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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hms Jan 19. 2022

죽음을 품에 안은 채 춤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슈베르트 -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Schubert - String Quartet No.14 in D minor, D.810 - 2nd
슈베르트 -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2악장


 1822년 25세의 슈베르트는 매독으로 추정되는 성병에 걸렸습니다. 슈베르트는 집에서 칩거하며 작곡에 몰입을 했지만, 악화된 건강 속에서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느끼게 되었죠. 죽음을 암시한 슈베르트는 신에게 간절한 기도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신성한 고뇌로 고통을 당한 나는,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리고 원컨대 이 어두운 세상을 전지전능한 사랑의 꿈으로 뒤덮고자 하나이다.’ ‘주 하느님! 당신의 아들, 이 불행한 아들에게 이제 베풀어주소서. 나를 보소서, 내가 진흙탕에 빠져 뒹굴며 고뇌의 불로 타나이다. 내가 고통 속에서 내 길을 걸어가며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나이다. 나의 생명을, 나의 살과 피를 취하소서! 나를 레테 강물에 담그시고, 감히 바라건대, 오 전능하신 신이여, 나로 하여 더욱 건강하며 순수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영원한 소멸의 ‘죽음’과 생명과 사랑을 표현하는 ‘소녀’의 상반된 모습으로 죽음에 대해 표현했습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주제이기도 하죠. 죽음과 소녀는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외면하지만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시인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는 이 ‘죽음과 소녀’의 주제로 시를 지었습니다. 죽음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소녀와 죽음을 친구라고 말하는 죽음의 이야기를 담았죠.

마리안느 스톡스 <죽음과 소녀> / wikipedia

소녀

지나가세요, 아! 지나가세요!

가세요, 거친 죽음의 사신이여!

나는 아직 젊답니다, 가세요,

당신!

그리고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죽음

너의 손을 다오, 너 아름답고

연약한 형상아!


나는 너의 친구이지 벌주러
온 것이 아니란다.


마음을 편히 하렴! 
나는 거칠지 않단다,


너는 나의 품 안에서
편히 잠자게 되리라!

에곤 쉴레 <죽음과 소녀> / wikipedia

 
 가곡의 왕이라 불린 슈베르트는 자신이 작곡한 가곡을 이용해 실내악 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가곡 <송어>를 피아노 5중주 <송어>로, 가곡 <방랑자>의 일부를 사용해 피아노곡인 ‘방랑자 환상곡’을 작곡하기도 하였죠. 20세의 슈베르트는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 ‘죽음과 소녀’를 가사로 삼아 가곡 <죽음과 소녀>를 작곡했습니다. 그리고 7년 뒤인 1824년, 자신의 가곡 <죽음과 소녀>를 사용해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작곡하기 시작하였죠. 이 시기에 슈베르트는 병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았으며,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울감과 절망감에 빠지고 말았죠. 자신의 친구 ‘쿠펠비저’에게 슈베르트는 자신의 암담한 상황을 토로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장 비참한 존재라고 느끼고 있어, 절대로 건강이 회복될 가망성이 없고... (중략) 그 인간이 영원히 불행하지는 않을 거라고 나에게 말해주게... 매일 밤 잠이 들 때면 나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네. 그런데 매일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나 지난날의 고통을 떠올려야 해. 기쁨도 없이, 친구도 없이, 내 나날은 흘러 지나가고 있네.’
 

1827년의 슈베르트 / 가보르 멜레(Gábor Melegh)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의 2악장은 가곡 <죽음과 소녀>의 주제를 이용하여 변주됩니다. 고요한 음악은 죽음을 뿌리치려는 듯, 서서히 격정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밝은 장조로 변화하며 편안하고 깊은 잠을 향해가기도 합니다. 이 음악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자서전과 같은 곡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슈만은 이 곡을 가리켜 ‘가장 영감이 넘치는 곡’이라 일컫기도 했습니다. 음악비평가 ‘마르셀 슈네데르’는 이 작품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2악장의 변주는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동의를 제시한다. 죽음은 음악가를 노리고 있다. (중략) 슈베르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죽음을 품에 안은 채 미친 듯이 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자신의 죽음을 마주했던 슈베르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아직은 어리다고 울부짖었을지, 아니면 죽음의 품 안에서 편안히 쉬고 싶어 했을지 혼란스러운 마음의 슈베르트를 생각해 봅니다. 1828년 11월 슈베르트는 31살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친구 '그릴파르처'는 슈베르트의 묘비에 그를 애도했습니다.



 ‘음악 예술은 이곳에 풍요한 보배를, 그리고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희망을 묻었노라.’




*2악장 (11:28부터 - 22:10까지)

https://youtu.be/otdayisyIiM?t=689

알반베르크 4중 주단

*2악장 (16:08부터 ~ 29:54까지)
https://youtu.be/fsxQ-eD5_C4?t=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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