여인들; 중앙: <섬>의 새와 새장; 오른편: <나쁜 남자>의 새장 연인숙 앞으로 돌아 온 선화와 한기
<나쁜 남자>의 선화와 <파란 대문>의 진아와 혜미는
 <파란 대문>과 <나쁜 남자> 영화 소재로 나오는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그림과 인생 속 두 여인
 발리 노이질(Wally Neuzil)과 에디스 함스 (Edith Harms)

<파란 대문>에서 진아가 새장 여인숙에 들고 온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작품인 검정머리 소녀의 누드는 에곤 실레의 성애화 된 모델이었으나 감정적으로 거리를 둔 모델 발리 노이질이다<파란 대문>의 주인공 진아가 소설 <노르웨이의 숲>의 나오코, 그리고 실레의 발리 노이질은 비슷한 여성성의 선상에 서있고 <파란 대문>의 또 다른 주인공 여대생 혜미와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미도리, 그리고 실레의 여인 에디스 함스는 비슷한 여성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파란 대문> 속 진아와 혜미, 소설 <노르웨이의 숲> 나오코와 미도리, 에곤 실레의 인생 속 두 여인 발리 노이질과 에디스 함스 모두를 내포하는 인물이 <나쁜 남자>의 선화라는 인물이다.


 실레의 일생에는 두 종류의 여성성으로 상징되는 여인이 있었다 - 발레리 혹은 발리 노이질(Valerie Neuzil, or Wally)과 에디스 함스 (Edith Harms). 발리는 그의 성애화 된 모델이었으나 그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에디스는 순수하고, 순결한 여성상으로 그가 더욱 인간으로 보았던 여성이었으나 역시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러한 실레의 파편화된 여성성은 그가 에디스와 혼인을 하였을 때 그가 그의 불륜녀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였기 때문에 여러 딜레마로 드러났단다. 그가 더 이상 불륜관계를 맺지 못 하게 되었을 때, 실레는 그의 혼인이 그의 섹슈얼 자유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았단다. 


<파란 대문> 속 진아가 가져온 검정 머리 누드의 소녀는 에곤 실레의 인생 속 실제 여인이었던 발리 노이질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나쁜 남자> 속 선화가 본 누드 여인(아래 중앙 장면)은 에곤 실레 자신이 성애화 된 모델 발리 노이질을 상징할 수 있고, 아래 오른편의 그림의 자신의 아내 에디스 함스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왼편: 파란 대문; 중앙과 오른편: 나쁜 남자에 나오는 에곤 실레 그림


<파란 대문>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파편화된 성을 하나로 묶어 성의 원형을 찾는 작업을 거쳐, <섬>은 남성과 여성성(파란 대문의 진아와 에곤 실레의 발리 노이질)을 넘어 인간이 소우주의 원형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시사했다면, <나쁜 남자>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인 나, 즉 와타나베 토오루(ワタナベトオル)와 <파란 대문>에서 진아가 새장 여인숙에 들고 온 에곤 실레의 그림의 작가 에곤 실레(Egon Schiele)를 하나로 묶어 하나의 예술로 탄생시킨다. 

<나쁜 남자>의 선화와 <파란 대문>의 진아와 혜미는 에곤 실레(Egon Schiele)의 두 여인 발리 노이질(Wally Neuzil)과 에디스 함스 (Edith Harms)
<나쁜 남자>의 한기는
<파란 대문>에서 주인공 혜미와 진아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ワタナベトオル)

<파란 대문>에서 주인공 진아와 혜미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인 나, 즉 와타나베 토오루(ワタナベトオル)는 파편화된 성의 혼돈을 안고 산 인물들이다. 아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나, 와타나베의 섹슈얼리티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와타나베에겐 좋아하는 여자가 있지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섹스가 불가능하지. 그래서 섹스는 섹스로 잘라서 이해하고, 다른 데서 처리를 하는 거야. 그것으로 좋은 거 아냐? 이야기로선 이치에 닿는다고. 방 안에 틀어박혀 마스터베이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렇지만 그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참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와타나베 씨?"

"그럴지도 모르죠"

하고 말하고 나서, 나는 크림소스가 뿌려진 농어의 몸통을 입으로 가져갔다.”

Excerpt From: Murakami Haruki. “상실의 시대.” iBooks. 


<나쁜 남자>의 인물 한기 역시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처럼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선화를 마음에 품고 있으나, 한기 역시 선화가 아닌 다른 곳에서 성적 욕망을 처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나쁜 남자>의 한기는
<나쁜 남자> 선화와  <파란 대문>의 진아가 갖고 있던
그림의 화가 에곤 실레(Egon Schiele)

 <파란 대문>에서 진아가 새장 여인숙에 들고 온 검정 머리 소녀 누드 작품과 <나쁜 남자>의 선화가 찢어 숨긴 '포옹'이라는 작품의 작가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파편화된 성의 혼돈을 안고 산 인물이다. 


예술가 에곤 실레는 그의 아버지가 그가 15살에 매독으로 죽음으로 인해 섹스와 죽음에 대한 정신적인 연관을 갖은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러한 섹스와 죽음의 연관성이 그의 예술 작품에 특성을 가져왔지만, 이러한 연관성은 오히려 그가 섹스와 사랑을 통일시키는 것에 어려움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쁜 남자>의 한기는 소설 속 와타나베 토오루와 에곤 실레와 비슷한 인물이지만, 와타나베 토오루는 나오코의 질문, '어디에 있냐?'에 어리둥절 하며 소설이 끝나고, 에곤 실레는 섹스와 사랑의 합일을 그의 인생에서 이루어 내지 못 했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쁜 남자>의 한기는 와타나베 토오루와 에곤 실레가 이루지 못 한 섹스와 사랑의 포옹을 이끌어 낸다. 

<나쁜 남자> 속 한기와 선화의 포옹과 선화가 영화 전반부에 훔친 에곤 실레의 작품 포옹


<파란 대문> 속 진아와 혜미의 거울상 대칭과
 <나쁜 남자> 속 선화와 한기의 거울상 대칭

영화 <파란 대문>에서 진아와 혜미의 거울상 대칭은 시간의 흐름 속에 진아에서 시작해서 혜미로 끝나며, 두 가지 종류의 여성성을 비추며 그 둘을 한 거울 안에 종속된 것으로 표현하였다. <파란 대문>에서 거울의 대칭은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반면에 <나쁜 남자> 속 거울은 서로를 비추는 도구가 아닌, 한기가 선화를 관찰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비록 그 둘은 거울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선화는 한기를 볼 수 없고, 오직 한기만이 선화를 볼 수 있는 도구이다. 

<나쁜 남자>에서 거울은 깨어져야만 하는 도구이다. 선화가 한기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거울을 깨고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포옹을 한다. 에곤 실레의 그림 포옹처럼. 


성의 원형을 찾고 파편화된 성 떠나보내기

탈근대적인 매춘부 퍼포먼스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계보를 신성한 매춘부에 두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근대적 매춘부의 구성 양식을 침식시키고 제거하는 하나의 전략적 계보학을 생산했다. 그들의 계보를 추적하는 이 장은 서양철학의 최초의 여성들인 디오티마와 아스파시아를 고대의 신성한 매춘부의 세속화된 유물인 헤타이라로 복원시킨다. 

서양철학의 최초의 여성들(영혼의 지도자이자 창녀인 디오티마와 세속화된 정치적 매춘부 철학자인 아스파시아)이 다시 불러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성과 젠더, 내부와 외부에 그어진 몸의 경계선들이 느슨하게 정의되는 탈근대성의 공간 속에서이다. 나는 쾌락과 지식을 동시에 주고받는 일을 가르쳤던 디오티마를 육신이 영혼과 근본적으로는 구별되지 않는 여신의 현현(顯顯)으로 읽는다.(출처:Shannon, 1994; 번역 : 승준(linio))


<파란 대문>은 파편화된 신성한 탈근대적이고 육신이 영혼과 구별되지 않는 성을 찾기 위해 혜미의 꿈속에서 진아가 죽은 것으로 표현된다. <섬>은 이런 신성한 육신과 영혼이 구별되지 않은 성이 소우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쁜 남자>에서는 육신과 영혼의 합일을 한 인물 안에서 그려 냈으며, 자본과 권력의 근대적인 성이 물속에 빠져 사라지는 장면으로 연출된다. 

맨 위: 파란 대문; 중간: 섬; 하단: 나쁜 남자의 상징적 장면들 


<노르웨이의 숲> 노래와 소설, 그리고 에곤 실레의 한계 극복

김기덕 감독 영화 <파란 대문>에서 주인공 진아와 혜미가 읽은 <노르웨이의 숲>이란 소설은 비틀스의 노래 <노르웨이의 숲>에서 영감 받은 것으로 시작된다. 비틀스는 노래 <노르웨이의 숲>의 가사는 "그리고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홀로였고, 그 새는 날아가 버렸다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라고 끝난다. 하지만, <나쁜 남자>는 탈근대적인 성의 원형을 되찾은 한기와 선화는 깨어날 필요 없이 깨어있는 채, 둘은 떠나가 버렸다. 


진짜 나쁜 남자는 명수, 그러나 그도 자본과 권력의 피해자

명수는 한기가 복수심과 소유욕에 눈이 멀어 선화를 창녀로 만들 계략에 가담한 것, 선화가 좋아지자 명수는 한기의 계략을 선화에게 고발하고 한기를 배신한 것, 창녀촌에서 탈출시키지만, 한기가 선화를 다시 붙잡아 오길 바란다. 명수는 선화를 자본으로 그녀를 소유하며, 한기가 선화를 돌려보내자, 명수는 한기에게 "왜 놓아줬냐?"며 울분을 터뜨린다.


한기가 성의 근대성에서 탈근대성으로 극복하는 상징적인 인물이고 한기는 선화를 상징적, 그리고 탈근대적인 성의 원형으로 대했다면, 명수는 근대적, 자본과 권력으로 선화의 몸과 마음을 취하려고 하는 자다. 



<기덕 감독 영화 리뷰 모음집>


정성일과 인터뷰에서 김기덕 감독은 에곤 실레를 연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에곤 실레가 애들을 불러다가 추행을 하고 삽화를 그렸다는 정보는 어찌 알았을까?

전 에곤 실레를 몰라요. 어디서 내가 그 사람에 대해서 연구해본 적도 없고 그 사람에 관한 책을 끝까지 다 본 적도 없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단 하나 그 사람의 그림에서 전달되는 느낌. 빈곤하지만 뼈에 붙어 있는 살들의 부대낌들, 그리고 그 앙상함에 고민이 들어 있다는 것, 세상 삶에 대해서 짙은 경멸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뼈에 붙어 있는 살처럼 질긴, 그런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고민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고민이죠. 에곤 실레가 애들을 불러다가 추행을 하고 삽화를 그린다고 하지만, 그가 그 피사체를 통해서 고민하고 연구했던 것은 삶에 대한 질곡들이 아니었을까. 섹스라는 것을 넘어선 단계에서 피사체들을 보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건 제가 원하는 시선이 아닐까 하는 거죠. 저는 가끔 살과 살이, 남자와 여자의 살과 살이 뒤엉켜서 서로 붙은 것 같은 환상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는데, 그런 것을 에곤 실레의 그림은 보여주고 있어요. 멀리서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두 사람의 경계선이 잘 안 보이거든요.


영화 <나쁜 남자>는 <파란 대문>과 <섬>과 내용이 연결되어 있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 <뫼비우스>에서 <진주 귀고리 소녀>와 <위대한 게츠비>라는 소설을 영화 속 소품으로 사용했고, 소설은 소품으로 끝나지 않고 영화 뫼비우스와 연결되어 있다.

영화 <아리랑>에서 소품으로 사용된 소설 <브리다>는 아리랑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영화 <활>은 대칭 구조를 사용했다.


                                        영화감독 김기덕 작품 <나쁜 남자>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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