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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hms May 27. 2021

비의 노래

브람스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Brahms - Violin Sonata No. 1 in G major, Op. 78 
브람스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낭만시대의 문을 열고 세상을 떠난 베토벤을 평생 동경했던 작곡가가 있습니다. 그는 베토벤을 자신을 뒤쫓는 ‘거인의 그림자’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작품이 베토벤의 근처라도 가기를 원했죠. 베토벤의 음악을 늘 염두에 두었던 '요하네스 브람스'는 변화의 시대에서 고전주의 형식으로 자신의 낭만성을 표현한 작곡가입니다. 

 19세기 중반, 독일의 음악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음악 외적인 것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표제음악’과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절대음악’의 대립은 팽팽하게 이어졌죠. 베를리오즈와 리스트, 바그너는 표제 교향곡과 교향시, 음악극으로 표제음악을 이끌어갔던 것과 달리, 멘델스존과 브람스는 교향곡과 소나타 등 고전주의의 양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음악을 작곡하였습니다. 특히 브람스는 낭만주의의 새로운 음악적 어법과 전통적인 형식의 결합으로 특유의 음악을 작곡하였죠.  

19세기 중반, 낭만음악은 브람스를 중심의 '절대음악'과 바그너를 중심의 '표제음악'으로 나뉘어 대립하였다. / 출처. wikipedia 


 고지식하고 자기 검열이 심했던 브람스는 음악 앞에서도 굉장히 신중하고 섬세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악보 위에 모든 음표를 다 적고 나서도 몇 번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하였죠. 그의 음악은 대부분 고민의 고민으로 완성된 음악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자신의 음악들은 불에 태워버리기도 하였죠.  


 브람스는 40세가 지나고 나서야 첫 바이올린 소나타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사실 그 작품이 그의 첫 바이올린 소나타는 아닙니다. 청년 시절,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게 된 슈만은 그에게 출판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확신이 없었죠. 그 작품을 포함해, 4곡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존재했었다고 알려집니다. 하지만 브람스의 완벽주의로 인해 그 작품들은 그의 손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죠. 현재는 예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소나타 3곡만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1879년 여름, 브람스는 오스트리아의 ‘푀르차흐’에서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는 경치가 아름다운 그곳을 굉장히 좋아하였죠. 그리고 그곳에서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그곳의 정경을 숨길 수 없다는 듯이 산뜻하고 따스한 기분으로 표현됩니다.  

브람스가 좋아했던 오스트리아의 푀르차흐 / 출처. wikipedia commons


 곡이 완성된 후, 브람스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친한 친구였던 ‘요제프 요아힘’과 이 곡을 친구들 앞에 선보였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반주와 요아힘의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한 친구들은 큰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특히 ‘클라라 슈만’은 이 곡을 듣고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1873년, 자신의 생일 선물로 브람스가 헌정한 가곡 ‘비의 노래’의 선율이 이 곡의 3악장과 굉장히 유사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음악은 ‘비의 노래’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클라라는 이 음악에 대한 감정을 브람스에게 이렇게 전했습니다.


 ‘당신의 소나타가 저를 얼마나 흥분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3악장에서 제가 너무나 사랑한 선율이 흘러나왔을 때 제가 얼마나 황홀했었는지 당신은 충분히 짐작하시겠죠. 저는 이 곡을 '나의 음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 곡 앞에서 어떤 이도 저처럼 황홀하고 슬픈 느낌을 받을 수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죠.’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의 3악장에 큰 감동을 받은 클라라 슈만은 이 작품을 '나의 음악'이라 불렀다. / 출처. rhinegold.co.uk


 1악장의 맑고 포근하게 시작되는 선율을 따라가 보면, 푀르차흐에서의 여유로웠던 감정을 표현하듯 푸릇한 잎사귀 사이로 내리쬐는 밝은 빛과 코를 간질이는 기분 좋은 바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가곡 '비의 노래'의 가사처럼, 3악장은 우수의 젖은 선율 속에서도 달콤한 비의 모습을 떠오르게 만들죠. 브람스의 바이올린 1번은 그 어떤 오차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음악이라 생각됩니다.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음, 한 음 정성 들여 음표를 마주한 브람스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하죠. 소나타라는 약속된 형식 안에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음악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브람스. 전악장에 걸쳐 나타나는 당김음의 부점 리듬에 따라 브람스의 이야기에 기분 좋은 여행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클라라 슈만에게 선물한 가곡 <비의 노래>는 독일의 시인 '클라우스 그로트'의 시를 인용해 완성되었다. 

 
쏟아져라 비야, 쏟아져라.

물방울이 모래에 거품을 일으킬 때
나는 어린 시절 꾸었던 꿈들을 다시 떠올린다.

찌는 듯한 여름 무더위가
이따금 신선한 냉기와 이슬에 흠뻑 젖은 잎사귀
그리고 진한 푸른색으로 물든 들판에 맞서 발버둥 칠 때,
이 호우 속에 잔디밭을 맨발로 밟고 서 있을 때,
이 거품들에 손을 대어볼 때, 

혹은 차가운 물방울들을 맞기 위해 뺨을 내밀 때,
그리고 그 싱그러운 공기를 가스에 품을 때의 환희란!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 들어가는 꽃봉오리처럼
영혼은 가슴을 활짝 열고 숨 쉰다.
향기에 취한 꽃처럼 천국의 이슬에 흠뻑 젖는다.
 
심장부를 흔들며 증발해버리는 빗방울 하나하나,
은둔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 안에 파고드는 우주만물의 신성함

쏟아져라 비야, 쏟아져라.
빗방울이 바깥을 두드릴 때마다
우리가 문간에서 부르던 옛 노래들을 떠올린다.
 
나는 이 달콤하고 촉촉한 빗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성스럽고 순수한 경외감이 부드럽게 젖는 내 영혼.


https://youtu.be/4ouRqXe6o3k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피아니스트 김선욱

https://youtu.be/StGHCdQKdqQ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피아니스트 이타마르 골란

*1악장
https://youtu.be/HiYfbLMpmgM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피아니스트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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