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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보 Apr 18. 2021

푸세식 해우소에 빠져 봤니?

내 나이 4살, 어느 절 좌변기 설치에 기여하다|사진:일러스트 이예숙


새신을 신은 4살 어느 날 화창한 봄날, 부모님과 함께 작은 마을 절에 갔다. 

한 참 절 큰 스님과 대화 중이시던 부모님을 뒤로하고 혼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 절의 화장실, 즉 해우소(解憂所)는 불교 용어로 번뇌가 사라지는 곳 혹은 근심을 푸는 곳 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재래식 해우소에 앉아 있는데, 눈 앞에 만발히 핀 개나리를 바라보다가 새 신발이 익숙치가 않았는지 발을 조금 잘 못 움직여, 똥 통에 빠지고 말았다.  


일단 푸세식 안에 철퍼덕 빠진 나는 똥, 오줌, 변을 닦은 이면지 등등이 널려있는 질퍽한 똥 죽 안에서 따가운 눈과 코를 찌르는 오물과 암모니아 냄새에 순간 정신이 혼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황하기는커녕 똥통 안의 구조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여러 재래식 변기가 있는 해우소였는데, 각각 변기의 분뇨를 담아내는 큰 통은 분리가 되어 있었나 보다. 머드 팩보다는 덜 걸쭉한 분뇨는 각각 사람들의 시시각각 달라지는 인분들의 점도, 색깔, 냄새, 그리고 그들과 함께 리듬을 맞춰가는 코를 찌르는 오줌에서 피어나는 암모니아의 멜로디와 향연에 의한 것이리라. 어지러움을 무릅쓰고 똥통 안을 살펴보니, 무엇인가 좁쌀보다 큰 것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사진출처:ksscreen2

뜻밖의 생명체와의 조우(遇)


꿈틀대는 생명체들은 영양이 충분히 채워진 듯 한 오동통하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구더기들이었다. 흔히들 흙탕물에 피어난 연꽃을 청렴이나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나 눈부신 자태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며 감흥을 주는 심벌로 사용하 곤 하는데, 똥통 안의 구더기들이 나에겐 마치 그러했다. 눈이 따갑도록 시리고, 코를 찌르는 악취 속에서도 그들은 깨달음에 이르려는 신념과 일념으로 정진하시는 종교인들처럼 묵묵히 그리고 끊임없이 온몸의 근육들을 마디마디 움직이며 변이든, 오줌이든, 오물을 닦아 낸 이면지 위든 차별 없이 묵언 수행하며 그들과 함께 공생 공사하는 것이 아닌가.  


구더기가 보여 준 육바라밀


흔히들 불가에서 육(6) 바라밀이라 하여 여섯 가지 바라밀, 즉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길"을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라 한다. 오물이 가득한 곳에서도 그들이 몸소 바쳐 보여준 짐짓 구도자와 같은 모습에서 그곳 또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베품의 공간이라는 보시를 느꼈고, 애써 그곳의 분뇨들과 싸우지도 경쟁하지도 않고 그 들과 함께 그 안에서 계율을 지키는 모습에서 지계를 보았고, 왜 그들이 인간이 싸질러 놓은 것들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분한 마음이나 삼라만상 백팔번뇌에 걸림 없이 모습에서 인욕을 보았고, 시시각각 움직이는 모습에서 정진을 보았으며, 여여한 움직임 속에서도 오직 살아있는 역동성을 보임에 선정을 보았으며, 오물 통이든 그곳이 아니든, 삿된 소견 없는 모습에서 슬기를 보았다. 각각 구더기의 작은 몸들이 역겨운 오물통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모습들의 모습은 가히 밤하늘을 수놓은 움직이는 별들 같다는 착각까지 일으켰다. 

사진출처: 꿈쟁이 스위트 웨이

육바라밀을 통한 팔정도(八正道)


짐짓 구더기의 몸을 나투신 보살의 몸짓을 통해서 혼미한 상황 가운데서 분뇨 통속 벽을 타고 올라가는 구더기 무리를 통해 팔정도 즉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보았다. 구더기들이 줄지어 올라가는 벽 위에 기와집의 대들보 같은 두 개의 나무 막대가 똥통 속 안에 설치되어있었다(i.e., 정견, 正見, 바르게 봄). 그리하여, 그 속에서 "살려주세요"라고 고함을 치기보다, 대들보 같은 나무를 밟고 분뇨통 밖으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사유, 正思惟, 바른 생각). 푸세식 때문에 똥 통에 빠진 것이 아닌 발을 헛디뎌서 빠진 것임을 시인하고 (i.e., 정어, 正語, 바른말), 남이 나를 구해 주길 한 없이 바라기 보다, 나 스스로 빠져나오려고 오물 속 대들보를 부여잡았다 (i.e., 정업, 正業, 바른 행위). 앞으로는 화장실에 앉아서 정신을 딴 곳에 팔지 아니하고 오직 화장실에서는 그곳에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i.e., 정명, 正命, 바른생활), 정직한 노력을 할 것을 다짐했다(i.e., 정정진, 正精進, 바른 노력). 그러기 위해, 항상 바른 마음으로 꾸준히 쉼 없이 일의 경과를 따지지 않고 (i.e., 정념, 正念, 바른 마음 챙김) 정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i.e., 정정, 正定, 바른 선정). 


다행히도 나는 한 무더기의 구더기 덕에 똥 통 속 대들보를 발견하고 그것을 짚고 올라올 수 있었다.

그 후로, 절의 주지 스님은 해우소에 좌변기를 설치 하셨다한다. 


때로는 우리의 삶도 그렇다. 분뇨통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왜 내가 이 곳에 빠졌는지, 나의 원죄가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 그곳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생각지도 못 한 것들에게서 사소한 깨달음을 얻어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틀어야 할 때가 있다. 분뇨통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 안에서 만나는 쉬운 달콤함과 중독성 역시 그 안에서 머물고 싶은 우리의 속내를 현학적인 물음, 즉,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의 덧에 빠져 있게 할 수 있다. 이 물음은 근원적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번뇌를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고 또한 분뇨통에 우리를 더욱 오래 머물게 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런 현학적인 물음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일어나 방향을 바꾸자. 구더기들이 준 힌트를 벗 삼아...  각자 인생이 근심을 푸(해우解憂)는 하나의 장(소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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