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 Symphony No.4 in f minor Op.36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4번
1876년, 36세의 차이코프스키에게 큰 선물 같은 인연이 생겼습니다. 바로 그의 후원자가 된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과의 만남이죠.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해주던 미망인 폰 메크 부인. 그녀와의 만남으로 차이코프스키는 걱정 없이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에서 후원을 제안하며, 둘이 서로 얼굴은 보지 말자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인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와 우정을 넘나드는 묘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은 12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제대로 얼굴을 마주 해 본 적이 없었죠. 잠시 연주회장에서 모른 척 스쳐 지나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다음 해, 1877년 37세의 차이코프스키에게는 끔찍한 악연이 생겼습니다. 바로 짧은 결혼 생활을 보냈던 전처 ‘안토니나 밀류코바’이죠.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했던 차이코프스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밀류코바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오랜 시간 사랑과 혼인을 갈구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성의 구애로 차이코프스키의 골머리를 썩혔죠.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구혼에 정신이 없었지만,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숨기고자 그녀와 결혼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당시 작곡 중이었던 오페라 <예브게니 오게닌>의 남자 주인공 오게닌처럼 여자들을 매몰차게 대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결혼을 진행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의 결혼 생활은 재난 그 자체였습니다. 결혼 생활을 1개월을 채 채우기도 전에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의 곁을 도망치게 되었죠.
얼마 후, 차이코프스키는 다시 밀류코바의 곁으로 돌아왔지만 2주 뒤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 시도를 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극심한 신경쇠약에 고통받았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동생 ‘아나트리’는 형을 스위스와 이탈리아 북서부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에서 형의 정신적 안정을 도왔습니다. 물론,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코프스키에게 지원한 연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1877년 5월,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 4번의 존재를 알렸죠.
‘저는 이 작품을 당신께 바치고 싶습니다. 그 안에 당신의 가장 친밀한 생각과 느낌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께서는 틀림없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해 7월, 차이코프스키는 밀류코바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잠시 도망을 쳤던 9월 차이코프스키는 진행 중이었던 교향곡 4번의 1악장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녀와의 이별 이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낀 차이코프스키는 이탈리아 북서부 산 레모 지역에서 요양을 하며 이 곡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끝마쳤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 시기에 교향곡 4번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의 상황을 대변하듯, 4번 교향곡은 교향곡 중 가장 변화가 많고 강한 열정을 나타내죠. 또한 결혼뿐만 아니라, 인생의 여러 위기들을 해쳐나가야 했던 차이코프스키의 자전적인 모습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1악장은 호른과 바순의 연주로 강렬하게 시작됩니다. 관악기들의 강렬한 주제 동기를 가리켜 차이코프스키는 ‘가혹한 운명’을 상징한다고 폰 메크 부인에게 설명하였죠. 이 강렬한 동기는 마지막 4악장에서도 다시 등장하여 곡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이 음악에 대한 설명을 남겼습니다. 그는 이 교향곡에 대해 표제 성을 갖고 있는 작품으로 작품의 내용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말과 함께 작품의 설명을 그녀에게 보내주었죠. 1악장에 대해 차이코프스키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서주는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 정수, 중심 악상입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즉, 행복은 좌절되고 평화와 위안이 존재하지 않는 사나운 운명의 힘, 숙명적인 힘입니다. 머리 위에 언제나 드리워져 있는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우리들의 영혼에 끊임없이 독을 붓는 힘입니다. 이 힘은 압도적으로 패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에 복종하고 몰래 불운을 핑계 삼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 운명은 우리를 잔혹하게 불러 깨웁니다. 우리들의 생활은 괴로운 현실과 행복한 꿈과의 교차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전한 도피처는 없습니다. 인생의 파도는 우리들을 주무른 후 우리를 삼켜버립니다.’
춤곡 풍의 2악장은 밝으면서도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악장입니다. 오보에의 선율로 시작되는 음악에서는 외롭고도 슬픈 분위기가 나타납니다. 오보에의 선율에 차이코프스키는 '단순하게, 그러나 우아하게'라는 지시를 넣었습니다. 오보에의 선율은 다른 아이들이 이어받으며 번갈아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2악장에 대해 이런 설명을 남겼습니다.
‘2악장은 슬픔 외의 다른 일면을 나타냅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것은, 일에 지쳐 녹초가 된 사람이 밤늦게 홀로 집에 앉아 있을 때 그를 감싸는 음울한 감정입니다. 읽으려고 꺼낸 책은 그의 손에 미끄러져 떨어지고 수많은 추억들이 용솟음치듯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많은 여러 일들이 모두 지나가 버렸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지요. 하지만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들은 과거를 슬퍼하고 그리워하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조차의 용기도 의지도 없습니다. 생활에 지쳐버린 것입니다.’
현을 뜯는 현악기의 피치카토의 연주로 진행되는 3악장은 유쾌한 감정이 넘쳐납니다. 반복되는 피치카토 음형이 사라질 때면 오보에와 목관악기들은 춤곡 같은 음악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그리고 계속 현악기 연주자들은 크고 작은 큰 다이내믹의 피치카토로 음악을 이어나가죠. 차이코프스키는 3악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3악장은 이렇다 할 분명한 정서도 확정적인 표출도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자유로운 아라베스크입니다. 우리가 술을 마셔 약간 취했을 때 우리 뇌리를 스쳐가는 어렴풋한 모습입니다. 그 기분은 좋기도 하고 슬픔에 젖기도 하면서 자꾸 변합니다. 확실치도 않는 일을 생각하고 공상이 내달리는 대로 맡겨 두면 멋진 선의 교착에 의해 화면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문득 이 공상 속에 술주정뱅이 백성과 진흙투성이 노래의 화면이 날아들어 옵니다. 멀리서 군악대의 취주악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것들은 모두가 자고 있는 우리의 머릿속을 오가는 산만한 그림일 뿐, 현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혼란스럽기만 한 것들입니다.’
격렬한 음향으로 시작한 4악장은 박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곡의 끝을 향해갑니다. 화려하고 활발한 음악에서는 승리의 감정도 느낄 수 있죠. 또한 1악장의 첫 도입부에서 사용된 ‘운명의 동기’가 다시 나타나 강렬한 종결을 만들어 줍니다. 차이코프스키는 4악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내면 속에서 환희를 찾지 못했다면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을 즐기고 환락에 몸을 맡기는가를 보는 것이 좋다. 민중의 축제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사람들의 행복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스스로를 잊을 때와 잊지 않을 때, 패하지 않는 운명은 또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 그 존재를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들을 돌아보지도 않으며 우리들의 쓸쓸하고 슬픈 감정을 보기 위해 발길을 멈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쾌하고 즐거워할 뿐이다. 그들의 감정은 천진난만하고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세상이 슬픔 속에 잠겨있다고 말할 것인가? 행복, 단순하고 소박한 행복은 아직 존재한다. 사람들의 행복을 즐거워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더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제자 '세르게이 타네예프'에게 '교향곡 4번의 단 한 마디라도 내가 느낀 것을 진실하게 표현하지 않은 것은 없으며, 깊게 숨겨진 나의 마음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음악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감정을 더 또렷하게 살펴볼 수 있죠. 또한 이 작품에 대해 차이코프스키는 스스로 '내가 작곡한 작품 중 최고'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6곡의 교향곡을 남겼습니다. 5, 6번과 더불어, 마지막 3개의 교향곡이라 불리는 4번은 차이코프스키의 자전적인 성격이 가장 잘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잔혹한 운명, 지친 일상, 우리 주위의 행복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의해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남겼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생각에 큰 공감을 하게 되죠. 그가 남긴 고민들을 따라가 보며, 우리 주위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오늘이 있음에 행복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교향곡 4번에 관한 차이코프스키의 설명에 대한 참고문헌 : 『차이코프스키』(서울 : 음악세계, 2002)
-메인 사진 출처. berliner philharmoniker/ warnerclass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