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율의 휘파람 소리가 들리더라도 놀라지말게.
엘가 - 첼로 협주곡
Elgar - Cello Concerto in E minor, Op. 85
엘가 - 첼로 협주곡
말년의 엘가는 모든 것이 불안했습니다. 세상은 1차 세계대전으로 어둡게 빛을 잃어갔고, 극심한 인후염으로 고생을 하던 그는 패혈증까지 걸려 편도선을 제거하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였죠. 아내 앨리스는 그에게 전원생활을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국 남동부에 위치한 '피틀워스'로 요양을 떠나게 되었죠. 1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웠던 상황과 우울과 삶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던 엘가는 이 곳에서 진중한 작품들을 작곡했습니다. 그중 그의 걸작이라 불리는 <첼로 협주곡>도 탄생하게 되었죠. 그의 머릿속을 뒤흔드는 고통과 고뇌는 이 작품에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합니다.
1919년 8월. 이 작품은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지휘자와 단원들의 연습 부족으로 이 음악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이날 함께 연주되는 스크리아빈 교향곡 4번의 연습에 몰두했던 나머지 엘가의 첼로 협주곡의 연습은 뒷전이 되었죠. 연주회에 참석한 한 비평가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대 유명한 비평가 ‘어니스트 뉴먼’은 음악 자체에 집중하여 호평을 남겼습니다.
‘음악은 아름답고 매우 간단하다. 지난 2년간 엘가의 음악에서 볼 수 있었던 간결함으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밑바닥에는 깊이 있는 현명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평생을 지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에 잠겨 이를 동경해온 훌륭한 영혼을 느낄 수 있다.’
1920년, 엘가와 첼리스트 베이트리체 해리슨이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녹음하고 있다. /출처. wikipedia
이 작품은 4악장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짙은 호소력으로 시작되는 1악장과 경쾌한 분위기의 2악장은 하나의 음악처럼 연결이 되어있고, 단순한 구성의 3악장과 우수와 활기의 대조가 느껴지는 4악장 또한 하나의 음악처럼 연결되어 진행됩니다. 또한 4악장에서는 이전 악장들의 주제가 나타나는 순환적 구조로 갖고 있습니다. 짙은 목소리의 첫 선율은 음악의 마지막에서도 다시 등장하여 장대한 끝을 이루고 있죠.
이 작품이 완성된 1919년도는 엘가와 그의 아내 앨리스가 보낸 마지막 한 해였습니다. 이곡이 처음 무대에 오르고 약 1년 뒤, 앨리스는 72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삶을 마감하였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주고 지지해줬던 앨리스의 부재로 인해, 엘가는 깊은 절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죽음 이후 엘가는 악보에 음들을 끄적거리기만 할 뿐, 첼로 협주곡과 같은 대작은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에게 있어 앨리스는 창작의 원동력이자 음악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짐작됩니다.
엘가는 이 작품에 대해 ‘진정한 나의 대작’이라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는 삶을 마감하기 한 해 전인 1933년, 침대에 누워 자신의 친구에게 1악장의 짙은 첼로 선율을 노래하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내가 죽은 후, 말번 언덕에서 이 선율의 휘파람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놀라지 말게. 그 사람이 바로 나일 테니까.’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논할 때 ‘재클린 뒤프레’의 연주는 빠질 수 없습니다. 마치 글렌 굴드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연주처럼 재클린의 엘가 첼로 협주곡 또한 반박할 수 없는 명성을 이어 내려오고 있죠. 재클린의 깊은 활의 무게감에 엘가의 절절한 이야기는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말번의 언덕을 넘어, 세상에 흐르는 짙은 1악장의 선율은 곧바로 그녀를 기억하게 만듭니다. 우아하고 위엄 있는 아름다운 음악의 밑바닥에는 조용히 울부짖는 흐느끼는 감정들을 느껴보시며 엘가와 재클린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도 감상해보세요!:)
https://youtu.be/7rVW4Z70TfE
-메인 사진 출처 : warnerclassic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